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두고 온 자녀 생각에 가슴 치는 탈북민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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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0월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당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을 마친 이복순 할머니가 버스에서 납북 어부인 아들 정건목 씨와 인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당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을 마친 이복순 할머니가 버스에서 납북 어부인 아들 정건목 씨와 인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 오후 평택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나와 띠 동갑인 친 동생 같은 아주 소중하고 반가운 친구였거든요. 중국에서 10년 이상 살았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증도 확고한 거주지도 없이 조사만 마치고 나온 친구였습니다.

주민등록증과 거주지를 요구하여 통일부 앞에서 진행하는 기자 회견장에서 처음 만나 알게 되었던 친구입니다. 그 때로부터 자주 연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 연락이 끊겼습니다. 영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간 줄로만 알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잊고 있던 친구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평택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 잊고 살았다고 하네요. 현재는 중국에서 낳은 18살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탈북 여성들에게는 누구나 아픔이 있듯이 북한에 두고 온 자녀들에게 죄 짖는 것 같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기를 먹지 못 하고 산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음악 교사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고난의 행군시기 구리 장사를 하다가 그만 보위부에 신고가 되어, 있는 돈 전부와 함께 6살 딸과 4살짜리아들을 오빠에게 맡기며 소식이 없으면 죽은 줄 알라는 말을 남기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 했습니다. 인신매매되어 바라지 않았던 아기를 출산했고 북한에 두고 온 두 자녀를 찾으려고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도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곳 남한에 온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인제는 죽은 줄로 알고 있었던 두 자녀가 살아 있다는 것과 함께 있는 곳을 알게 됐다고 하면서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친구의 등을 보듬어 주며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 누이동생의 소식이 끊기자 장교 생활을 하던 오빠가 그만 군복을 벗게 됐다고 합니다.

하여 두 자녀는 고아원으로 보내게 됐고 오빠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네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두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 인제는 29살, 27살 성인이 되어 오누이가 함께 혜산 방직공장에서 합숙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친구는 소식이 없으면 죽은 줄 알라고 한 자신의 말이 씨가 되어 죄 없는 두 아이는 엄마 때문에 고아로 살아 왔고 그 아이들에게 씻지 못할 큰 죄를 지었다고 가슴을 칩니다.

30대 초반에 두 아이를 오빠에게 맡기고 고향을 떠났는데 인제는 50이지나 흰머리가 히끗 히끗한 나를 알아볼까, 만나면 이 엄마를 알아나 볼까, 또 엄마라고 불러 줄까,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소식만을 들었는데도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두렵다고 합니다.

친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기 위해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 갔습니다. 친구는 노래를 6곡이나 연속 불렀습니다. 역시 음악 교사가 부르는 노래라 뭔가는 조금 달라 보이기도 했습니다. 워낙 노래에 취미가 없는 저는 그냥 친구의 노래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한참을 노래를 부르던 친구가 갑자기 노래방 기계의 전원을 껐습니다.

어느덧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고 하면서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다면서 조금 마음이 안정이 된다고 하네요.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친구를 보면서 지난날의 나 자신을 보는 듯했습니다. 엄마로서 자녀를 잃고 산다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죽는 것 보다 더 마음이 아프거든요.

이미 나 자신도 자식을 잃은 채 살아온 가슴 아픈 상처와 기억들이 있기에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늦은 밤 시간까지 친구와 함께 서로 각자 살아온 인생 여정과 고향 얘기 그리고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12살에 부모를 잃고 오빠를 아빠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믿고 살아온 친구가 오늘은 오빠를 잃은 슬픔과 함께 두 자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 탈북자들도 당당하게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기원해 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 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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