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핵이 없어지는 그날 고향 방문을 꿈꾸며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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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다양한 봄꽃이 만발한 모습.
평양에 다양한 봄꽃이 만발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길거리를 걷다가 아파트 단지울타리에 핀 빨간 장미꽃을 보노라면 저절로 웃음 가득 행복해집니다. 이맘때면 내 고향 평양 곳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바로 빨간 장미꽃이거든요. 어제도 저는 내 고향에 가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부모님 산소를 찾아 뵙고 평소에 그리웠던 형제들과 함께 평양역에서 이곳 서울로 오는 열차표를 구입하고 잠깐 평양역 주변 공원 의자에 앉아 빨간 장미꽃을 보며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눌렀습니다. 순간 알람 소리에 놀라 그만 잠에서 깨어버렸지만 말입니다.

서운한 감과 아쉬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며칠 전엔 북미정상회담도 마쳤으니 어느 순간 북한의 독재가 무너지고 평화와 함께 개혁 개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더더욱 마음에 와 닿고 있습니다.

고향에 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고향집을 구입해 아들의 한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갑자기 사라진 아내와 딸들 때문에 남편은 감옥에서 고문과 강한 노역에 시달리다 죽었고 어린 아들이 집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집을 빼앗긴 한이 제 어린 아들에게는 너무도 큰 상처였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많은 언론과 기자들을 앞에서 핵시설을 파괴하는 장면을 보면서 인민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폭파할까? 하는 의심도 해보았습니다만 이제라도 북한 당국은 인민들을 위함이라면 대담하게 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3대 세습을 이어 오는 과정 동안 북한 주민들에게는 너무도 크고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지난 오랜 세월 북한은 기와집에 비단 옷을 입고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 실현은 영도자가 세 번이나 바뀌었어도 이루어지지 못했거든요.

남북이 갈라져 언제나 전쟁 준비와 싸움 준비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고조된 긴장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땔감 걱정, 먹을 걱정, 입을 걱정 뒤에는 공개 총살과 정치범과 감옥이 있었습니다. 식량을 공급해 달라는 의견을 당 조직에 제기했다고 남편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고 가족은 지방으로 추방을 당했고, 굶어 죽지 않겠다고 동(구리)줄을 훔치다가 걸려 공개총살을 당했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농장 옥수수 몇 개를 땄다고, 배고픔에 시달리다 못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해 남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혹한 처벌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힘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쓰러지고 죽어가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이 두려워 당당하게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북한도 대담하게 핵을 버리고 남북한 군사대립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자유민주주의가 곧 이루어진다면 북한 주민들도 이곳 남한 사람들처럼 행복한 새 삶을 살 수 있거든요.

전 세계가 바라는 비핵화, 진정으로 북한은 이번 기회에 대담하게 핵을 없애고 비핵화를 실현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삶은 향상 될 것입니다. 남과 북, 우리 한반도에 핵이 없어지는 그날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있을 것이며 70여년 넘게 살아온 이산가족의 슬픔도 가셔지고 우리 탈북자들도 정든 고향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상봉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조금은 앞서 가는 것 같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기대와 함께 내 고향 평양에 가는 것이 현실이 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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