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사실상 노예제가 운영되는 북한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4.12.06
[주성하의 서울살이] 사실상 노예제가 운영되는 북한 압록강 변의 한 수용소에서 북한 여군이 철조망 너머로 밖을 바라보고 있다.
/AP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놓고 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 박광호 북한 중앙재판소 국장도 참가했습니다. 눈길을 끈 점은 박광호 국장이 공개처형과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에둘러서 인정한 것입니다.

 

공개처형에 대해선 “사형은 원칙적으로 지정된 장소에서 비공개로 집행된다”면서도 “예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것이 예외냐.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도 뉘우치지 않고 또다시 극악한 살인을 저지른 경우, 피해자의 가족이 묵은 원한을 풀기 위해 공개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 경우 등”을 예외가 적용되는 사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듣기엔 이게 사실이 맞습니까. 북한은 늘 거짓말을 하는데 선수들이죠.

 

북한에서 관리소로 불리는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선 “반국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와 개혁 기관은 있다”고 말하며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시인했습니다. 박광호 국장은 “반국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적대 세력이 파견한 간첩과 테러리스트, 사회주의 체제에 원한을 품고 전복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며 “이 범주에 속하는 수감자들은 일반 수감자들과는 별도로 개혁 기관에 수용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죠. 탈북했다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김정은 욕을 한번 했다가 온 일가가 끌려간 사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외부 세계에선 북한의 인권 문제를 늘 거론하지만, 실제 북한의 감옥이나 교화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안다면 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수용소가 저리 가라 할 정도라고 혀를 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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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교화소에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얼마 전에도 저는 전거리교화소에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6년의 수감생활을 견뎌내고 살아 탈북한 권효진이란 분의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교화소에서 6년을 버텨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고, 그가 석방될 때 안전원(경찰)들조차 그를 영웅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분이 살 수 있었던 비결은 교화소 내 죄수들 중 두 번째로 높은 ‘총지령공’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밖에 있는 그의 가족들이 많은 뇌물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반 죄수였다면 6년을 버틸 수 없지요. 총지령공은 교화소의 실태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직책이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매우 특별합니다. 탈북민이 많이 수용되는 전거리교화소와 증산교화소의 처참한 실태는 많은 증언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전거리교화소에서 죽으면 ‘불망산’에 간다는 사실도 알려졌지만, 실제 가본 사람은 그가 유일할 겁니다.

 

그의 증언을 그대로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총지령공은 생산 지령과 결과를 관장하고 입소, 퇴소, 병보석, 사망자 등을 종합해 교화국에 보고합니다. 제가 있을 당시 전거리교화소는 800명 수용 능력이었지만 보통 1,100명이 수감돼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보안원과 경비병이 240명이었습니다.

 

33개 교화반이 있는데 동 정광을 채취하고, 임업과 감자농사 등을 했습니다. 이렇게 전국 교화소에서 죄수들이 생산한 것으로 사회안전성이 먹고 삽니다. 죄수들이 안전성의 노예들인 셈입니다.

 

전거리엔 매일 10여명이 새로 입소하는데, 사람이 죽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제일 적게 죽는 날이 2명이었고, 평균 5~7명씩 죽었습니다. 추운 겨울엔 10명 이상씩 죽습니다.

죄수가 죽으면 ‘사체보관실’에 쌓아두었다가 저녁에 불망산으로 부르는 외딴 화장터에서 태웁니다. 시체를 처리할 때는 총지령공과 수레꾼 4명 등 모두 8명이 갑니다.

 

화장터엔 굵은 철근으로 만든 직사각형의 틀이 있는데, 아래에 나무를 쌓고 시체를 올려놓습니다. 삐쩍 마른 시신은 통나무 두께도 안 됩니다. 차곡차곡 놓으면 틀에 모두 12구의 시신이 올라갑니다. 저녁에 불을 지피고 내려갔다가 아침에 올라가면 재들이 선반 아래에 수북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걸 삽으로 퍼서 화장터 주변에 막 뿌리고, 빗자루로 씁니다. 무덤 같은 것이 없습니다. 저녁에 또 반복됩니다.

 

총지령원 기간에 그가 처리한 시신만 수천 구라고 합니다. 이런 곳이니 교화소에서 3년을 버티면 영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전거리교화소는 북한에서 규모가 작은 축에 속합니다. 그가 있을 당시 북한에는 교화소가 모두 12곳이 있었습니다. 1호 교화소인 평양 화천교화소는 신분이 드러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주로 수감돼 있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강동에 2교화소가 있고, 사리원에 3교화소, 개천에 4교화소가 있는 등 전국에 교화소가 분산돼 있습니다. 가장 규모가 큰 함흥교화소엔 1만 명이 수용돼 있다고 합니다. 그 모든 교화소에서 전거리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화소 수감자들이 안전성에 소속된 사실상 노예들이라면, 정치범수용소의 정치범은 보위부의 노예들입니다. 그 외에도 군인을 수감하는 군 교도소, 보위원만 따로 수감하는 보위부 대열과 깊은 산골에 격리되는 추방기지 등도 존재합니다.

 

교화소와 정치범수용소는 북한 체제가 지탱하는 핵심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체제를 지키는 사냥개라 할 수 있는 보위부와 안전성에 충분한 물자를 제공할 수 없는 독재자들은 대신 일을 시키고 재산을 불려줄 노예를 하사한 것입니다.

 

이들이 죽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새로운 노예는 얼마든지 충원되기 때문이죠. 이들이 생산하는 식량과 땔감 등으로 평양의 지배계층이 호화생활을 합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사실상 노예 국가인 북한의 실상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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