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의 숙박등록 그리고 한국 헌법14조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3.12.01
[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의 숙박등록 그리고 한국 헌법14조 승객을 실은 열차가 함흥시내를 가로질러 달리고 있다.
/AP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겨울이 성큼 다가왔지만, 올해는 정말 예년에 비해 춥지 않습니다. 11월 초에는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비영리단체가 전 세계 175개국 920개 도시의 평균 기온과 폭염을 분석했더니, 올해가 125천 년 만에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근 100년도 아니고 125천 년이면 인류는 이런 더위를 처음 경험한다는 의미죠.

 

이 단체에 따르면 지난달은 1800년대 후반 10월 평균 기온과 비교해 1.7도 높았습니다. 역대 가장 더운 10월로 기록됐습니다. 아직 11월 기온이 분석되지 않아서 그렇지 11월도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을 태우는 데에서 오는 탄소 오염이 아주 중요한 원인입니다. 날이 더워지니 또 각 가정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을 켜니 또 전기 소비가 높아지고, 전기 소비가 높아지니 화력 발전소에서 더 많은 화석 연료를 때는 등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물론 이런 더위가 오면 한국은 크게 걱정될 것이 없습니다. 악순환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집에서 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큰 피해는 없지만, 북한은 얘기가 다르죠. 거긴 에어컨이 없으니 더우면 더운 대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헐떡거리며 살아야 합니다.

 

다만 날이 더워지면 겨울은 좋겠죠. 너무 춥지 않으니 아무래도 땔감이라든지 이런 것을 구하는데 돈이 적게 들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땔감을 걱정하는 나라가 아니죠.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서울이 이 정도 날씨면 맨 남쪽에 있는 제주도는 봄날이겠네. 그럼 제주도에 가서 겨울을 지내볼까이러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선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유행이 생겼습니다. 이게제주 한 달 살기라고 이름이 붙었는데, 쉽게 말하면 집을 떠나 아예 제주도에서 한 달을 집을 빌려서 사는 겁니다. 북한으로 치면 경치 좋은 휴양소에 가서 한 달 묵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살면서 사람들이 하는 가장 인기 있는 일은 제주도 걸어서 둘러보기, 한라산 등반 등입니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면 270㎞가 나오는데, 북에서 많이 쓰는 단위인 리로 계산하면 675리입니다. 하루에 20리씩 걸으면 한 달이면 다 걷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20리만 걷겠습니까. 보통 40리씩은 걸으니 20일이면 제주도 걸어서 다 돌아봅니다. 매일 걸을 수는 없으니 한 열흘은 짬짬이 쉬기도 하죠.

 

제주도 둘레길은 경치가 참 좋습니다. 옆에는 한라산이 있고, 다른 옆에는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제주도 바닷물은 정말 맑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해변을 걸으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한라산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라산 걸어서 올라가면 6~7시간 걸리고 하루면 올라갔다 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 한라산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수많은 경치 좋은 봉우리들이 있는데, 그걸 하루에 하나씩만 올라가도 서른 개가 훌쩍 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북한 사람들은밥 먹고 할 짓이 없나. 왜 아무 의미 없이 걷나. 우리는 매일 걸어 다녀서 짜증나 죽겠는데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맞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운동이 부족합니다. 먹는 것은 매일 고기와 당과류 등으로 배불리 먹는데 운동을 하지 않아 살이 찝니다. 비만이 정말 큰 사회적 문제입니다. 저도 배가 많이 나와 큰일인데 기회만 있으면 제주도 가서 한 달 동안 걷고 싶습니다. 그럼 10㎏ 이상 빠질 텐데, 그럼 건강이 훨씬 좋아지겠죠.

 

하지만 가지 못하는 이유는 제가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1년에 휴가가 25일이긴 하지만, 오로지 제주도 갔다 오는데 쓸 수는 없습니다. 제가 다니는 동아일보처럼 신문사는 현장에 있어야 하니 어디 못 가지만,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꼭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가 많아졌습니다. 집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 할 일을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제주도 가서 일도 하고 여가도 보내면 참 좋은 겁니다.

 

제주도는 김포에서 비행기 타고 한 시간이면 갑니다. 인터넷에서 빌려주는 집을 찾으면 참 많습니다. 서울서 제주도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서 숙박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저는 북한 사람들이 참 불쌍합니다. 북한은 제 나라도 제대로 가보지 못하죠. 평양 가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평양이 아니더라도 다른 도시에 가도 여행증 떼기가 너무 어렵고, 여행증 떼도 기차 타고 며칠씩 어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딜 가서 자도 숙박 등록을 해야 합니다. 한국처럼 한 달을 누구네 집에 있으면 보위부 안전부에서 수상한 놈 취급을 당합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나라도 다 갈 수 있는 한국에서 고작 제주도에 가서 한 달 동안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이 별로 자랑거리도 못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어디 한국뿐입니까. 전 세계 어느 나라나 외국은 몰라도 자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든 다닙니다. 옆에 도를 가려고 해도 여행증을 떼야 갈 수 있는 나라, 수도는 아무나 갈 수 없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합니다.

 

한국은 헌법 14조에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누구도 헌법상에 규정된 권리인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이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입니다.

 

따뜻한 겨울에 슬슬 제주도 가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기 시작하니, 문뜩 옆 동네도 마음대로 가기 힘들고, 친척 집에 가도 숙박 등록을 해야 하는 북한 인민들이 안쓰러워집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