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동굴의 고장 삼척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0.03.31
samchuk_cave-305.jpg 2002년 세계 동굴엑스포를 위해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환선굴 입구에 설치된 동굴 형상의 홍보아치.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 저는 강원도에서 있었던 안보 강연을 위해 홍천에 갔습니다. 홍천에서 강연을 마친 뒤 시간이 있어서 저는 행사 관계자들과 함께 춘천과 삼척을 다녀왔습니다. 삼척은 남한에 와서 처음 가는 것이었습니다.

삼척은 동굴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2002년에 세계 동굴엑스포가 열렸는데, 그 때 건설됐다는 주행사장에 들렀습니다. 주행사장에는 동굴 신비관과 박물관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1, 2층으로 돼 있는 동굴 신비관에는 세계의 유명한 동굴과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동굴이 과거와 현재 모습 그대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신비하고 웅장했습니다. 그런 동굴이 삼척 시내에서 약 30분만 가면 있다고 안내원이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 한번 가족과 함께 강원도 삼척에 있는 진짜 동굴을 관람하러 오겠다고 약속하며 전화번호를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박물관에는 주민들의 옛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큰 김치독이었습니다. 그 김치 독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저 김치 독을 하나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말해 모두가 웃었습니다.

동굴 신비관과 박물관을 둘러본 뒤 우리는 삼척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넓고 푸른 동해 바다를 보는 순간 저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바닷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도 보았고, 바닷가 작은 공원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얼굴 가득 맞으며 마치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즐거워했습니다.

삼척 동해 바닷가에 펼쳐진 넓은 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지난 군 복무시절 해수욕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그 때 북한의 동해 바닷가인 함북도 강산리 사격장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서 포상으로 해수욕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렸을 적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저로서는 푸르른 바닷물이 무서웠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물 속에 들어가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싣기도 했지만, 저는 바닷가에서 겨우 조개나 주웠습니다.

그 때 주운 조개가 꽤 많았습니다. 조개를 넣어 미역국을 끓여 부대원들과 함께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그 맛을 생각하면 군침이 돌 정도입니다. 그 일로 저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중대 군인들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했다는 칭찬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해수욕을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런 칭찬을 들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습니다. 남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다에 가서 해수욕을 할 수 있지만, 저는 아직도 물이 무서워 해수욕을 하지 못합니다.

해수욕은 무섭지만, 바다에 나가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좋아합니다. 일정을 맞추느라 삼척의 동해 바닷가를 떠나올 때 저는 아쉬운 마음에 바닷가 모래밭에 깔려있는 하얀 조개껍질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잠깐 들러서 돌아본 것이었지만, 삼척에서의 추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삼척은 정말 아름답고 꼭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고장이었습니다.

안보강연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휴게소 주변에 심어진 진달래꽃이 금방 피어날 것처럼 빨간 물이 올라 있었습니다. 아직 바람이 쌀쌀하지만, 봄은 봄인가 봅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남한에 온 뒤에야 봄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내 고향 주민들은 봄에 걱정이 더 많겠지요? 언제쯤이면 북녘의 주민들이 먹을 걱정 없이 봄꽃을 즐길 수 있을는지... 그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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