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덕의 백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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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 통일 교육 단체, ‘새조위’ 주체로 진행되고 있는 ‘평화공감 통일리더자’ 양성 교육에 참가했습니다. 이 교육은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됐는데, 북한 또는 탈북자들에게 관심이 있는 교육생들이 변해가는 북한 현실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서, 서로 남북한의 현실과 해결방안을 토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박사, 교수 출신 강사님들의 열의도 뜨거웠지만 참가한 사람들의 열정 또한 대단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산하나센터 소장님의 강의는 정말 잊을 수 없었습니다. 강사님은 중국에서 생활하는 탈북 여성들과 이곳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 그리고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만났던 일들, 그 생생한 얘기를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강사님은 분단의 해결이란 다름 아닌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만남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시네요.

강사님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량강도 혜산이 고향인 분이 있는 가고 물었습니다. 제 짝꿍이 바로 혜산이라고 손을 번쩍 높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혜산에서 온 친구들이 2명 더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며칠 전에 혜산시의 모습을 찍어왔다면서 동영상으로 돌려주었습니다. 중국 쪽 압록강기슭에서 혜산을 바라보며 찍은 영상들이었는데 남자들이 압록강에서 나무껍질을 벗겨 뗏목을 만드는 모습과 어린아이들이 압록강 물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한 남자 아이가 중국 쪽에 있는 강사님을 향해 빈 병을 던지는 모습,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욕을 해대는 어른들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보는 고향, 고향사람들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제 짝꿍 역시 고향을 떠나 거의 30년 만에 보게 되는 고향의 전경을 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다음 동영상에서는 중국에 사는 탈북 여성들의 생생한 모습이 나왔습니다. 한 탈북 여성은 한족과 결혼하여 국적도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무연한 옥수수 밭 가운데 흙먼지가 뽀얗게 일고 겨우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지나 작고 허술한 집에 그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압록강을 건너 탈북한 지 2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영상 속에서 강사님이 한국에 가지 않는 무슨 이유가 있는가 하는 물음에 그 여성은 처음에는 인신매매로 팔려왔지만 한족과 낳은 어린아이를 두고 떠날 수 없었고 지금 떠나려고 하니 20살 되는 딸애를 두고 차마 한국으로 갈 수가 없어 그냥 머물러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 여성의 얘기를 들으며 이해가 됐습니다. 지나 세월 많은 우리 탈북 여성들이 겪은 얘기거든요. 또 나 자신도 실제로 겪어 온 현실이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어 이곳 남한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탈북 여성이 압록강 기슭에 서서 손을 뻗치면 가 닿을 듯한 고향집, 빤히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는 나서 자란 정든 집, 거기서 빨래를 널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소리도 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이 영상을 보며 지나간 생각이 났습니다. 강제북송되어 함북도 무산 친척 집에 잠깐 있을 때였습니다. 장마철이라 두만강 물이 불어 사람들이 두만강 가까이에 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두만강 건너편 빨간 기와집이 있는 곳에서 한 여성이 동생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그 여성의 부모와 동생들이 함북도 무산군 두만강 근처에서 살았거든요. 그의 부모는 빤히 딸의 목소리를 듣고도 인민반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 문을 꼭 닫은 채 얼굴을 내밀기는커녕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보위부 지도원이 찾아와 그의 부모를 끌어가는 모습을 실제 현장에서 보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느새 강의실은 교육에 참가한 탈북자 30여 명 의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잦아들기도 전에 강사님은 끝으로 노래 한 곡을 불러주겠다고 했습니다. 제목은 ‘오산덕의 백살구’였습니다. “우리 서로 헤어져도 울지를 말자, 가시 길을 걸어가도 슬퍼를 말자. 기다려라. 기다려. 기다려다오. 통일의 그날 오면 우리 함께 가자”

강사님이 첫 소절을 떼자 어느새 합창이 되었고 더 큰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강의 시간 내내 참아오던 제 눈에서도 순간 눈물이 아니라 어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록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강사님이었지만 “통일의 그날 우리 함께 고향으로 갑시다”라는 진심 어린 말에 울컥했던 겁니다. 정말 그날이 애타게 기다려집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