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 1순위 반동은 김정은 남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4.06.07
[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 1순위 반동은 김정은 남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19일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북한 내부 소식을 들어보면 북한에서 청년으로 살기가 참 피곤한가 봅니다. 땅을 잘못 타고난 죄로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꿈이 부풀어 올라야 할 청년들이 당국의 채찍질에 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김정은은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니, ‘청년교양보장법이니, ‘평양문화어보호법이니 하는 악법들을 연이어 내놓고 청년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걸 보면 저는 저런 악법에 가장 먼저 해당되는 것이 김정은과 그의 일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닐 때 미국 문화에 푹 빠져 있던 학생이었습니다.

 

김정은의 스위스 생활에 대해 많은 증언들이 있는데, 오늘은 김정은을 스위스에서 돌봤던 이모 고용숙의 증언과 김정은과 가장 친했던 포르투갈 친구 주앙 미카일로의 증언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일은 정식 부인 사이에 태어나지 못한 김정은 남매를 은폐시키기 위해 모두 스위스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삼남매를 돌봐야 할 사람이 필요했죠. 김정은의 모친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재일교포 출신인 고용희인데, 그의 여동생 고용숙이 김정은 남매를 돌보는 임무로 발탁됐습니다.

 

고용숙은 1998년 스위스에서 남편 이강과 자식 3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김정은에 대한 자세한 증언을 남겼죠.

 

이에 따르면 김정일은 1992년에 10살이 된 김정은의 형 김정철을 먼저 고용숙과 함께 보냈습니다. 김정철은 스위스에 있는 베른국제학교를 박철이란 가명을 쓰고 북한 대사관 운전수의 아들로 위장하여 9학년까지 다녔습니다.

 

이들이 자리를 잡자 1996 12살이 된 김정은과 9살이 된 김여정이 뒤이어 따라왔는데, 김정은은 박은, 김여정은 박정순이란 가명을 쓰고 살았습니다.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국제학교를 다니다가 1998년 베른 근처의 슐레 리베펠트슈타인 휠츨리 공립학교로 옮겼습니다. 아마 이모 가족이 미국으로 가서 정체를 숨기느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정은은 국제학교를 다닐 때 미국 문화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를 가르쳤던 선생들은영어 벙어리, 시험엔 낙제, 농구와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 있었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우상은 당시 세계 농구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로 알려진 마이클 조던이었고, 또 조던의 소속팀인 시카고 불스 농구팀을 응원했습니다.

 

김정은의 방은 마이클 조던, 토니 쿠코치,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 등 세계적 농구선수의 화보로 가득찼습니다.

 

김정은은 공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민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 굶어 죽을 때 3남매는 이모와 함께 유럽을 마음껏 놀려 다녔습니다.

 

이들은 여름엔 프랑스 지중해 해변에서 수영을 했고, 겨울엔 스위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탔고, 날씨 좋은 계절엔 유명한 이탈리아 식당을 다니는 등 엄청 호화로운 삶을 누렸습니다.

 

그렇게 4년 넘게 미국의 문화에 푹 빠져 있던 김정은은 2000년 평양에 돌아갔지만, 자기가 겪었던 서양 문화를 잊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억하겠지만, 김정은은 권력을 잡자마자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부터 평양에 불러들였습니다. 물론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선수를 더 좋아했겠지만, 이들은 세계적 유명 인사라 김정은이 부른다고 갈 사람들이 아닙니다. 결국 꿩 대신 닭이라고 한때 좀 이름을 날렸지만 말년에 돈이 궁해 있던 로드먼을 부른거죠.

 

지금도 김정은은 스위스 시절의 입맛을 갖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스위스 대표 치즈인 에멘탈 치즈를 계속 수입해 먹습니다. 그러니까 뚱뚱해질 수밖에 없겠죠.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은 한 수 더 뜹니다. 농구에 빠진 김정은과 달리 김정철은 또 기타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에릭 클립튼이라는 영국 연주가에게 푹 빠졌는데, 평양에 돌아간 뒤에도 그가 공연을 한다고 하면 꼭 나와 직접 들었습니다.

 

외무성 부상 강석주에게 클립튼을 평양에 초청해달라고 그리 졸랐는데, 클립튼이 독재자에겐 안 간다며 거절했습니다.

 

김정철이 현지 공연을 찾았다가 외부에 노출된 것만 해도 여러 번인데, 2006 6월 독일 공연, 2011 2월 싱가포르 공연, 2015 5월 영국 공연 등입니다. 싱가포르 공연 때는 젊은 여자들도 여럿 데리고 나타났고, 2015년 영국에 갔을 때 그를 4일 동안 뒤치다꺼리해준 것이 나중에 한국에 망명해 국회의원까지 지낸 태영호 영국 공사였습니다.

 

김정철의 존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 지금도 몰래 여자들을 끼고 외국 놀려 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정은의 배다른 형인 김정남도 해외에 살면서 전 세계를 누비다가 나중에 김정은의 손에 독살됐는데, 그도 놀려 다닐 때 여자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아마 김정은도 권력을 잡지 않았으면 김정철이나 김정남처럼 계속 외국에 놀려 다녔을 겁니다.

 

김정은은 누구보다 자유 민주주의와 서방 문화의 힘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흡입력이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북한 청년들이 절대 접촉하지 못하게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입니다.

 

외부 음악 좀 들었다고 감옥에 보내고, 영화를 유포했다고 미성년자들까지 총살하는 등 극악한 통제를 서슴없이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따지면 제일 먼저 총살해야 할 사람이 바로 김정철이나 김정은 아닙니까. 영국 기타리스트에 빠져 외국까지 꼬박꼬박 쫓아가 공연장을 찾는 김정철은 제일 먼저 처형되거나 종신형을 받아야겠죠. 권력을 미국 농구 선수를 끌어들이는데 제일 먼저 쓴 김정은은 또 어떻습니까. 온갖 외국제 재질의 고급 옷을 휘두르고 다니는 김주애는 교양받아야 할 불량 청소년이 아닙니까.

 

이렇게 자기들은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인민들은 절대 못하게 하니, 이런 제도가 대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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