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폭염 속 신화를 창조하는 건설장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3.08.04
[주성하의 서울살이] 폭염 속 신화를 창조하는 건설장 평양의 한 건설 현장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AP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날씨가 정말 덥죠. 대낮에는 밖에 나가 10분만 걸어 다녀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7월 중순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난리더니 이제는 폭염이 너무 강해 문제입니다. 낮 기온이 35~36도인 날이 연일 이어지고 습도까지 매우 높습니다.

 

사람은 온도에 매우 민감합니다. 인간의 체온이 36.5도인데, 체온이 32도 이하로 떨어지거나 42도 이상 올라가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사실 32도나 42도는 체온에서 ±5도 차이로, 대단한 차이가 아님에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21도 정도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있을 때 가장 쾌적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를 상온이라고 부르는데, 실온 또한 실내의 온도가 대략 21도에서 23도 부근인 상태를 말합니다.

 

인체에서 발산하는 열이 적당히 식혀지면서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가장 쾌적하게 살 수 있습니다. 대신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하루 섭취한 칼로리 중에서 약 10%를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더우면 사람은 땀이 증발될 때 손실되는 에너지를 이용해 체온을 유지합니다. 1리터가 증발할 때 인체는 600kcal에 해당하는 열을 잃게 됩니다. 습한 날은 열이 더 잘 전도되어 체감상 훨씬 덥고, 땀이 잘 증발하지 않아 불쾌감을 느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추위보다는 더위가 훨씬 더 싫습니다. 그래서 폭염이 오는 때가 1년 중에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정말 더위를 많이 느끼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폭염이 극성을 부릴 때는 하루에 밖에 실제로 나가는 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저는 할 일을 다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주로 글을 쓰는 것이라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집에서 사무실까지 오는데 밖에 노출되는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이동 수단이 지하철이나 버스인데 여긴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와서 전혀 더위를 느끼지 않습니다.

 

식당 갔다 올 때도 좀 걷긴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시원한 실내에 들어갈 수 있어 금방 더위가 식습니다.

 

저는 여름만 되면 북한에서 살 때엔 어떻게 견뎠을까 참 궁금합니다. 분명 살긴 살았는데, 이제 다시 가서 살라고 하면 여름은 견딜 수 없는 고문이 될 게 뻔합니다.

 

제가 자랄 때 집에는 선풍기도 없었습니다. 더운 낮과 열대야가 심한 밤을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그렇게 더운 날이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더운 여름은 1993년이었습니다. 그때 김일성대 학생이었던 저는 공화국 창건 45주년과 당 창건 45주년 행사를 위해 김일성광장 배경대에 동원됐습니다. 김일성광장 대리석 바닥에 240-27, 67-55 하는 식으로 점을 찍어놓고 정해진 점 위에 서서 하루 종일 꽃다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김일성광장 주석단 지붕에 3명이 올라가 1, 5번 하는 식으로 8가지 숫자가 적힌 큰 마분지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 그 신호에 맞게 우리는 꽃다발을 듭니다. 1번은 빨간색, 2번은 노란색, 3번은 두 개 동시에 하는 식으로 들었다 놨다 합니다.

 

나중에 TV에서 보니 그 신호대로 꽃다발을 들었을 뿐인데, 김일성광장에 각종 글씨와 형상이 새겨지더군요. 그냥 집단체조 배경대와 원리가 같다고 보면 됩니다.

 

사실 머리가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사람이 고작 8가지 동작을 익히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들겠습니까.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단순한 동작을 무려 3개월이나 훈련하게 했습니다. 김일성광장은 대리석 바닥이라 한낮이 되면 달아올라 엄청 뜨거웠습니다. 우리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생고기처럼, 도망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돼서 명령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독재자를 위해 10만 명이 3개월이나 단 하나의 점을 위해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열사병이 걸려 퍽퍽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그 점은 다른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보니 저도 체중이 무려 10㎏나 빠지고, 몸은 흑인처럼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그걸 어떻게 3개월이나 버텼을까요. 이제 북한에 가면 저는 단 하루도 버틸 것 같지 못합니다.

 

공화국 창건 45주년 행사 때 이야기인데 올해 또 75주년 행사를 지금 그렇게 준비하고 있겠죠. 30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극한의 고통을 겪었을까요.

 

어디 행사 준비만 그렇습니까. 요즘 노동신문을 보면 화성지구와 서포지구, 강동지구의 대건설 전역들에서 새로운 건설 신화 창조의 불길이 계속 세차게 타오르고 있다고 연일 떠듭니다. 고작 수천 세대 짓는 것을 전역이라고 하면, 한국은 온 나라가 전역에게요. 그런데 그런 건설장에서 기한 내 완공이란 목표를 걸고 일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루 종일 일하고 숙소에 들어가도 선풍기조차 없어 열대야로 뒤척이며 잠도 제대로 못 자겠죠. 그렇다고 먹이는 걸 잘 먹이길 하나. 땀을 배출할 만큼의 칼로리를 주지 않을 게 아니겠습니까. 저런 현장에서 더위 먹고 죽어도, 수령을 위해 죽었다고 할 뿐 아무런 보상도 없을 게 뻔합니다. 저는 지금 시원한 사무실에서 이 방송을 하고 있고, 집에 가도 21도로 맞춰진 시원한 방에서 잠을 자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열 받아서 막 체온이 올라갑니다.

 

어떻게 지도자란 사람은 어디 시원한데 틀어박혀 한 달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면서도, 인민에겐 인간의 생체적 본성마저 거스를 것을 강제하는 사회가 저렇게 오래 존속할 수 있을까요. 김정은 정권이 사라지고 2,000만 인민이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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