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가지 김평일의 평양 소환을 보며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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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당시 주 폴란드 북한 대사의 모습. 김대사의 왼쪽은 두 자녀인 은송(여).인강 남매로 보인다.
지난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당시 주 폴란드 북한 대사의 모습. 김대사의 왼쪽은 두 자녀인 은송(여).인강 남매로 보인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북에서 김대를 다닐 때 금수산기념궁전 공사에 동원됐는데, 대성구역 미산동에서 당시 주석궁 울타리를 따라 한 40~50분씩 걸어 다녔습니다. 길 중간쯤 가면 잘 지은 2층 집들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항일투사라든가, 비전향장기수라든가, 북한 대장 등의 급수 정도에 주는 고급 주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주택은 주석궁 지키는 호위국 부대 바로 앞에 있었는데, 저는 그 집을 지나다닐 때마다 저기 사는 사람은 시끄러워 어떻게 살까 걱정됐습니다. 호위국 부대가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김정일 찬양 구호와 노래를 떠들썩하게 부르는데 몇 백 명이 소리 내지르면 귀가 멍멍할 지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은 바로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 태어난 맏아들 김평일의 집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생전만 해도 그래도 자기 자식들인지라 설날이나 명절 같은 때 김성애와 김평일, 김영일, 김경진 등 후처와 자식들을 불렀다고 합니다. 이들은 주석궁 주변에서 살면서 최고급 물자 공급을 받으며 식모까지 두고 살았습니다. 물론 그 식모들도 다 호위국 상위, 대위 이렇게 달고 있는 감시 군관들이긴 했습니다.

김정일도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는 이복동생들을 어쩔 수 없으니, 참 고약한 꾀를 낸 듯 합니다. 바로 호위국 부대를 앞에 주둔시켜서 하루 종일 자기 찬양가를 듣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 집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친구 하나 부르려도 외부 사람들은 아주 엄격한 승인절차를 거쳐 들어가야 하고, 들어갔다 와도 딱지가 붙으니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자를 받고, 굶어죽을 걱정이 없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지내며 하루 종일 김정일 찬양가를 듣고 살아야 했을 김성애와 그의 자식들은 자유를 박탈당한 불쌍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중에 들으니 그 집에 김평일이 직접 사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정작 김평일은 1988년부터 해외에 나가 있었습니다. 주석궁 앞의 그의 집에선 처남 등 친척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김평일만 나가 있은 것이 아니라 김평일의 누나인 김경진과 그의 남편 김광섭도 1980년대에 모두 해외에 나갔습니다.

김정일은 비록 이복동생이긴 하지만, 김일성의 피를 물려받은 직계 형제인 이들이 무서워 권력에서 먼 외국에 사실상 유배를 내보낸 것입니다.

1954년 출생으로 올해 만 65세인 김평일은 1988년 헝가리 대사로 부임한 뒤 불가리아와 핀란드, 폴란드 대사를 거쳐 2015년부터 체코 대사로 있었습니다. 1951년생으로 올해 만 68세인 김경진은 오스트리아 대사로 부임된 남편 김광섭과 함께 1993년부터 해외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김일성의 자식들은 30년 넘게 해외를 전전하며 북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명절이나 대사들 모임 때는 잠깐 북에 들어가긴 하지만, 살 수도 없었습니다. 김평일과 김경진은 그 편이 편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권력 욕심만 버리면 북한보다는 해외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이 김평일 체코 대사와 김광섭 오스트리아 대사를 교체했습니다. 그럼 이들은 곧 귀국해야겠죠.

북에선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곁가지라고 합니다. 김정일은 늘 곁가지에 대해 신경을 써왔습니다. 해외에 있었던 이유도 평양에 있으면 아무래도 권력 주변을 맴돌게 되고, 누군가 김평일을 내세워 쿠데타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김평일은 김정일에 비해 훨씬 아버지 김일성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김평일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고, 김평일이 권력을 잡았어도 북한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라 봅니다. 제가 얘기 들어보니 김평일도 김대 다닐 때 수령님 아들이라고 똘마니들 많이 거느리고 다녔고, 대학 총장부터 다 쩔쩔 매게 했다고 하더군요. 겸손한 구석이 없이 대학 생활 때부터 우쭐거리며 다녔던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이들을 왜 소환했을까요? 아버지도 혹시나 싶어 해외에 보내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했는데 말입니다. 김평일과 김정은의 정통성을 따지면 당연히 김평일이 앞섭니다. 어찌됐든 김평일은 김일성의 친아들이고, 김정은은 김정일의 후처의 셋째 아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김정은이 김평일을 불러들인 것은 자신감의 발로라고 봐야겠죠. 해외에 놔둬봐야 나중에 망명이라도 하면 입장이 곤란해지고, 북에 데려다 놓아도 이젠 이들이 끈 떨어진 신세라 여기에 붙을 인간도 없다고 판단한 듯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김평일과 김경진은 매우 불안할 겁니다. 배다른 형 김정남도 독살해버리는 김정은인데, 배다른 삼촌과 고모도 어찌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북에 들어가면 평생 감시를 당하면서 제가 앞서 말한 감옥과 같은 단독 주택에서 어머니 김성애가 그랬듯이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할 겁니다. 하루 종일 호위국 군인들이 내지르는 김정은 찬양가를 고막이 빠지도록 멍멍하게 들으면서 말입니다.

김평일과 김경진은 그렇다 쳐도 해외에서 살던 이들의 자식은 또 어떻게 합니까? 태어나서부터 해외 삶에 물들어 살던 그들은 더욱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할 겁니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미국으로 망명가자고 조르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선 북에 인질처럼 남겨둔 다른 자식도 생각해야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겠죠. 이런 고민 때문에 제가 김평일이라면 자식을 아예 낳지 않았을 겁니다.

또 이제 외국에 망명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마 소환 명령 떨어지기 전에 주변에 보위부 풀어 철통같이 감시할 거니 이미 탈출하긴 늦었고, 낌새만 있다고 해도 살해될 것입니다.

형제자매도 모를 정도로 비정한 권력 때문에 앞으로 평양에서 감금 생활을 할 김평일과 김경진을 생각하면 참 안쓰럽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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