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남한은 레미콘 차, 북한은 삽으로...

하루 밤 자고 나면 몰라보게 높이높이 오르는 수많은 아파트나 건물 건설장들을 볼 때 마다 내 고향 평양의 광복거리와 통일 거리 아파트 창가에서 본 얼굴들을 기억해 봅니다.
김춘애
20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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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에서 아침 출근으로 분주히 오가는 학생들과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는 승용차들을 바라보다가 언뜻 두 대의 레미콘 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북한에선 저도 이런 차를 본적이 없는데, 차에 달린 큰 통에서 몰타를 만들어서 공사장까지 나르는 차입니다.

저는 우리 집 주변, 아파트 건설장으로 들어가는 이 레미콘 차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이곳에 집을 배정 받아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5년이 되어옵니다. 그 동안 집 주변에는 새로운 아파트들이 줄지어 일떠섰답니다. 금방 기초를 파는 모습을 본지 1년이 지나면 어느새 몇 십층 씩 되는 아파트 몇 개가 한꺼번에 척척 일떠섭니다. 새로운 아파트로 주민들이 행복한 웃음 가득안고 입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따라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도 레미콘 차에서 높은 아파트에 몰타를 쏘아 올리는 모습과 높은 기중기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평양의 광복거리와 통일 거리 건설은 모두 다 순전히 사람의 인력으로 건설했습니다.

광복거리 아파트는 기초 공사로부터 시작해 한층 한층 올라가는 모든 곳에는 피땀흘린 주민들의 손때가 묻어 있습니다. 높은 아파트를 건설하려면 곡괭이와 삽으로 기초를 파고 층이 올라가면 등짐과 들 고, 목 고로 깊은 곳과 높은 층계를 오르내리며 흙과 사 모래를 날라야 했습니다.

벽돌과 시리카트 벽돌장도 등짐으로 올려갔습니다. 기중기는 20층-30층 아파트 틀만을 올리는 일에나 동원됐습니다. 통일거리 건설도 이와 꼭 같았습니다. 저는 만경대구역인 광복거리 건설과 락랑 구역인 통일 거리 건설, 무궤도 전철공사에 많이 참여 했습니다.

주말이면 많은 주민들이 쉬지 않고 소랭이와 삽을 들고 참여 하기도 하고 야간이면 색다른 충성의 야간 돌격대에 주민들이 참여 했습니다. 저도 남자들과 꼭 같이 큰 도라무 통에 물과 몰타를 담아 목 고로 3.4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렇게 큰 공사는 크고 작은 사고로 사람들의 생명도 많이 빼앗아 갔습니다. 통일거리 건설이 한창인 어느 날 순식간에 20층 건물이 무너져 내린 일도 있었습니다. 젊은 군인들이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 한 개 대대..모두가 깊은 땅속에 묻혀 생매장돼 버렸습니다.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인력으로 모래와 시멘트를 배합하다 보니 비례가 잘 혼합되지 못하고 흙이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군인들이 대동강 바닥에서 파내는 모래를 검사도 하지 못한 채 몰타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몇 십년 전 일이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강산이 4번은 족히 바뀌고 세기가 바뀌었어도 북한의 건설 방법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곳 남한의 아파트 건설장에 가보면 사람은 기중기 신호공과 공사 일꾼들 몇 명 외에는 볼 수가 없답니다. 기초를 파는 작업부터 대부분 힘이 든 작업은 기계가 합니다.

남한에서 처음으로 레미콘 차에서 뿜어 나오는 몰타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서울에서 생활한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오늘처럼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에서는 아파트 건설장에 레미콘 차 여러 대가 순서대로 들어가더니 굵은 호수로 마치 지하수 물을 쏘아 올리듯이 몰타를 높은 고층 건물에 쏘아 올리는 장면을 너무도 희한하게 보았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차를 타고 어디를 가더라도 혹시 건설장이 보이면 그냥 스쳐 지나지 않고, 남한에서 처음 보았던 그 신기한 호기심을 잊지 않고, 기웃거리다가 한번은 경비원 아저씨의 통제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밤 자고 나면 몰라보게 높이높이 오르는 수많은 아파트나 건물 건설장들을 볼 때 마다 또 저녁이면 아파트 창으로 보이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고향 평양의 광복거리와 통일 거리 아파트 창가에서 본 얼굴들을 기억해 봅니다.

식량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이 매일 매일 들려오는 요즘, 내 고향의 주민들의 생활 처지는 불 보듯 뻔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위층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피아노 소리가 슬프게 들립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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