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06.14
dj_kji_b 1차 남북정상회담. 2000년 6월 14일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서명 후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방송은 제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6.15남북공동성명 기념일을 맞아 제가 남쪽에서 보내는 조언 이렇게 되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께. 요새 한국 언론에서 북한 고위간부 숙청설로 떠들썩한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속으로 “너희들 다 틀렸어. 역시 우리 내부 비밀은 쉽게 나가지 않아”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죠. 김영철이 당적 처벌을 받고 김성혜, 박철, 김혁철이 출당철직을 당해 수용소에 가거나 지방에 추방을 간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을 보니 통전부 라인을 이제는 북미회담에 쓰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어찌됐든 외무성에 북미회담을 의존하기로 한 것은 잘한 판단입니다. 제가 볼 때 통전부는 북미 회담을 수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평생 미국과 한국에 대한 협박과 압박 전술만 배운 사람들이 복잡 미묘한 외교의 세계를 어찌 알겠습니까? 이번에도 북미회담을 임하는 자세를 보니 과거의 벼랑끝 전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하긴 이젠 머리가 굳어져버린 그 사람들이 한 수를 놓고 그에 따를 여러 수를 내다봐야 할 공부를 다시 하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외무성이 나서더라도 김 위원장의 결심이 따르지 않고선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마 김 위원장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저 트럼프가 선거가 내년에 있다고 아직 우리를 상대하려 하지 않는데, 우리도 버틸 수 있다. 대북 제재를 해봐야 나도 몇 년을 버틸 힘이 있다’고 말입니다.

압니다. 대북제재를 해봐야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기엔 역부족이죠. 북한은 분명 몇 년 버틸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를 얼마나 견디냐를 따지는 것은 그야 말로 힘과 힘의 대결만을 보는, 하나만 보는 단견에 불과할 뿐입니다. 해방 후 북한을 지배해 온, 그 논리를 통전부도 벗어나지 못했고, 또 김 위원장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역시 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이런 생소한 편지형식을 빌어 좀 멀리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간과 때입니다. 여기 말로 타이밍이라고 하죠. 시간을 끌면 북한 경제가 점점 나락으로 빠진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국면을 북한과 미국으로만 좁게 국한시켜 보지 말고, 미국의 아시아정책과 대중 정책, 그리고 이러한 정책이 가져올 변화, 그 변화에 따른 내게 찾아올 기회와 위기 등을 잘 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지금 중국과 미국은 치열한 힘의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올해에만 양국에서 5000억 달러의 피해가 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이게 판돈이 크게 걸린 무서운 싸움입니다. 여기서 더 나가 미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해 중국의 가장 사활적인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이 힘의 대결이 어느 일방의 승리로 끝나긴 어렵고, 양국이 모두 출혈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아직 중국은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할 만큼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만약 미국에 휴전을 요청하려 한다면 양보를 해야 할 겁니다. 그냥 미국 제품 많이 팔아주는 그런 식에서 타협될까요? 아닙니다. 제가 볼 때 트럼프의 중국 압박은 북한과 중국의 고리를 끊기 위한 큰 그림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국이 항복한다면 북한을 양보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면 중국에 북한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매년 수천 억 달러의 피해와 중국의 발전을 막으면서까지 감싸줄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김 위원장은 자신이 중국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럼 트럼프는 별 것도 아닌 북한에 왜 신경을 쓸까요? 저는 미국까지 날아가는 미사일을 쏜 것은 김 위원장의 큰 실수라고 봅니다. 이때부터 북핵 문제는 미국 안보의 매우 중요한 위협이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선을 넘지 않았으니 지켜봤지만, 일단 선을 넘은 북한은 미국의 안보를 위해 제거해야 할 목표가 된 겁니다. 김 위원장은 미중 분쟁을 잘 지켜보며 불똥이 튈지 늘 각별히 지켜봐야 할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시간을 끌수록 김 위원장이 바라는 경제발전의 기회가 매우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지금 중국에 진출한 세계적 기업들이 빠르게 탈출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자국 기업에 주고 있고, 외국계 기업을 차별하고, 거기에 임금까지 빠르게 오르는데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죠.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대탈출이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3세계 인건비가 싼 국가로 빠집니다.

이건 한편으로 북한에 있어 매우 좋은 기회를 한번 놓친 격이 됩니다. 지금 북한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삼성 엘지와 같은 한국 기업은 물론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짐을 싸들고 북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이미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완전히 날아간 것은 아닙니다. 동남아도 몇 년 지나면 인건비가 오를 겁니다. 그때 가면 옮겨갈 마땅한 새 후보지가 북한 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전에 북한이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동남아에서 탈출하는 세계적 기업을 받을 기회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몇 년 안에 준비해야 할 일입니다. 제재를 버티냐 마느냐의 단견에서 벗어나, 내가 기회를 잡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지금은 김 위원장이 양보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고리타분한 패턴을 깨고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해 지금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줄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