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내세웠다는 김혁·차광수의 진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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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가 공개한 김일성회고록의 친필원본.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김일성회고록의 친필원본.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일성 회고록이 숨기는 김일성 항일의 진실’ 오늘은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북한이 김일성을 목숨 바쳐 지켰다는 초기 청년공산주의자의 전형으로 선전하는 김혁과 차광수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김혁, 차광수란 이름은 김일성 회고록이 나오기 전 영화 ‘조선의 별’을 통해 알려졌고 ‘1980년대의 김혁 차광수가 되자’라는 구호까지 나왔습니다. 지금도 김혁, 차광수는 김일성이 별로 유명하지 않았을 때 그를 조선의 지도자로 내세운 인물처럼 여러분들에게 선전되고 있습니다. 영화 조선의 별을 보면 김혁과 차광수가 김성주가 조선의 별이 되라는 의미에서 한별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나중에 김일성이란 이름까지 지어준 것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당시 한별이란 이름을 쓴 사람은 김성주가 1930년 7월 돈화 현유향 모아산에서 중국 공산당 예비당원이 될 때 그의 입당보증인이 돼준 대선배였습니다. 김일성은 김성주가 당시 항간에 유명한 김일성 이름을 차용한 것입니다. 김혁은 ‘조선의 밤하늘에 샛별이 솟아, 3천리 금수강산 밝게도 비치네’라고 시작하는 ‘조선의 별’이란 노래를 지은 것으로 선전하죠. 하지만 이것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조선의 별이란 노래는 1970년대 김일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김정일이 선전부에 “수령님 초기 혁명 활동과 관련된 노래가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되니 무조건 발굴하라”고 내리먹이니 아래에서 지어낸 것입니다.

김정일이 찾으라면 찾아야 하니까 선전부가 북한을 수소문해보니 평남 개천군에 1930년대 카륜에서 살았다는 노파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중앙방송에서 최고의 작곡가와 작가가 그 노파를 찾아갔는데, 가보니 나이는 90세가 넘었고, 귀도 다 먹고 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래는커녕 아무 것도 기억도 못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개도 사슴이라고 우겨야 사는 세상이라 이 작가와 작곡가는 갔던 개천 그 리 축산반 선전실에 앉아서 며칠 동안 머리 맞대고 노래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올라와 노파가 전해준 김일성 칭송 노래라고 전달한 것이 바로 ‘조선의 별’ 노래였던 것입니다.

김정일이 흐뭇해서 두 명에게 엄청난 상을 준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곧 이 노래를 바탕으로 조선의 별이란 김성주의 혁명역사를 완전히 왜곡해 미화시킨 연재 영화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 김혁과 차광수는 실제로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10대의 김성주가 ‘형님, 형님’ 하면서 따라다녔던 혁명의 선배들이었습니다.

차광수는 본명이 차응선이며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일성보다 무려 7살이나 형님이죠. 그는 일본에서 고학으로 공부를 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배웠고, 귀국 후에 서울에서 살다가 만주로 왔는데 초기에는 길림성 유하현에 정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장가도 들고 했지만 원래 배운 것이 많고 또 달변가라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에서 차기 지도자감으로 찍어놓았습니다.

1920년대 후반기 중국 동만에 조직되었던 조선인 청년단체 ‘동만청총’의 간부였고, 김일성 회고록에도 나오는 왕청문 사건에서 살아남았던 김금열이란 사람이 1987년까지 중국 용정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차광수와 이종락은 당시 하도 유명했지만 김성주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아마 김성주는 차광수나 이종락의 심부름이나 따라다녔을지 모르겠다”고 증언했습니다.

북한은 차광수를 선전할 때 김혁도 늘 같이 선전하고, 구호에선 ‘김혁, 차광수’라며 김혁의 이름을 먼저 놓습니다. 그래서 김혁이 차광수보다 더 대단하거나 비슷하게 유명할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김혁은 차광수의 친구이긴 해도 차광수만큼 유명하진 않았습니다. 본명이 김근혁이고 화요파에 가담했었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나중에 하얼빈에서 일제에게 체포됐다는 정도만 알려졌죠.

나이가 7살쯤 많은 김혁이 기타로 이름도 없던 한창 아래 김성주를 칭송했다는 것은 정말 상상 속 소설이죠. 영화에서 그렸듯이 김혁이 일제에게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삐라를 뿌리고 “한별 만세!”를 외치며 건물에서 뛰어내린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총상을 입고 일제에게 체포된 것까진 나왔는데 그 이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시 이종락이나 김광렬같은 훨씬 더 쟁쟁한 혁명가들도 전향을 했던 시절이라 아마 김혁도 전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님 고문 중에 죽거나 했을 겁니다.

김혁의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시 만주에선 청년이면 다 혁명에 나섰기 때문에 일제도 웬만한 사람은 기록하지도 않았습니다. 김혁의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가 별로 대단한 혁명가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영화에선 차광수가 일제와 용감하게 싸우다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차광수는 좀 어이없이 죽었습니다.

1930년대 여름 김성주가 유본초 구국군 별동대에 들어가서 남만 통화까지 갔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다시 동만으로 돌아오는데 김성주를 잡겠다고 조선혁명군 특무대가 100여 명의 구국군과 합세해 다시 쫓아왔습니다. 먼저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조선혁명군 고동뢰 소대장을 김성주가 몰래 비겁하게 죽였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차광수와 김성주는 안도 주변 양강구 쪽에 와서 따라 잡혔는데 김성주보다 유명한 차광수가 근처 중국인 부대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가려던 부대가 아닌 그 옆에 공산당 싫어하는 중국인 부대 구역에 잘못 들어갔다가 총격전을 벌이고 어이 없이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김혁과 차광수의 진짜 생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김혁, 차광수가 김성주에게 충직했던 인물이라 선전하지만, 진실은 김혁, 차광수에게 김성주가 충직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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