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친구들과 함께 보낸 정월대보름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3-0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무술년 대보름인 2일 밤 떠오른 보름달이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추녀의 풍경과 단청이 보름달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보인다.
무술년 대보름인 2일 밤 떠오른 보름달이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추녀의 풍경과 단청이 보름달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은 우리 선조들이 딱딱한 호두와 땅콩을 깨면서 건강을 기원하고 액운을 쫓아내고 몸에 좋은 오곡밥을 지어 먹고, 귓병을 피하고 좋은 소식만을 듣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귀밝이술을 마시는 날입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한 해 농사의 풍년과 안정을 기원하기도 하고 정월대보름을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날로써 큰 명절로 여겼다고 합니다.

1년 중 달이 가장 크고 밝다는 올해 정월대보름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고사리와 취나물 그리고 무시래기, 말린 가지나물, 피마자 잎나물 등 갖가지 나물에 찰진 오곡밥을 차려 놓고 둥근 밥상에 여러 명이 모여 앉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처음 보는 나물이라 먹지 못하는 나물인줄 알았다고 하는 피마자 나물에 첫 젓가락을 가져갔습니다.

어린 시절 딱 한 번 이곳 서울이 고향인 옆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피마자 나물을 먹어 본 기억이 있거든요. 그 때 그 맛이었습니다. 피마자 잎과 줄기를 먹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었던 어린 시절 서울이 고향인 옆집 할머니를 통해 먹게 된 지나간 얘기를 했습니다. 두 자녀와 함께 6.25전쟁 시기 피난으로 남편을 따라 평양으로 오신 분이었거든요.

당시 남편은 어디 가고 없었고 아들은 평양경공업대학에 다녔고 딸은 평양의학대학에 다녔습니다. 두 자녀가 대학생들이라 자주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친척이 없는 그들에게는 우리 어머님과 가족처럼 아주 가깝게 지냈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할머니는 피마자 잎과 줄거리를 끓는 물에 데쳐서 신문지를 깔고 하나하나 널고 계셨습니다. 당시 인민학교 학생이었던 저는 의아한 모습으로 무엇에 쓰려는 가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밥반찬을 해 먹으려고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할머니에게 피마자 잎은 누에가 먹는 것이라고 하자 그냥 웃으셨습니다. 며칠 뒤 저녁 식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작은 반찬 그릇을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말린 피마자잎 볶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한 생각으로 젓가락을 대지 못했지만 어머님이 드셔 보시더니 맛있다고 합니다.

서울이 고향인 옆집 할머니 덕에 피마자를 먹어 본 얘기를 하자 친구들의 젓가락이 분주해 지네요. 잠시 말없이 식사 중이었던, 청진이 고향인 친구가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 친구는 이곳 한국에 온지 8년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곳에 오자 인차 재혼을 하고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다 보니 고향 친구들은 한 명도 만난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남편을 만나고 보니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결혼을 하자 시어머니는 절대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삼시 세 끼 식사 수발을 들게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많은 시누이와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때로는 지쳐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본인 스스로 꾸짖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좋은 문화 경험을 했다고 해서 우리는 웃었습니다.

지금은 북한음식 만드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북한음식 강사로 활동도 하면서 된장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을 알고 보니 너무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한 친구는 이곳에 온지는 20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아기를 키우느라 사회생활을 너무도 모르고 살았다고 합니다. 요즘 사회생활에 재미와 즐거움을 찾았는데 컴퓨터에 앉으면 벌써 노화가 찾아 온 듯 눈이 침침하고 젊은 친구들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나마 젊은 친구들은 이해해 주고 편안하게 답해 주고 가르쳐 주어 고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많은 친구들은 저에게 서로를 알아봐 주고 이해해주고 한 번이라도 불러 주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한결같이 얘기 했습니다. 정월대보름에 서운하지 않게 귀밝이술도 한잔했습니다. 남은 호두와 대추, 땅콩과 반찬을 조금씩 나누어 싸주기도 했습니다.

올해 대보름달은 유난히 밝고 크고 의미 있어 보였습니다. 마치 둥근 보름달 안에 부모님이 환한 모습으로 웃으시며 내려다보는 듯 했습니다. 둥근 보름달밑에 내 고향이 있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도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짠하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 가족의 건강과 더불어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원과 함께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내 손자들 역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게 해달라는 것을 간절히 빌었습니다.

지난 2일 정월대보름에 비록 작지만 친구들과 함께 오곡밥에 나물 반찬으로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