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만화 ‘슬램덩크’ 인기는 왜 인민의 괴로움이 됐나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4.09.20
[주성하의 서울살이] 만화 ‘슬램덩크’ 인기는 왜 인민의 괴로움이 됐나 2014년 1월 8일, 북한을 방문한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 평양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 선수들의 친선농구경기 중 공을 들고 잠시 멈춰 서 있다.
/AP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긴 추석 연휴도 지나갔습니다. 이번 추석은 주말까지 포함해서 닷새나 되기 때문에 그나마 푹 쉬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사람들이야 추석 때 불러내지 않고 그냥 집에서 온전히 연휴 내내 쉬기만 해도 감지덕지겠지만, 이럴 때 꼭 백공두삽이 나타나죠.

 

“자 여러분,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우리가 어찌 쉬겠습니까이러면서 쉬는 날에도 일하는 척 생색내는 간부를 말하는 겁니다. 그럼 아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나가야죠.

 

여러분이 사는 동네엔 이런 인간이 없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추석엔 그냥 동해 바다로 놀려갔었습니다. 해외는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이달 초 일본 도쿄에 놀려갔다 왔죠.

 

그런데 도쿄에 가서 저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를 하나 풀었는데, 그냥 우연히 깨닫게 됐습니다.

 

도쿄 인근에 태평양 바다를 끼고 달리는에노시마란 전철 노선이 있는데, 여러 역 중에가라쿠마고코마에란 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니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군요. 일본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미국 등 다양한 인종이 다 여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왜 그런지 보려고 따라 내렸죠. 젊은이 무리는 역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철도 건널목 앞에 몰려가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더군요.

 

여기가 어딘지 몰라 물어보니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가장 유명한 배경지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슬램덩크가 뭔지 몰라서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한숨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안 됐던 퍼즐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너였구나. 그때 나를 포함한 북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원흉이 바로 너였구나이런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죠.

 

‘슬램덩크라는 만화는 일본에서 최근 50년 동안 발행된 만화 가운데서 1위로 꼽히는 재미있는 만화입니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됐고 한국에서도 1992년부터 1996년 사이에 연재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고 합니다.

 

한국 내 만화 판매 부수만 무려 1,450만 부에 달했고, 1994년 발매된 비디오도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만화의 줄거리는 인기가 없던 괴짜 중학생이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는 과정인데,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만화가 연재됐던 1990년대 초중반 농구 열풍이 불어 농구공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걸 보는 순간 딱 떠오른 것이 저의 과거였습니다. 40대 이상인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1996년경 김정일의 이런 지시가 하달됐습니다.

 

“농구는 키가 크는 운동이니 전국적으로 장려하시오.”

 

이후 체육시간이면 북한 학교에선 농구만 시켰습니다. 제가 그때 김일성 대를 다녔던 때였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전에 90분 강의가 3개 있었는데, 중간수업이 체육이면 그날은 혀를 빼물어야 했습니다. 당시 우리 학급 교실은 김일성대 2호 청사 22층이었는데 층고가 높아 아파트로 치면 40층 높이에 해당하는 고층이었습니다.

 

그땐 늘 정전이라 엘리베이터도 못타고 오전 8시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후 체육수업이면 1층까지 뛰어 내려왔고 90분 내내 뛰어다니며 농구공과 씨름을 한 뒤 다시 22층까지 올라가 수업 하나를 더 들었습니다.

 

이어 점심을 먹기 위해 내려왔다가 오후 정치학습에 참가하려면 또다시 한참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22층을 한나절에 세 번 오르내린 겁니다.

 

당시는 숱한 사람들이 굶어 죽던 때였고 대학에서도 밥을 세 숟가락 정도만 주었습니다. 배고파 걷기도 힘든 학생들에게 농구는 최악의 고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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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을 향해키 크는 운동이면 키 작은 너나 할 것이지 왜 온 나라를 갑자기 들볶냐는 원망이 치솟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정점으로 치닫던 1998년엔가족롱구선수단이란 영화까지 나와 사람들의 염장을 질렀습니다. 사람이 굶어죽는데 가족 농구라니요. 김정일은 어느 시대에 사나 싶었습니다.

 

느닷없던 농구 바람이 김정일의 두 철부지 아들들 때문에 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은이 농구에 빠진 것은 12~13세 무렵인데, 이게 한국에서 만화 슬램덩크로 인한 농구 열풍이 불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김정은은 형 김정철과 함께 매일 초대소 직원이나 군인들과 농구를 했고 잘 때도 농구공을 안고 잤습니다. 심지어 고용희의 만류에도 밥 먹자마자 농구장으로 뛰어나가기 일쑤였다고 후지모토는 회상했습니다.

 

스위스 유학 시절에도 김정은은 공부는 내팽개치고 농구에 푹 빠졌는데. 그의 방은 미국 농구팀 시카고 불스의 기념품들로 가득 찼다고 동창생들이 증언합니다. 김정은이 권력을 잡자마자 데니스 로드먼을 다섯 번이나 북한으로 초대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슬램덩크를 만화로 봤는지 아동영화(애니메이션)로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젊은이들이 농구 열풍에 휩싸였을 때 북한에선 김정일의 두 어린 아들만 농구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김정일은 그게 기특했던지 전국에 농구 열풍을 일으키라고 지시했는데 인민이 굶어 죽어 나갔지만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김정은은반동사상문화배격법등 각종 악법을 쏟아내며 외부 문물을 접한 10대 청소년들을 마구 감옥에 잡아넣고 있습니다. 외부 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을 본인의 체험으로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에 대한 공포도 누구보다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덧 김정은도 4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의 딸 주애는 올해 11세로, 이제 막 사춘기 초입에 들어설 나이입니다. 김정은의 맹목적인 딸 사랑과 사춘기 딸의 변덕이 결합해 인민을 또 다른 방식으로 대를 이어 괴롭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 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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