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장미 가지치기를 대개 한 겨울에 합니다. 저도 지난겨울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 잘려 나가는 작은 가지에게 야박한 것인가 나무 전체를 위해 좋은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소심하게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겨울에는 잔가지를 잘라 내 앙상했던 장미 나무가 꽃이 피는 계절이 됐습니다. 2010년도 꼭 반을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없어지고 있다지만 다른 인종과 결혼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크게 늘어나진 않고 있습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새라 페일린 전 알라스카 주지사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작가가 패일린 전 주지사에 관한 책을 쓰면서 아예 옆집으로 이사까지 갔습니다. 경제적으로 불확실한 지금 확실한 직장을 버리고 동부에서 서부로 걸어서 대륙횡단을 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전해드릴 '오늘의 미국'입니다.
-미국은 수많은 인종이 사는 나라여서 자연스럽게 다른 인종과 결혼도 합니다. 현재 미국 사람의 8%는 다른 인종과 결혼합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이 너무나 심해서 다른 인종끼리의 결혼이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흑인과 백인의 결혼은 거의 없어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유명한 영화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백인 딸이 흑인 사윗감을 부모에게 소개하는 그런 뼈아픈 사회 현상을 담은 영화입니다.
흑인이 인종차별에 대해 시위를 하고 투표권도 얻고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그 덕분에 한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들도 과거보다 차별을 덜 당하고 다른 인종과의 결혼에 대해 전보다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2000년 이후 다른 인종간의 결혼은 20% 만이 늘어났습니다. 1990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이 65%가 늘어난 것에 비하면 성장은 했지만 작은 폭의 성장입니다. 2001년 미국이 아랍계로부터 공격을 받은 9/11 사태로 다른 인종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미국인도 늘어났고, 기본적으로 같은 인종끼리 문화의 차이를 덜 느끼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때는 이민자인 다른 인종에게 너그럽지 않은 것도 이유입니다.
특히 멕시칸을 비롯한 히스패닉 계와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 계는 같은 인종과 결혼하는 비율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히스패닉은 백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1980년 이후 8%가 늘어나서 전체적으로는 38%의 히스패닉계가 백인과 결혼합니다. 같은 기간에 미국에서 태어난 히스패닉계가 외국에서 태어난 히스패닉 계와 결혼하는 비율은 2배나 늘어난 것에 비하면 다른 인종과의 결혼이 그다지 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 계는 미국에서 태어난 아시안의 40%는 백인과 결혼하는데 지난 30년 사이 큰 변화가 없습니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난 아시안 계가 외국에서 태어난 아시안 계와 결혼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에 3배가 늘어났습니다.
한국부모를 포함해 많은 동양의 부모들은 아직도 사위나 며느리가 한국계인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십니다. 그렇지만 같은 인종끼리 결혼한다고 반드시 좋지만은 않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인종끼리 데이트 하는 것이 음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등 좋았지만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동양인끼리의 결혼에서 많이 드러납니다. 말이나 음식에 대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부부가 즐길 수 있는 점 등은 같은 인종과의 결혼이 주는 혜택입니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 남성처럼 직업에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려고 애쓸 때 같은 인종의 동양인 남편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어떤 동양 남성들은 아내가 밖에서 일을 해도 저녁에는 따뜻한 음식이 차려진 밥상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인종끼리의 결합이어서 특히 부모가 좋아했던 결혼은 이혼으로 끝나고 여자는 이혼을 하고 여자는 늦게 퇴근하는 아내를 위해 저녁을 차려놓는 서양인 남자와 재혼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사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인종과 결혼을 하는 비율이 다릅니다. 하와이 주처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산다던지 캘리포니아 주처럼 이민자가 많이 사는 주에서는 다른 인종과의 결혼이 많은 편이지만 동부의 메인 주나 시골인 웨스트버지니아 주에는 아직도 나름대로의 보수성이 강해서 다른 인종 사이의 결혼이 드뭅니다.
-미국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는 걸 보여주는 한 예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사람은 새라 패일인 알라스카 주 전 주지사입니다. 패일인 전 주지사는 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무척 유명해져서 그 뒤 알라스카 주지사도 사임하고 요즈음은 공화당 행사에 참석하거나 강연 등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다. 알라스카는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한 개 주이지만 땅은 넓어도 인구는 약 64만 명으로 정부의 규모가 작은 곳입니다. 알라스카의 규모가 작다는 것은 로스앤젤레스 시의 인구가 3백 만 명이 넘는 것에 비교하면 금방 느껴집니다. 그렇게 작은 주의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가 됐으니 하루아침에 유명해졌고 유명해지니 패일인 전 주지사에 대한 말도 많고 그에 대한 책을 쓰는 작가도 생겼습니다.
새라 패일인 전 주지사에 관한 책을 쓰는 작가는 유명한 사람에 관한 책을 많이 쓴 언론인 출신인데 패일린 전 주지사를 지금까지 혹평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쓰고 있는 책에 대해 패일린 전 주지사가 좋아할 까닭이 없겠지요. 그 작가가 페일린 전 주지사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책을 쓰는 몇 개월 동안 옆집에서 살겠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페일린 전 주지사는 자신의 컴퓨터 웹 사이트에 옆집으로 이사 온 작가를 비난하는 글을 썼습니다. '자신의 집 부엌이 보이고 딸의 방이 들여다보이는 곳에서 작가가 무엇을 훔쳐볼까....' 그런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패일린 전 주지사의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과정이 미국적입니다. 작가가 집을 사서 이사 온 것이 아니라 집 주인이 몇 개월 세를 준 겁니다. 집 주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패일린 전 주지사와 사이가 나쁜데 페일린 전 주지사가 돈을 꿔가고 안 갚아 사이가 나빠졌다고 말합니다. 동부에 사는 작가가 페일린 전 주지사에 관한 책을 쓴다는 얘기를 듣고 연락을 해서 이왕이면 가까이서 책을 쓰라면서 옆집인 자신의 집을 세줬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오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미국에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생각을 실천하는 개성이 강한 사람이 많습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길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로 일을 하는 한 젊은이도 평범한 사람이 하긴 힘든 선택을 했습니다. 요즈음처럼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때에 잘 다니던 직장을 일단 그만두고 걸어서 서부까지 오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의 대륙횡단은 지난 3월에 시작됐습니다. 넓고 넓은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사람들은 대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가장 빨리 대륙을 가로질렀다는 기록을 세운다던지 자동차를 타고 여행할 땐 보지 못하는 구석구석을 느끼고 싶다든지 하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그 같은 목적이 없이 대륙횡단을 합니다. 단지 걷는 게 행복해서 걷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빌딩 숲이라는 맨해튼의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 늘 갇혀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때 밖으로 나가서 걷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염도 그대로 자르지 않고 작은 짐 보따리 하나만 갖고 걷고 또 걷고 있습니다. 목표가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합니다. 동부에서 서부까지 약 4천 8백 킬로미터를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다정하게 대한다'는 꿈을 실천하면서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우리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글을 보따리 앞에 써 붙이고 걷습니다.
이 청년은 안전하게만 살려고 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합니다. 그런 길을 가면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안전한 직장을 뒤로 하고 자유롭게 여행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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