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들과 함께 한 텃밭 농사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7.06
garden_.jpg 마을텃밭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주민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마침 서울에서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반가운 친구들이었지만 저에게는 알심있는 일꾼들이기에 부려 먹으려는 심보가 조금 꿈틀꿈틀 살아나기도 했네요. 친구들과 함께 텃밭으로 갔습니다. 우선 미리 준비해 놓은 간단한 작업 신발과 가벼운 옷으로 바꿔 입혔습니다.

비가 내린다고 했건만 비는 커녕 후덥지근했습니다. 우선 콩밭 김매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쉼 없이 흐르네요. 고향이 평양인 친구는 북한식으로 자신 있게 김매기를 시작합니다. “나가자!” 하고 온 벌판이 떠나 갈 듯이 구호를 외쳤습니다. 북한군에서 김매기를 많이 해 본 경험이 나오기도 합니다. 잠깐 사이에 그 넓은 콩밭 김매기가 끝났습니다. 그야말로 속도전이었습니다.

‘속도전’ 이라는 구호 때문에 정신없이 죽을 듯 살듯이 온 힘을 다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의욕을 가지고 일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북한 당국은 속도전이라는 구호 하나 만들어 가지고 인민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마침 속도전 돌격대 생활을 한 친구가 ‘속도전! 속도전! 총 동원 앞으로!’ 라는 노래 한 구절을 합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지나온 고향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어렸을 때에는 천리마거리 건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광복거리와 통일거리, 문수거리 건설에 동원 되었던 모습들이 한 눈에 안겨 왔습니다.

중학교 시절 오전 공부를 마치고 오후에는 천리마거리 아파트 건설에 소랭이와 바께쯔를 손에 들고 줄을 서서 노래를 부르며 흙과 모래를 나르다 힘에 부쳐 넘어 지기도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광복거리와 통일거리, 문수거리 건설에 동원되어 아파트 기초공사로부터 시작해 마감공사가 끝날 때까지 곡괭이를 들고 돌과 흙을 팠고 때로는 시멘트와 모래와 돌을 섞어 몰탈을 이겼고 때로는 내 체중보다도 더 큰 도람통에 물을 담아 어깨에 지고 높은 고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렸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손바닥에는 물집이 생기고 그 물집이 굳은살로 변해 며칠 동안 아프고 쓰리곤 했었거든요. 아마도 지금 생각해 보면 평양시 웬만한 거리 건설과 아파트 짓는 건설에는 다 동원 된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봄가을 농촌 전투에 동원되어서도 속도전의 불 바람으로 김매기 전투와 가을 추수 전투를 끝내자고 했었습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따끈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들깨 모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빗방울은 커져 소낙비로 변해 억수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여러 명이다 보니 들깨 모 역시 잠깐 사이에 끝났고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수고한 친구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임진각 주변에 있는 민물 장어구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음식점의 한쪽에는 임진강이 있었고 철책선이 늘어져 있었으며 마침 밀물이 들어와 잔뜩 불어난 임진강 물 위에는 배 두 척이 민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평양이 고향이고 작가인 친구는 대통령들이 다녀간 이런 분위기 좋고 이름 있는 음식점이라 너무 좋아했습니다.

드디어 장어구이에 서비스로 머루술과 민물간장참게가 나왔습니다. 밖에서는 굵은 소낙비가 쏟아집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와 자글자글 익어 가는 장어구이 냄새에 어울려 더 별맛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장어구이를 먹어 보지 못한 것 같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장어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작가 친구는 이곳 남한에 처음 와서 장어를 먹어 보지 못한 채 어느 지인의 얘기를 듣고 장어구이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하면서 대통령들과 많은 이름 있는 지인들이 직접 다녀간 이곳에서 장어구이를 먹었더라면 아마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이곳 남한 생활 20여 년이 되어 오지만 민물 장어구이는 처음이라고 하네요.

비록 친구들을 일꾼처럼 일을 시킨 것에 대해서는 조금은 미안하긴 했지만 어느 작은 시골 텃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 올리는 좋은 경험과 함께 친구들과 고향을 바라보며 맛있는 별미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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