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앵두에 담긴 고향의 추억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6.22
red_cherry-620.jpg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 한옥마을을 찾은 지곡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의 한 어린이와 선생님이 빨갛게 영근 앵두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두나무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잘 익은 앵두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꿀꺽 넘어가는 앵두를 한 알 따서 입에 넣었습니다. 새콤하면서도 꿀맛처럼 달콤 했습니다. 함께 상담원 교육을 받는 탈북민 친구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바구니 한 가득 따서 한 알 두 알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 비닐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마침 다음날이 주말이라 저는 빨간 앵두가 담긴 통을 가방에 넣어 들고 교육장으로 갔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조용한 교육장 안에는 라디오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 소리만이 가득합니다. 어느새 시간이 되어 친구들이 들어왔고 가방 안에서 빨간 앵두를 꺼내 놓았습니다. 앵두를 보면서 깜짝 놀라는 친구도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앵두라면서 먹기 아깝다는 친구도 있었으며 누가 볼세라 입으로 가져가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종이컵에 담아 출입문에 서서 교육장으로 들어오는 친구들의 입에 직접 넣어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정이 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고향이 평북도 신의주인 친구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이면 고향에서는 시장에서 빨간 앵두를 많이 사먹었는데, 이곳 남한에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앵두 파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함북도가 고향인 친구들은 앵두를 보지 못하고 살았다고 오늘 앵두를 처음 보았고 처음 먹어 본다고 말했고 한 친구는 중국에서 많이 먹어 보았다고 했습니다.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양이든 신의주이든 함북도이든 강원도이든 모두가 북한에서 태어났는데 이 작은 앵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 온 사람,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과일인데도 고향이 아니라 중국에서 먹어 보았다는 친구를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앵두 몇 알을 손에 들고 눈물이 글썽거리는 친구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슬그머니 다가가 그의 잔등을 조용히 두드려 주었습니다. 동생 생각이 난다고 하네요. 아주 어렸을 때 일이라고 합니다만 시골에서 자란 그는 농사 일로 바쁜 부모님을 도와 2살 아래인 동생을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래고 있는데 드문드문 빨갛게 익은 한 그루의 앵두나무가 눈에 들어 왔다고 합니다. 금방 익기 시작한 앵두를 골라 동생의 입에 넣어 주었는데 동생은 잘 익지 않은 딴딴한 앵두 한 알을 콧구멍에 넣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부모님의 야단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 와서야 동생의 이상한 손동작을 보고 병원을 갔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수술을 했고 부모님의 훈시가 두려워 그 어린 마음에 이모 집에 가 숨어 있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동생이 본인 때문에 멋지고 잘생긴 모습에 코 밑에 작은 수술 자리의 흔적이 있다고 하네요. 그로부터 성인이 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앵두를 보면 그 트라우마로 인해 앵두를 먹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곳 남한에 와서도 해마다 이맘때이면 그 동생이 그리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이 앵두를 보려고 새벽 꿈에 동생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하네요. 한참 앵두를 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교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조금 일찍 오신 교수님은, 수업 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인은 북한의 산마다 나무 밑에 취나물, 곤드레 나물과 산에서 자랄 수 있는 갖가지의 나물을 심도록 이곳 남한에서 지원해 주자는 제안을 내년에 제기할 것이라고 합니다.

순간 한결같은 박수가 스스로 나왔습니다. 그러면 북한 주민들의 부식물 문제가 조금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량 공급을 다 받아도 모자랐고 더구나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북한주민들은 모든 식량이 들나물과 산나물로 해결하려다 보니 오늘의 산에는 나물이 자라기도 전에 싹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저도 곤드레밥이나 취를 좋아합니다. 하여 올 봄에 곤드레를 조금 심었습니다. 손바닥만큼 자란 곤드레잎을 보면 벌써 곤드레밥이 생각나 저절로 행복한 웃음이 나온답니다. 이곳 남한의 박사, 교수들도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들의 건강과 함께 의식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하는 로고와 심려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돈도 든 것도 아니고 그냥 농장에 있는 앵두나무에서 잘 익은 앵두를 나누어 먹었을 뿐인데 그 작은 것을 두고도 고향을 향수하며 먹어주는 친구들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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