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성폭력에 대한 개념도 모르는 북한 여성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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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예방을 위해 승강기에 설치된 홍보물.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 승강기에 설치된 홍보물.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달 말부터 시작된 여성가족부와 함께하는 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원 양성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성폭력, 가정폭력에 대한 글과 이야기를 언론과 텔레비전을 통해서 많이 들어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습니다. 이번 교육을 받으면서 너무도 많은 것에 대해 알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나간 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성폭력,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하는 교육이 없다 보니 그저 가정생활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또 나 하나 조금 참고 견디면 별 일이 아닐 것이라고, 괜찮아 질 것이라는 낡은 관점으로 생각을 해왔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때로는 눈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저 역시 지나간 모든 일들이 인간 극장의 한 장면처럼 스쳐 갔습니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한 매로 다스리라는 말이 있듯이 소위 아이들을 엄격한 훈시를 한다고 하면서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도 빗자루와 회초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깊이 두었던 남편의 손목시계가 없어졌습니다. 당시 남편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계였거든요. 몽둥이를 들고 세 아이에게 훈시를 했습니다. 결국에는 인민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이 범인이었습니다.

학급에 있는 한 친구의 손목에 낀 전자시계가 부러워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학교로 오가는 등교에는 시계를 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들킬까 두려워 어딘가 감추어 놓곤 했었답니다. 아이들이 잠든 깊은 밤 멍이든 아들의 종아리를 찜질해 주며 아픈 마음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으로 눈이 촉촉해 지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이 모이면 성인이 되고 아이 엄마가 된 큰 딸이 때로는 어린 시절 엄마가 너무 두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고 합니다. 그때엔 가정폭력이란 생각은 해볼 수도 없었고 그저 엄하고 강한 교육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쑥스럽고 내가 무식한 엄마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가족들이 깨어날까 조심스럽게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저에게 금방잠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의 발길이 날아 왔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달려드는 남편의 드센 발길에 그만 저는 “윽!” 하고 쓰러졌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은 아빠의 손과 발을 잡으며 말렸습니다. 아이들의 힘을 빌려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의 입에서는 얼토당토아니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제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꿈을 꾸었다고 하네요. 부러진 갈비뼈로 많은 시간을 치료 받았지만 당시에는 남편의 병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저 부끄럽고 원망스럽다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마누라를 폭행하면서도 내 마누라 내가 교육하는데 왜 옆에서 난리를 하냐고 생각하고 당당한 것처럼, 언어 폭력과 가정폭력을 일삼고 있지만 북한 여성들은 그저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 마치 본인들의 죄인 것처럼 스스로 자책하는 말 같지 않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북한 여성들의 현실이거든요.

하기에 우리 탈북민들은 이곳 남한에 와서도 성폭력이 무엇이고 언어 폭력과 가정폭력이 무엇인지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훈시 한답시고 딸에게 손찌검을 해 딸의 신고로 가정법원에 재판 중인 사람도 있고 이곳 남한 생활에 빨리 적응해 변화하는 아내를 바람이 났다고 의심해 폭력을 휘두르고 이혼까지 하는 일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인 약자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 나는 법이 없다는 둥 가해자의 말을 이해하려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 주변의 한 친구의 남편은 외박을 물먹듯이 하면서 심지어는 이혼까지 요구 했거든요. 이번 교육을 받고 보니 조금은 유치한 방법이었지만 슬퍼하는 친구에게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고 남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열흘 만에 남편이 집에 들어온다고 하기에 저는 친구를 불러 술 한 잔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50대 중반인 친구는 술에 취한 척 술 냄새를 풍기며 미리 준비해 놓은 이혼 서류를 들고 당당하게 남편 앞에 내 놓으며 당신이 없으니 너무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괜스레 즐거운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갑자기 남편의 얼굴이 변하더니 잘못했다고 했답니다. 그 이후에도 비록 집은 나가지 않았지만 애교가 없는 통나무 같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잦은 가정폭력으로 옆집의 신고로 경찰들도 여러 번 왔다 가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른 가족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번 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원 양성 교육은 지난날 우리가 겪어 왔고 지금도 역시 주변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인데도 성폭력, 가정폭력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아 온 세월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주변에서 이런 일이 없도록 사전 예방과 또 그로 인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의 상담을 통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잘 준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뿌듯해 집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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