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들과 함께 한 여름 해수욕
2018.08.17
이곳 남한에서는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여름 휴가철을 보냅니다. 이 기간에는 많은 시민들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 연인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또는 제주도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합니다. 공항뿐만 아니라 서울역과 고속터미널 역시 분주합니다. 미리 예약이 없으면 열차나 비행기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거든요.
저 역시 손주들과 함께 2박 3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을 다녀왔습니다.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사랑하는 개구쟁이들과 함께 넓은 바닷물 속에서 3일을 즐겁게 보낸다는 생각을 하니 잠을 설쳤을 뿐만 아니라 여느 때 없이 설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날 오후 짐 가방을 챙겨 가지고 평택 딸네 집으로 갔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는 손자 녀석들 역시 들떠 있었습니다. 사위는 땀을 뻘뻘 흘리며 벌써 텐트를 비롯해, 애들이 물놀이에 필요한 튜브 그리고 고무 배와 그 외 짐들을 승용차에 차곡차곡 싣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출발했습니다. 가는 도중에도 애들은 얼마나 더 가면 바다인가 하고 자주 물어 왔습니다.
가평휴게소에 들려 늦은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차가 조금 막혔습니다. 저희는 목적지가 가까운 속초 시내에 있는 이마트에 들려 김치와 찌개감과 수박을 비롯한 갖가지 과일을 구입하고 30분 정도 소요되는 목적지인 송지호해수욕장에 도착했습니다. 해수욕장에 도착해 자리를 잡아 텐트를 치기 전에 벌써 애들은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저 역시 딸과 사위가 텐트를 치고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수영복을 챙겨 입고 바닷물로 들어갔습니다.
4명이나 되는 개구쟁이들과 함께 물속에서 노는 것 역시 저에게는 조금 벅차고 어려웠지만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해수욕장 관리일꾼들이 나오라고 소리 치고 호각을 불어도 아이들은 좀처럼 물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7살짜리 손녀 애가 호각을 부르는 젊은 관리원에게 다가가 “삼촌! 조금 더 놀면 안 돼요?”라고 물어 많은 관광객들을 웃기기도 했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개구쟁이들은 새벽 5시부터 비가 내리는데도 해수욕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에게 아침도 먹지 않고 빨리 비가 멎도록 기도를 하자고 졸라 대기도 하네요. 파도가 높으니 수영을 할 수 없다는 방송이 연속 울려 나올수록 개구쟁이 녀석들의 얼굴은 찌그러지네요.
오후 2시쯤 되어 내리던 비도 어느덧 멎고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예쁜 아가씨의 목소리가 해수욕장에 울려 나오자 애들은 벌써 젖은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들고 미처 어른들이 따라 갈 사이 없이 백사장으로 달려갑니다. 사위들 역시 애들과 재미있게 놀아주었고 애들은 아빠에게 이모부에게 밀짚모자상어라고 부르면서 너무도 좋아합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나오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손자 녀석들을 겨우 달래어 나왔네요. 한 명씩 순서대로 씻기고는 저녁식사 자리에 빙 둘러 앉았습니다. 애들이 좋아하는 불꽃놀이도 했습니다. 한참 불꽃놀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한 여름 주부를 위한 2018년 전국노래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손자 녀석들은 역시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졸라 댑니다. 시간이 되어 드디어 해수욕을 하라는 방송이 울렸습니다. 수많은 피서객들 중에 우리가족이 제일 먼저 바닷물 속으로 첨벙 들어갔습니다. 어른들은 해수욕을 하면서 조개를 파는 재미 역시 즐거워하네요. 오후 1시가 되어 물에서 나와 텐트를 철수해 짐들을 차곡차곡 차에 싣고는 바다에서 살겠다고 떼를 쓰며 서운해 하는 개구쟁이 녀석들을 달래는 저 역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속초 시내로 들어가 제주 왕갈비집에 들려 생고기구이로 늦은 점심 겸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내 보이며 최고라고 하는 개구쟁이들을 보는 제 마음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했습니다. 처음 이곳 남한으로 올 때에는 식구 4명이 왔거든요. 어느새 사위들과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손자 녀석들까지 이렇게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에 부러운 것 없는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