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의 죽음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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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의 죽음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101세로 사망했다.
Photo: RFA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5일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의 사망 소식이 발표됐습니다. 딱 세 줄짜리 부고였는데, 김영주가 김일성의 친동생이고 한때 이인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 줄짜리 부고는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영주가 너무 장수해 저는 더 놀랐습니다. 1920년생인 김영주는 올해 101세인데, 한 보름 더 살았으면 102세까지 살았다고 기록되겠죠. 북에서 남자가 102세까지 산다는 것은 상상 못 했습니다.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최고급으로 먹고살고, 치료받고 하면 또 제일 중요하게는 권력과 멀리 떨어져 살면 100세 이상 장수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북에선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가 살아온 삶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김일성의 친동생, 김정일의 삼촌, 김정은의 작은 할아버지가 이렇게 꽁꽁 숨어있을 수가 있다니요. 지금 환갑을 훌쩍 넘긴 사람들은 김영주가 1960년대 조직지도부 부장까지 지낸 실세였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조직부장 경력 정도만 알지 그가 왜 지금까지 사라졌는지, 어떤 경력을 거쳤는지 북에선 배워주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김영주가 걸어온 삶을 한번 이야기할까 합니다.

 

김영주는 권력에서 밀려난 대표적 사례죠. 김영주는 1920년에 태어나 일제 관동군 통역관을 지냈습니다. 25살 때 해방을 맞았는데, 원래대로라면 친일파로 숙청을 당해야 하겠죠. 그런데 형이 김일성이니 친일파는 고사하고 승승장구해 잘 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은 이해됩니다. 김일성이 둘째 김철주가 죽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영주는 빨치산에 참여시키지 않았고 또 영주가 김일성의 동생으로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자면 일본군에 협조하는 척해야겠죠. 형제 모두가 빨치산일 필요는 없겠죠.

 

저는 관대한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하는데 북한 정권도 저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관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제와 조금이라도 얽혔다고 사정을 가리지 않고 숙청하고 추방한 것이 북한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일제 통치하에서 살아야 했을 사람들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그 비정함에서 김영주만은 예외였죠.

 

김일성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계속 잘 챙겨주었습니다. 김영주는 해방 후에 모스크바 종합대학, 모스크바 고급당학교를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목숨 걸고 전쟁을 치를 때 김일성의 동생은 안전한 곳에서 편히 공부한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인민들에겐 혁명을 하라고 그렇게 강요하는 김씨 일가의 이중성을 알 수가 있죠. 남은 혁명하라, 목숨 바치라 하고는 자기 동생은 편한 곳에 숨겨둔 것입니다. 전쟁 말기에 북한에 돌아온 김영주는 노동당 조직지도부부터 시작해 한 것도 없는데 형 덕분에 잘 나갔습니다.

 

그때는 빨치산 출신들이 다 살아있을 때인데, 김일성의 동생이란 이유로 관동군 통역 경력의 김영주는 1960년 당 조직지도부 부장으로 승진했고 1966년에는 당 후보위원 겸 비서로, 1969년에는 정치국 위원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1972년 김일성 환갑쯤에는 김일성의 후계자가 김영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때 서른 살 김정일이 후계자로 될 것이라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삼촌 김영주 밑에서 일을 배웠으니 감히 대들 것이라 보지도 않았죠. 1972 7.4 남북성명 때 박정희 정부가 김영주가 안 나오면 도장 안 찍겠다고 할 정도로 그는 이인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랬던 김영주가 1974년에 부총리로 내려앉고 1975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된 뒤엔 사라져서 자강도에 가서 조용히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이 권력 암투 기간,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유감스럽게도 이 내막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각에선 ‘김정일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결했지만 결국 빨치산들을 등에 업은 김정일에 의해 곁가지로 밀려났다’ 이렇게 평가합니다. 또 다른 분석도 있습니다. 빨치산을 등에 업은 김정일이 워낙 기세가 등등한 데다 관동군 통역 경력과 별다른 혁명 업적이 없어 공격 대상이 되기 좋으니 이모저모 머리 굴려봐야 승산도 없고, 몸까지 아프니까 자진해서 자리 내놓고 조용히 사라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쿠바 같은 곳은 피델 카스트로가 죽기 전에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정권을 물려주었는데, 라울은 그래도 형하고 무장투쟁을 같이했지, 적군에 몸을 담진 않았거든요. 김영주가 자기가 없어져 주는 대신에 지방 특각에 편히 살게 해주고 자식과 측근도 다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설도 있지만, 저는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때부터 김영주는 정치와 멀리하고 살았습니다. 자강도에 있다고 해서 거지처럼 산 것은 아니고 공기 좋은 곳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시중을 드는 사람들 잔뜩 두고 살았죠. 권력만 없다뿐이지 한국 재벌 못지않게 살았으니 101세까지 산 것이 아니겠습니까.

 

1993 12월에 김영주가 정치국 위원과 국가 부주석으로 임명된 일도 있습니다. 사라진 지 거의 20년 만인데 그때 벌써 그는 73세였습니다. 김정일이 늙어서 이빨 빠진 신세가 된 김영주를 상징적으로 활용한 것 같은데 김일성이 죽으니 다시 사라졌습니다. 아마 김영주는 북한과 같은 곳에선 자신이 권력과 멀리 있는 게 오래 사는 것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모스크바 유학까지 한 지식인이니 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고 과거 왕조에서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왕의 형제들이 어떤 운명인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현명하죠. 김영주는 저렇게 세 줄짜리 부고라도 나왔는데 김성애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북한이니 또 그러려니 하죠. 말만 혁명이고 결국 믿을 게 혈육밖에 없는 왕조의 실상, 그리고 그 혈육도 결국 권력 앞에선 냉정하다는 것을 김영주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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