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면 안도현장이 꿈이던 김일성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4.14
ilsong_liberation_b 지난 2013년 인민대학습당에서 열린 조국해방전쟁승리 60주년 경축 중앙사진전람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까지 쭉 연속 방송해 왔던 김일성 회고록이 말해주지 않는 김일성 항일운동의 진실은 오늘까지 10회째로, 일단 마감하려 합니다.

마침 공교롭게도 마감하는 날이 김일성의 105주년 생일인 태양절이군요. 제가 지금까지 10회 분량으로 말씀드린 내용들은 1935년까지 만입니다.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이야기는 내년쯤에 다시 연속해서 들려드릴까 합니다.

요즘 북한에서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민족의 태양’을 연속 방영해주고 있는데, 진실을 알고 보면 정말 황당하죠. 1930년대 초반 동만의 조선인 중에서 공산주의가 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또 일제와 맞서 싸웠던 이들의 꿈도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김일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변에 항일연군 2군 6사에서 김일성과 한솥밥을 정말 오래 먹었던 여영준이란 투사가 있었습니다. 해방 후 북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연변에 남은 투사들도 많은데 여영준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1990년대 초반까지 연변에서 살면서 회고록도 남겼습니다. 그런 여영준이 김일성 전기를 쓰기 위해 찾아간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처장즈인지, 내두산인지 장소가 잘 생각나진 않는데 한번은 김일성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김 정위, 우리가 이렇게 먹을 것도 못 먹고 입을 것도 못 입으면서 일제와 싸우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언젠가 왜놈을 다 몰아내고 해방이 되면 공산당에서 우리한테 무엇을 시킬까요?’ 그랬더니 김일성이 이렇게 대답하더라. ‘나는 안도 사람이고 안도에서 많이 활동해 왔는데 최소한 안도현장 쯤이야 시켜주겠지’ 그래서 우리 몇은 김일성의 주변에 모여 앉아 너는 김 정위 밑에서 안도현의 공안국장을 하고 나는 안도현의 위수사령관을 하마, 하고 말장난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까지 김일성도 북조선에 돌아가 이렇게 한 개 나라를 세울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때까지 항일연군의 꿈은 소박했습니다. 김일성조차도 일제를 몰아내면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중국 공산당에서 안도현장 정도 시켜줄 것을 바라며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북한의 우상화 TV를 보면 김일성은 거의 하나님 급의 혁명가입니다.

항일연군은 늘 춥고 배고프게 산 데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생활도 정말 난잡했습니다.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오늘 이 여자 내일 저 여자 막 바꿔 살았습니다.

높은 간부면 특히 여자를 더 많이 사귀었는데, 최용건도 숱한 여자들을 바꿔가며 살았고, 앞서 말씀드린 전광도 바람둥이로 소문나 가는 곳마다 여자를 사귀고 동거하고 지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한 2군 6사 출신의 여영준은 “김정숙은 김일성보다 내가 먼저 데리고 살았다”고 고백했는데, 이 이야기는 연변 지방에서 비밀 아닌 비밀이었습니다. 훗날 작가가 물어보니 “아니 그때 나만 그랬냐, 그때 모두 그랬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김일성을 거쳐 간 여성도, 김정숙을 거쳐 간 남자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련에 가서야 쫓겨 다닐 걱정이 없어 한 남자에 한 여자로 짝이 고착됐던 것이죠.

여영준이 말한 내용 중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항일연군 중엔 4사 사장을 지낸 안봉학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장이면 김일성과 같은 지위였죠. 그런데 안봉학이 어느 날 도주해 일본군에 변절했는데 이유가 황당합니다. 여영준 뿐만 아니라, 박춘일, 김명주 등 항일연군의 연고자들은 한결같이 “안봉학이 내두산 밀영에서 치료받다가 최현의 아내 김철호와 바람을 피웠는데 그만 성격 급한 최현이 알고 총으로 쏴 죽인다고 달려오는 바람에 부대도 버리고 혼자 도망했던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서 항일연군 출신들은 바람피우는 것에 매우 관대합니다.

해방 후에 김정숙은 원래 인물도 없고, 나이도 많아 김일성에게 찬밥 대접을 받았는데 김정숙이 아직 살아있었던 1948년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소련 전승절인 5월 9일에 김일성은 안길 등 부하들을 데리고 평남 성천군에 야유회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갈 때 김일성이 승용차에서 운전수와 경호원이 앞에 다 타 있는 상황인데 뒷좌석에서 당시 기술서기국 비서였던 김성애를 무릎에 앉히고 그 짓을 한 겁니다.

이 사실이 운전기사를 통해 최용건에게 보고 됐는데, 최용건이 그냥 빙그레 웃고 지나갔답니다. 자기도 똑같으니까요. 이는 해방 후 최용건의 경호를 맡았고, 훗날 중국에 들어온 정종길이란 항일투사의 증언입니다. 김성애도 보안국장이던 최용건 수하 타자수로 상사를 달고 시작했는데, 김일성의 눈에 들어 내각으로 데리고 온 것이죠.

훗날 김성애가 임신하게 되자, 이때 최용건의 아내 왕옥환이 나서서 김성애와 정식 결혼을 하고 데리고 살라고 시켰습니다. 여성중대 중대장을 지낸 왕옥환은 항일연군 출신 여성들 사이에 왕언니인데, 한편으론 중매쟁이로 유명했죠. 누가 전사하면 그의 여자를 바로 딴 남자와 살라고 붙여주는 일 정말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남녀 관계가 문란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 빨치산도 다 비슷합니다.

제가 사생활 이야기까지 한 것은 결국 항일투사도 인간들이란 뜻이죠. 그런데 북한은 이런 민낯을 철저히 숨기고 김일성의 경력에 분칠에 분칠을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덧바르면 결국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괴물 같은 얼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항일투사들의 증언이 보여주듯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지금 북한도 김정은 주변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꽁꽁 숨겨져 있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비밀이 다 밝혀져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란 것을 김정은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로서 김일성의 항일운동의 진실 연재를 마치며, 다음 시간엔 다른 주제로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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