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이밥에 질린 남한 아이들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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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랫동안 막혀 있던 대북 식량지원이 드디어 조금씩이나마 재개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조선적십자중앙위원회는 지난 16일에 한국이 작년 10월에 주겠다고 제안했던 강냉이 1만 톤을 받겠다는 의사를 통지해왔습니다. 강냉이 한 톤이 국제시세로 약 150달라 정도 하니깐 1만 톤이면 150만 달라 정도 되는 지원액입니다. 이번에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해 수십 만 명이 사망했는데, 한국이 지원하기로 한 금액이 1000만 달라 정도 됩니다.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하면 또 지금까지 북에 줘왔던 규모에 비하면 150만 달라는 상당히 적은 액수고 그래서 북조선도 아마 자존심이 상해서 석 달 가까이 받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다가 이번에 마지못해 받기로 한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고작 강냉이 1만 톤을 내놓고 대북 지원하겠다고 생색을 내는 것이 정말 보기 좋지는 않습니다. 19일에는 ‘월드비전’이라는 국제구호단체에서 북에 밀가루 500톤을 올려 보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많지는 않은 량이지만 이 단체는 이 밀가루를 대흥단군을 포함한 량강도 고산지대에 어린이들을 둔 가정에 우선적으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밀가루가 량강도에 도착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량강도와 밀가루 하는 단어를 접하는 순간 저의 머리 속에는 ‘감자가루밥’이 생각났습니다. 이번에 밀가루가 진짜로 량강도에 가면 다 그렇게 먹겠죠. 사실 밀가루 음식하면 빵이나 칼국수를 해서 먹으면 맛이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분한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잘사는 집에서나 그렇게 먹죠. 좀 사는 집에선 감자 같은 것과 섞어서 수제비국, 다시 말하면 뜨덕국이라는 것을 해먹고, 못사는 집에서는 감자를 밑에 깔고 위에 곡물가루를 뿌려서 찐 뒤 함께 막 비벼서 먹는 감자가루밥을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감자가루밥에 강냉이 가루를 섞어서 먹다가 밀가루를 섞어 먹으면 정말 고급인 셈입니다. 감자라는 것이 먹고 돌아서면 꺼지기 때문에 량강도 사람들은 한 끼에 큰 쟁개비(냄비)에 곡상(가득)으로 밥을 먹는데, 아마 여기 사람들이 밥량을 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여기선 그 정도 밥이면 이틀이나 먹을 수 있거든요. 북에는 기름도, 간식도 없고 오직 필요한 탄수화물을 밥에서 다 보충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 여기 젊은 사람들이 믿기는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북에서 대학 다닐 때 배고파서 8명 분 밥을 한 끼에 다 먹은 적도 있습니다. 워낙 밥량이 작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도 8명분인데, 여기선 못해도 하루 넘게 먹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잘 사는 자가생 집에 가면요, 옛날에 고생 좀 해본 자가생 부모들은 기숙사생활이 얼마나 배고프겠냐며 큰 그릇에 가득 밥을 담아주는데, 곱게 자란 부모들은 자기들이 먹는 똑같은 공기밥으로 식사를 권합니다. 사양하는 척 하면서 두 그릇까지는 먹는데 세 그릇은 눈치가 보여서 못 먹습니다. 사실 두 그릇은 성차지 않고 다섯 그릇은 먹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작은 공기밥으로 하나를 먹으면 배가 불러 못 먹습니다. 배에 기름이 져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저는 배고파본 경험이 있어서 사람이 밥을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여기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한국에서 1인당 1년 쌀 소비량이 80㎏ 조금 넘는데 한달로 치면 7㎏ 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한 사람이 20㎏는 넘게 먹는 북에선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여기선 대신 기름진 가루음식이나 고기, 당과류 등을 많이 먹습니다.

북에서 강냉이가 주식이었는데 여기선 강냉이밥 이런 것이 없고 풋강냉이로나 조금 먹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쪽에는 강냉이 생산량이 5만 톤 정도에 불과하고 이것도 거의 다 찰강냉이를 심습니다. 한해 강냉이 몇 백만 톤을 생산하는 북조선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1년 동안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강냉이는 거의 900만 톤이나 됩니다. 이렇게 들여와서는 대다수가 다 가축 사료로 소비됩니다.

사람이 강냉이를 직접 먹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북조선에서 그 흔한 강냉이 국수가 여기엔 없습니다. 가끔 속도전가루떡이나 펑펑이가루떡을 먹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돈을 많이 주고도 살 데가 없습니다. 얼마 전 북조선과 사업하는 사람들이 몰래 가져온 펑펑이가루를 얻어서 떡을 해먹었습니다. 이런 실정이니 여기에는 짝강냉이나 묵지가루란 말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있습니다. 여기에 통일교육을 한답시고 초등학교 학생들 불러놓고 북조선 이야기를 들려준 뒤 점심에 강냉이밥을 먹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북조선 어린이들은 늘 이런 강냉이밥을 먹으니 한번 체험해 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강냉이가 찰강냉이밥입니다. 늘 이밥만 질리게 먹던 아이들이 찰강냉이밥이라는 것을 처음 먹으니 정말 맛있는 겁니다. 그러니깐 아이들이 “북조선 어린이들은 참 좋겠다. 늘 이런 맛있는 밥만 먹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애들에게 감자가루밥까지 주면 이밥을 먹느라 질린 남조선을 떠나 북조선에 가서 살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과 북은 분단 50년 동안 이렇게 식생활 풍습까지 판이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북조선 어린이들 입에서도 이밥과 돼지고기가 질려서 부모에게 강냉이밥과 감자가루밥을 해달라고 조르는 그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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