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5000원 권 지폐 교환이 갖는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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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까지 많은 북한 기사를 썼고, 북한 당국이 그 기사에 반응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만 그중에서도 생생히 기억하는 사례가 북한의 100원 지폐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게 2006년이니 벌써 8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쓴 기사의 제목이 ‘북한 100원 지폐의 기구한 운명’이었는데, 그 기사를 쓴 때가 어제 같은 데 참 세월이 빠릅니다.

기사의 내용은 돈이 장마당에서 너무 누더기가 되니 100원권 김일성 얼굴에 테이프를 붙여 쓴다는 것입니다. 신과 같이 추앙받는 김일성의 얼굴에 테이프를 붙인다는 것은 북한에선 참으로 불경죄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기사 쓰고 한 달도 안돼서 반응이 왔는데, 자기들 보기에도 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지 곧바로 100원 지폐를 새 돈으로 교환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북에서 1일부터 5000원 권 새 지폐를 바꿔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기존의 5000원엔 김일성 사진이 있었는데 이번엔 없어졌다고 하던데 하도 돈 가치가 없으니 북한 주민들이 또 ‘불경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나요.

물론 그런 점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새 지폐에는 화폐 앞면에는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이, 뒷면에는 ‘국제친선전관람’이 인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여러분들이 돈을 마음껏 접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가운데가 찢어져도 마음껏 노동신문 종이에 풀을 발라 다시 붙여 써도 되겠네요. 5000원에서 김일성 얼굴이 사라졌으니 앞으로 2000원, 1000원 짜리에서도 김일성 얼굴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요. 아니면 앞으로 1만 원 지폐가 나오고 여기에 김일성, 김정일 사진 같이 넣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화폐를 바꾸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단지 김일성 얼굴이 훼손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는 설명이 석연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1만 원 권을 찍으려고 바꾼다는 것도 충분한 설명이 못되고요. 개인적 생각엔 위조지폐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지폐는 종이질도 형편없을 뿐 아니라 위조 방지 기술도 한심합니다. 더구나 은행이 제 구실을 못하니 화폐를 감별하는 기기도 없어 장마당에서 그냥 대충 눈으로 보고 주고받지 않습니까. 이런 환경이면 중국에서 얼마든지 위조지폐를 만들어 들여갈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은 중국의 보이스피싱 사기단이란 조직에 엄청난 피해를 봅니다. 이건 전화를 통해 사기 쳐서 돈을 몰래 빼내가는 신종 사기 수법인데, 제가 설명해봐야 여러분들에겐 잘 납득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이 보이스피싱단이 최근엔 북한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전화를 통해 사기는 치지 않지만 수법을 들어 보니 한국에 다 써먹은 수법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속아 넘어가는 고단수의 피싱단에 아직 이런 것이 뭔지 모르는 순진한 북한 사람들이 잘 속는다고 합니다. 물론 수법을 잘 배워서 다시 중국을 상대로 북한 사기꾼들도 되갚아줄 것임이 뻔하지만 그게 언제일진 모르겠네요.

보이스피싱이 진출했는데, 위조화폐라고 못 들여갈까요. 북한 화폐 정도는 중국 흑사회 조직들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이런 위조 화폐가 더는 방치할 수준이 안돼서 교환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지금 같은 북한 실정에선 또 위조 화폐가 나오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눈길을 끄는 점은 이번엔 5000원 권을 전부 바꿔주겠다고 한다는 소식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화폐개혁은 며칠 기간을 정하고, 이 기간 동안에 개인당 얼마씩 바꿔준다고 선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 화폐를 많이 쌓아놓았던 사람들은 두 눈 뜨고 돈을 국가에 약탈당하는 셈이 됩니다. 이런 화폐 개혁이 몇 번 거듭되니 북한 사람들은 국가를 신뢰하지 않고, 북한 화폐를 전혀 믿지 않게 됐는데 지금 북한에서 위안화나 달러가 많이 통용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하면 5000원 권 뭉텅이로 숨겨놓았던 사람들은 그냥 손해 보게 될 것이지만 부작용은 엄청나겠죠. 북한돈을 거들떠 안볼 것이니 휴지가 될 겁니다. 그걸 아는지, 이번에는 2017년까지 다 바꿔주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바꾸라고 했다는데, 돈 쌓아둔 사람도 3년이면 다 써먹을 수 있으니 국가를 원망하고 저주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은 그래도 믿지 못하고 쌀이나 다른 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현물을 깔고 있으려 할 겁니다. 7월 말에 장마당에서 쌀값이 갑자기 1500원이나 더 오른 게 이런 사정이죠.

약속만 지킨다면 이번 화폐개혁은 단순히 돈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북한 화폐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 어느 정도 회복하는 심리적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가 처음으로 화폐개혁을 통해 개인 재산을 약탈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이제야 신뢰가 뭔지 깨달은 것일까요. 지구상에선 이런 것이 상식이지만, 북한은 이제야 상식적인 행위를 어쩌다 하게 되는 것이니 반갑습니다. 물론 더 지켜봐야겠지만 말입니다. 북한이 앞으로도 정신 나간 짓을 하지 말고, 이번처럼 시장과 주민의 신뢰를 항상 두려워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바닥까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세계적 신용도 좀 회복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노스코리아 하면 거짓말하고, 협박이나 해대는 깡패로 인식하니 어디 가서 투자를 받으려 해도 돈 빌려주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나마 제일 잘 도와줄 수 있는 한국에게도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행위로 신용을 많이 까먹었으니 이거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약속 자꾸 어기는 사람을 다시 믿으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약속 지키는 정상 국가로 가기를 저도 여러분도 바랄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