[주성하의 서울살이] 죽으라고 보내놓고 무사히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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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곧 있으면 음력설입니다.

음력설에 여러분들이 집에서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따뜻하게 보낼 때, 수천 ㎞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선 북한군 병사들이 매일 100명 가까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전사한 북한군의 품에서 김정은이 파병 군인에게 보냈다는 편지도 나왔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동무들이 정말 그립소. 동무들 모두가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내가 계속 빌고 또 빌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주시오. 부과된 군사 임무를 승리적으로 결속하는 그날까지 모두가 건강하고 더욱 용기백배하여 싸워주기 바라오.”

이렇게 적혀 있던데 저는 가증스럽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보내지 않아도 될 우리의 아들들을 사지로 먼저 떠밀어 보낸 것이 누구입니까. 푸틴은 원래 북한군 파병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김정은이 푸틴에게 잘 보이려고 북한군 최정예 폭풍군단을 먼저 보내겠다고 제안했다는 게 지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렇게 사지로 보내놓고, 무사히 돌아오길 빈다고요? 죽으라고 보내놓고 용기백배하여 싸우라고 하고선, 무사히 돌아오라는 것은 너무 위선적인 이야기가 아닙니까.

하지만 세뇌된 북한 병사들은 이런 편지를 보고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최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포로가 된 두 명의 북한 군인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이들의 신문 영상을 공개했는데, 한 명은 정찰부대 소속의 20세 청년입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자기 부대는 러시아로 가는 줄도, 적이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투에 나가면서도 그냥 실전 같은 훈련을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전우들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러시아로 끌려간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앳된 20세 병사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분노했습니다. 어디로 왔는지도, 누구와 싸우는지도, 심지어 이게 진짜 전쟁인 줄도 모르고 끌려왔다가 죽는 북한 청년들이 정말 우리 동포들이라니요.

포로가 된 26세 군관은 “김정은이 나쁜 거 아니냐”고 하니 우물쭈물하다가 “푸틴이 나쁘지요”라고 합니다. 전우들이 죽고, 자신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된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김정은인데, 푸틴이 나쁘다고 합니다. 얼마나 세뇌가 됐으면 머리 속에서 김정은이 나쁘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도 목숨을 건지고 포로가 된 청년들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집계에 따르면 벌써 4,000여 명의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중 20여 명은 부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고 포로가 될 위험에 처하자 “김정은 장군 만세”를 부르며 수류탄으로 자폭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떳떳하지 못하면 북한군이 참전했다는 사실도 숨기려고 포로가 될 위기에선 죽으라고 교육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그대로 따른 청년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김정은이 전사한 북한군 시신을 북에 가져갈 것 같습니까. 러시아에 파병했다는 사실조차 인민들에게 숨기는데, 그렇게 이들의 죽음을 북에 알리겠습니까. 아무리 영웅적으로 전사해도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록이 안 되는 개죽음일 뿐입니다.

김정은이 병사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그렇게 원한다면 하다 못 해 파병된 군인들에게 이것은 훈련이 아닌 실전이라고 말이라고 해줬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하는 우크라이나 군대는 어떤 전술과 무기를 쓰는지 잘 알려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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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한군 포로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이 무인기를 위주로 공격을 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다 포착이 되고, 무리로 움직이면 죽는다고 알려줬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알려주지 않아서 멋도 모르는 북한군은 훈련 받은 대로 소대 단위로 돌격하다가 무리죽음을 당합니다. 한 우크라이나 무인기 조종수는 혼자서 북한군 76명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10년씩 군 복무를 하면서 체력적으로 단련된 북한군이, 민간에서 발탁돼 무인기 조종을 하는 우크라이나 남성보다 전장에선 뒤질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상황을 알려주지 않다보니 멋도 모르고 당한 겁니다.

북한 군인들은 이제야 환경에 적응하고 2~3명씩 분산돼 움직여야 산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내고 배운 대가입니다. 그걸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남의 나라 전쟁에서 북한군이라고 당당하게 밝히지도 못하는 군인들은 총알받이로 쓰이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지휘를 받다 보니 러시아 지휘관은 돌격할 때 북한 군인들을 맨 먼저 나가게 합니다. 그들이 돌격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노출시킨 우크라이나 진지를 러시아군이 뒤이어 타격합니다. 김정은이 정말 북한군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자기의 병사들이 이렇게 미끼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정은이 자기의 병사를 아낀다면 목숨 걸고 싸우는 군인들에게 보상이라도 많이 해줘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포로의 말을 들으니 아무런 보상도 없고, 살아 돌아오면 영웅 대접해주겠다는 말이 끝이랍니다.

고대 로마의 검투사도 일반 로마인들보다 더 잘 먹고, 노예 신분임에도 가정을 가질 수 있었고, 승자는 월계관과 금전적 보상, 자유를 얻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노예제가 존재했던 국가, 로마의 노예들보다 훨씬 더 불행한 것입니다. 로마의 검투사는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알기라도 했지만 김정은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지도 못하고 사탕발림 말에 감격해 죽고 있습니다.

2025년 김정은은 또 어떤 위선으로 여러분들을 감격시킬까요. 이쯤 되면 속이는 사람보다 속은 사람이 더 바보가 아닐지 음력설을 보내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