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의 농업 산업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09.12.24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저는 열흘 동안 일이 생겨서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2003년에 한번 다녀오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 제가 미국에 갔다 오면서 하늘을 난 거리를 계산해보니까 대략 6만6000리 정도 되더군요. 이중 4만6000리 정도는 미국 가느라고 태평양을 왕복으로 횡단했던 거리입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면 미국 서부의 로스앤젤레스까지는 대략 10시간 정도, 동부의 워싱턴까지 13시간 정도 걸립니다. 정말 한번 날아가기 지루합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라진까지 기차로 빨리 가도 24시간 이상 걸리지 않습니까. 그걸 보면 평양에서 라진까지 갈 시간이면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까지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제가 일주일 씩 기차를 타고 다니던 불과 10년 전 기억을 다 잊어먹고 비행기 의자에 앉아 미국까지 13시간 날아갔다고 불평하는 것을 보면 정말 사람이 편안해지려는 욕심은 끝이 없는 가 봅니다.

미국에 다녀 온 소감, 참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국에 돌아가면 여러분들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농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휴스턴을 다니느라 미국 안에서만 2만 리 정도 날아다녔습니다. 여객기는 보통 지상에서 1만m 상공을 납니다. 이 정도 높이면 구름만 없으면 지상의 집들까지 다 내려다보입니다.

1만m 상공에서 미국 땅을 내려다보니 정말 보이는 것은 바둑판처럼 펼쳐진 끝을 보기 힘든 평야밖에 없더군요. 미국 농경지 면적은 2억 정보나 된답니다. 북조선의 농경지 면적이 대략 200만 정보 정도 되니까 미국의 농경지 면적은 북조선에 비해 100배가 많은 셈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농업종사자는 인구 3억 명의 약 2.1%에 불과한 610만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북조선의 농업종사자는 미국보다 더 많아서 80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결국 1인당 경작면적이 북조선이 미국보다 100배 이상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북조선 사람 100명이 달라붙어 농사짓는 땅에서 미국 사람 1명이 농사짓는다는 말입니다. 미국 농가 1세대가 경작하는 면적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무려 평균 180정보입니다. 1세대가 북조선의 두어 개 작업반의 경작 면적과 맞먹는 땅에서 농사짓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얼마나 생산 되냐를 아시게 되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20% 정도가 미국에서 생산됩니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이 18억~19억 톤이니 미국에서만 대략 4억 톤에 가까운 곡물이 생산되는 셈입니다. 강냉이만 미국에서 1년에 3억 톤 넘게 생산됩니다.

그런데 북조선에서는 미국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농사에 매달리고도, 거기에 봄가을 마다 전국이 농촌지원전투에 총동원되고도 1년에 400만 톤도 생산 못해서 배급제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아마 미국에서 이만한 인원이 동원돼 농사지었으면 4억 톤도 넘게 생산했겠죠.

제가 이 말을 왜 하겠습니까. 미국에서 보니 북조선은 절대로 농사로 살아갈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전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북조선의 척박한 땅과 고작 200년 남짓한 역사의 미국의 비옥한 땅, 거기에 비행기로 비료를 뿌릴 만큼 무연한 평야를 자랑하는 미국과 온통 비탈 밭, 뙈기밭뿐인 북조선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승용차를 타고 미국의 평야를 달리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정말 북한에서 농사를 많이 지어봤던 저로서는 입만 벌어지는 광경이었습니다. 자로 잰 듯한 밭고랑이 끝이 안보입니다.

한 3년 전에 제가 중국에 출장을 가서 베이징에서 산동 반도까지 기차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산을 찾아볼 수 없는 무연한 평야에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보다 더 합니다.

미국이나 중국을 보면서 저는 우리는 농업으로 살아갈 나라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굳게 갖게 됐습니다. 공업품을 생산해서 세계에 팔고 그 돈으로 다른 나라에서 대량 생산한 곡물을 사와서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미국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지금 한국이 그런 방식으로 삽니다.

그런데 지금도 북에서는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온 나라를 농사에 매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건 애초 방향부터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절대로 그게 아닙니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공업부터 발전시켜야 합니다.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아직도 일제가 만들어놓은 것을 그대로 쓰는 도로나 철도, 항만 이것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로동당에서는 지금 농사제일주의를 외치면서 쌀은 곧 사회주의이자 강성대국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농사에 매달려 한 해 한 해 하루살이 식으로 버티려하는지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러면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하루빨리 로동당이 정책을 바꾸어서 개성공단처럼 외국에서 기술과 자재를 대고, 북조선에서 인력을 대는 방식의 특구 위주의 경제정책을 제일주의로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도 특구부터 시작해 일어섰습니다.

북조선 인구라 해봤자 2000만 명 정도가 사는 중국 상해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라가 작아서 경제정책만 바로세우면 얼마든지 빠른 시일 내에 잘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북조선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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