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살아남은 자의 행복
김춘애
2009.02.27
2009.02.27
아침 저녁 아직 쌀쌀하지만,
여성들의 옷차림과 꽃나무 줄기를 바라보면서
마음은 벌써 봄처럼 가볍습니다.
봄이 오는 요즘 저는 매일 아침 출근길 마음이 괜히 설렌답니다. 장롱 앞에서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까? 이 옷은 좀 야한 것 같고 이것은 또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듯하고 이 옷은 너무 얇아서 추울 것 같고··· 고민이 이어집니다. 이럴 때면,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과 아이들이 웃으면서 아침이면 우리 엄마 때문에 더 분주하다는 둥 옷이 많아 걱정이라 둥 젊은 사람들보다 더 하다고 해가면서 저를 놀립니다.
한 때는 잘 먹고 잘 입고 땔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제 인생의 유일한 소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제 제 소원은 이뤄졌습니다. 땔 걱정에 먹을 걱정은 안 하거든요. 영원히 잊어버릴 뻔했던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세상에 부러운 것 없이 사는 오늘의 이 행복에 대해 저는 항상 감사합니다.
요즘 시집간 큰 딸애가 둘째를 임신해 입덧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아들 녀석이 큰 누나가 밥을 잘 먹지 못한다고 걱정을 하더니, 자기가 누나를 집으로 데려오겠다며 차를 끌고 큰 딸네 집으로 갔습니다. 자기들끼리 살갑게 챙겨주는 걸 보고 있으면 흐뭇합니다.
지금의 제 행복은 바로 이 아이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굳센 마음으로 죽지 않고 버텨서 이곳까지 살아온 것도 다 아이들 덕분이었습니다.
며칠 전,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막 죽고 싶었는데···. 또 죽으려고 했는데 죽을 수가 없었어. 언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죽지 못한 기억이 있는가?’ 제 친구는 얼마 전, 고향에 두고 온 늙으신 부모님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1년 전인 1997년 3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제 갓 마흔이 넘은 한 여인이 쌀쌀한 대동강 바람을 맞으며 대동교의 철교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눈에서는 괜스러운 눈물이 마치도 대동강 물과 함께 하염없이 내려 두 볼로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돈으로 10전이면 버스를 타고 대동교를 건널 수 있었지만, 이 여자의 주머니엔 단 돈 10전이 없었습니다.
대동교 철교 밑으로 금방 얼음에서 녹아 잔잔하게 흐르는 푸른 물이 언뜻언뜻 내려다보였습니다. 순간 그 여인은 대동강 철교를 뛰어내릴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발밑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살자 가족이라고 아이들을 총대로 밀쳐대고 발로 차는 모습도 어렴풋하게 보였습니다. 아마 이 얘기를 남쪽 사람들에게 했다면 나약하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방송을 듣는 여러분 중에서는 이 여인과 똑같은 생각을 해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 여인이 자살하려고 했던 무서운 공포증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고픔의 설움!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없는 어느 어머니의 아픈 마음과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하는 주부의 마음. 죽음까지 생각하게 할 정도로 살기 힘들었습니다.
이 여인은 바로 제 모습이자, 고향의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내 고향 어디쯤에서 이 여인과 같은 어머니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을 내려다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며칠을 굶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동네 주민들이 잔등에 업어 병원으로 갔는데, 저혈압이라고 진단을 내려 주고 돌려보내는 내 고향의 의사들.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향 사람들의 소원은 저와 똑같이 ‘잘 먹고, 잘 입고, 땔 걱정 없이 사는 것’이겠지요. 언제쯤 그럴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저는 살아남으면 반드시 지금보다는 나아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저도 그날이 빨리 오기를 무엇보다도 간절히 빌고 또 빌어 봅니다.
봄이 오는 요즘 저는 매일 아침 출근길 마음이 괜히 설렌답니다. 장롱 앞에서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까? 이 옷은 좀 야한 것 같고 이것은 또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듯하고 이 옷은 너무 얇아서 추울 것 같고··· 고민이 이어집니다. 이럴 때면,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과 아이들이 웃으면서 아침이면 우리 엄마 때문에 더 분주하다는 둥 옷이 많아 걱정이라 둥 젊은 사람들보다 더 하다고 해가면서 저를 놀립니다.
한 때는 잘 먹고 잘 입고 땔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제 인생의 유일한 소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제 제 소원은 이뤄졌습니다. 땔 걱정에 먹을 걱정은 안 하거든요. 영원히 잊어버릴 뻔했던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세상에 부러운 것 없이 사는 오늘의 이 행복에 대해 저는 항상 감사합니다.
요즘 시집간 큰 딸애가 둘째를 임신해 입덧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아들 녀석이 큰 누나가 밥을 잘 먹지 못한다고 걱정을 하더니, 자기가 누나를 집으로 데려오겠다며 차를 끌고 큰 딸네 집으로 갔습니다. 자기들끼리 살갑게 챙겨주는 걸 보고 있으면 흐뭇합니다.
지금의 제 행복은 바로 이 아이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굳센 마음으로 죽지 않고 버텨서 이곳까지 살아온 것도 다 아이들 덕분이었습니다.
며칠 전,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막 죽고 싶었는데···. 또 죽으려고 했는데 죽을 수가 없었어. 언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죽지 못한 기억이 있는가?’ 제 친구는 얼마 전, 고향에 두고 온 늙으신 부모님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1년 전인 1997년 3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제 갓 마흔이 넘은 한 여인이 쌀쌀한 대동강 바람을 맞으며 대동교의 철교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눈에서는 괜스러운 눈물이 마치도 대동강 물과 함께 하염없이 내려 두 볼로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돈으로 10전이면 버스를 타고 대동교를 건널 수 있었지만, 이 여자의 주머니엔 단 돈 10전이 없었습니다.
대동교 철교 밑으로 금방 얼음에서 녹아 잔잔하게 흐르는 푸른 물이 언뜻언뜻 내려다보였습니다. 순간 그 여인은 대동강 철교를 뛰어내릴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발밑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살자 가족이라고 아이들을 총대로 밀쳐대고 발로 차는 모습도 어렴풋하게 보였습니다. 아마 이 얘기를 남쪽 사람들에게 했다면 나약하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방송을 듣는 여러분 중에서는 이 여인과 똑같은 생각을 해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 여인이 자살하려고 했던 무서운 공포증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고픔의 설움!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없는 어느 어머니의 아픈 마음과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하는 주부의 마음. 죽음까지 생각하게 할 정도로 살기 힘들었습니다.
이 여인은 바로 제 모습이자, 고향의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내 고향 어디쯤에서 이 여인과 같은 어머니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을 내려다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며칠을 굶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동네 주민들이 잔등에 업어 병원으로 갔는데, 저혈압이라고 진단을 내려 주고 돌려보내는 내 고향의 의사들.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향 사람들의 소원은 저와 똑같이 ‘잘 먹고, 잘 입고, 땔 걱정 없이 사는 것’이겠지요. 언제쯤 그럴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저는 살아남으면 반드시 지금보다는 나아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저도 그날이 빨리 오기를 무엇보다도 간절히 빌고 또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