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과 북의 퇴근 후 여가문화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4.01
ice_leisure_305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축제에서 시민들이 대형얼음 위에서 오래 버티기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남과 북의 퇴근 후의 여가문화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저는 북에 있을 때에는 퇴근해서 할 일이 많진 않았습니다. 늘 정전이니 새까만 밤에 뭘 하겠습니까. 밥을 먹은 뒤엔 카바이드 등잔불 아래서 책을 좀 보거나 또는 날씨가 더운 여름 같은 때는 밖에 앉아 기타나 치면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좀 보내다가 10시 좀 넘으면 자고 대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북에선 일을 시작하는 시간도 8시이고 학교 수업 시작도 8시부터입니다. 여기 한국에선 수업은 8시 반, 일은 직장마다 좀 다르지만 대체로 9시에 시작합니다. 북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몇 번은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12시 넘어 까지 주패를 놀고 그런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흥수 주패가 유행했는데 요샌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오니 밤에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여기는 정전이란 법이 없으니 일이 끝난 뒤에 사람들이 취미에 따라 이것저것 하는 것이 많습니다. 남자들 같은 경우엔 일이 끝나선 친구나 직장사람들끼리 식당에 모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자리에 여자들도 많이 참석하기도 하고요. 술을 마시면서 자리에 없는 직장 간부를 흉본다든지, 최근 정세를 분석한다든지 이런 건 남북이 똑같습니다.

술자리를 피하고 밤에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남쪽에선, 특히 서울엔 육체노동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잘 먹고 가만히 있으면 비만이 오기 쉽습니다. 그래서 밤에 스포츠센터라고 불리는 체육관이나 또는 아파트 주변 공원에 가서 달리기도 하고 아령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운동합니다. 특히 여자들이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많이 합니다. 처녀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결혼한 주부는 출산으로 흐트러진 몸매를 다시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운동합니다. 여긴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니 살을 빼겠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북에서 와서 보시면 남조선 여자들은 왜 저리 빼빼 말랐나 하실 겁니다.

운동 대신 집에 앉아서 텔레비죤을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긴 티비 통로가 한 120여개 정도 됩니다. 아동 영화하는 통로에선 전문 아동영화만 하루 종일 나옵니다. 또 이런 아동용 통로가 열개 정도 됩니다. 영화만 하는 통로도 한 열개 되고, 기록영화만 하는 통로도 있고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아무 때나 골라볼 수 있고 볼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저장시켰다가 나중에 다시 볼 수도 있습니다.

텔레비도 안 본다 이러면 콤퓨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콤퓨터에서 뉴스를 찾아보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북에도 이런 콤퓨터 게임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 게임은 좀 더 수준이 높습니다. 총 쏘고 활 쏘고 이런 것도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장기를 두거나 화투를 놓기도 합니다. 이런 게임은 중독성이 강합니다. 저도 처음에 한국에 와서 인터넷으로 화투를 놀다가 그거 그만두는 것이 상당히 힘들더군요. 게임 중독자 문제는 한국에서 골치 아픈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우에서 말한 것들을 저녁에 딱 한개만 하지는 않습니다. 두루두루 섞어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여섯 시에 일이 끝나서 한두 시간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옵니다. 오는 길에 보면 아파트 주변엔 걷기 운동하느라 호흡을 맞추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에 들어와 씻고 텔레비로 8시 보도나 9시 보도를 봅니다. 여기는 보도가 한 시간씩 합니다. 보도 뒤엔 보통 연속극을 하는데 그걸 볼 수도 있고 안보면 콤퓨터를 켜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글을 찾아보거나 게임을 합니다.

이렇다보니 한국 사람들은 보통 늦게 잡니다. 개개인의 차이가 많지만 일반적으로 12시 넘어 자는 것 같습니다. 제가 도시 중심으로 말씀드렸는데 농촌에선 직장끼리 모여서 술을 마신다거나 운동 같은 것은 잘 안합니다. 매일 하는 일이 곧 운동이니 구태여 따로 할 필요가 없지요. 대신 농촌에선 텔레비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 와서 보면 잘 사는 나라일수록 생활이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북에선 저녁이면 어느 집에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많지만 여기선 밤에 남의 집엔 거의 가지 않습니다. 인민반이니 이런 것도 없으니 아파트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생활이 보호되는 좋은 점도 있지만 이웃들끼리 오가는 정이 없어진다는 점에선 아쉽기도 한 대목입니다.

남북을 똑같이 살아본 입장에서 퇴근 뒤의 문화가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사는 방식의 차이지 이런 것을 놓고 발전했느니 미개하니 하고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에선 밤에 늘 정전이 돼서 그렇지 전기불만 잘 온다 하면 거기에서도 밤에 할 일은 많습니다. 불이 잘 오면 북조선의 밤 여가생활도 확 달라질 겁니다. 전깃불 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것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면 암흑이란 늘 오래 못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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