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먼저 간 남편 생각에 뷔페음식 목에 걸려...

김춘애

지난 주, 친구들과 함께 강남에 있는 ‘이탈리아 뷔페식당’ 이라는 델 가봤습니다. 여러 음식을 큰 그릇에 쭉 담아 놓고, 먹고 싶은 만큼 덜어다 먹는 것을 뷔페식 이라고 부른다는데, 서양에선 이런 식으로 잔치 음식을 차린다고 하네요. 이 뷔페식당이 좋은 점은 일인당 딱 정해진 돈만 내면, 식당에 차려진 모든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식당에 들어간 전 놀랬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고급스럽고 분위기 좋고 큰 식당은 처음이었고 이탈리아 음식은 사실 처음이었습니다.

근데 이 식당에 이탈리아 음식부터 해서 갖가지의 초밥과 스테이크도 정말 없는 게 없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소고기를 어른 손바닥 만하게 잘라서 구워주는 스테이크 고기에 칼질하면서 처음 남한에 왔을 때가 생각 나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때는 큰 그릇에 담겨 나오는 큰 덩어리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몰라서 앞에 받아 놓은 스테이크를 쳐다보기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노량진 수산 시장에 가면 보통 한 마리 20달러 하는 서양 꽃게도 한 그릇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저는 통통하게 살찐 게 다리를 하나 입에 가져가는 순간 남편의 얼굴이 스쳐 지나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날 남편이 제일 좋아 하던 꽃게였건만... 살아생전에 실컷 구경도 못한 남편 생각에 끝내 이 맛있는 게가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날은 마침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사탕을 주며 사랑을 전하는 날이라 친구의 남편은 자기 마누라뿐만 아닌 저에게도 옷을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저는 생맥주 한잔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호프집을 하나 찾아 들어가선, 시원한 맥주를 단숨에 마신 저는 몇 번이고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 했습니다. 그들은 체제가 다른 이 사회에 어렵게 와서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사는 제 모습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부모가 자식을 칭찬해 주듯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분들이 제 곁에서 항상 저를 지켜 주는 덕분이라는 제 말에 그분들은 하늘에서 준 복이라고 대꾸를 해줬습니다. 내 고향인 북한 체제에서는 이 ‘하늘이 준 복’란 말을 하면 가족 모두가 정치적으로 매장되어 버리지만, 남쪽에선 하늘에서 준 복을 가졌다는 것은 덕담입니다.

이렇게 친구들과 만남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는데, 딸이 제 손에 쥐여 있는 곱게 포장된 사탕봉지와 옷가방을 받아들곤 저를 놀렸습니다. 머리를 갸웃 갸웃하며 선물 꾸러미에 코를 가져다 대며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며 “혹시 남자 친구가 생겼는가”라고 웃으며 농담을 걸어 왔습니다. 저도 이번만은 변명을 하지 않으며 그저 그렇다고 대꾸를 하고는 좋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순간이나마 얘들 아빠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항상 아이들과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마다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건만 오늘은 더욱 새로웠습니다.

여자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화창한 봄 계절에는 행복해서 그려 보게 되고 단풍드는 가을에는 쓸쓸한 기분에 남편의 모습을 기억하게 됩니다. 오늘처럼 생각지 않은 선물을 받고 보니 하늘나라에 가있는 애 아빠가 밉기도 했습니다. 어려움을 조금만 참고 이겨 냈더라면 오늘과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식량공급이 중단된 고난의 행군시기 생계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서 장사에 몇 번 나간 남편은 직장에 결근했다는 죄 아닌 죄로 평남도 증산군에 있는 노동교양소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1년 만에 감옥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한 그의 마음 오죽 했을까? 순간 온 몸이 떨렸습니다.

오늘과 같은 좋은 날에 마음 아픈 상처를 추억하기가 싫어 자리에서 일어서 창밖을 말없이 한참 내다보았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제 친구의 남편에게는 작은 수첩이 있습니다. 이 수첩에는 각 지방의 소문 있는 음식점의 위치와 전화번호가 하나하나 정성들여 적혀 있습니다.

티비나 신문에 맛있는 음식점 소개가 나오면 전화로 알아보고 마누라와 함께 찾아 갑니다. 또 이 자리엔 제가 빠지면 비상 사고랍니다. 내 남편은 하늘에 있지만, 내가 이들과 함께 찾아서 먹는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을 항상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맛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서울에 있고 그 사람이 다른 곳에 있어도 말입니다.

오늘도 이 좋은 세상을 두고 고향의 부모 형제들과 먼저 간 남편의 모습을 그려보며 서울에서 김춘애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