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배추 5포기의 김장

서울-김춘애 xallsl@rfa.org
2009.12.02
지난 주말에 저는 겨우내 먹을 김장을 했습니다. 김장을 한다고 했지만, 겨우 배추 5통을 담갔습니다. 식구가 적고 매일 직장에 나가다 보니 평소에는 집에서 밥 먹을 기회가 별로 없어서 김장을 조금만 했습니다. 이틀 전에 절여 놓았던 배추를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뒤 양념을 넣어 버무렸습니다.

작년 김치는 생동태를 썰어 넣었지만, 올해 김치는 멸치 액젓을 넣고 이곳 남한식 흉내를 내어 쪽파도 듬성듬성 썰어 넣었습니다. 김장을 하고는 호박고구마를 삶았습니다. 먹음직스럽게 김이 나는 호박고구마를 보니 저 혼자 먹기가 아쉬웠습니다. 친구 영숙이와 함께 삶은 고구마와 속배추인 꼬게기를 바가지에 담아 14층에 살고 있는 갓사귄 희옥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함께 꼬게기를 먹으며 고향 생각을 했습니다. 량강도가 고향인 희옥이는 아주 오래 전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맵다며 손으로 쭉쭉 찢어 물에 씻어 먹여 주던 그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영숙이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면 뜨끈뜨끈한 김치전을 부쳐 식기 전에 먹으라고 밥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이가 생겨나면서부터 김치를 먹으며 자랍니다. 매운 맛과 신 맛이 감칠 맛 있게 어우러져 있는 김치를 저는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입맛이 없어 밥을 먹기 싫어도 특이한 맛과 색깔로 사람들의 식욕을 돋구어주는 것이 김치인 것 같습니다. 식탁에 한 끼라도 김치가 오르지 않으면 뭔가 잊어버린 것처럼 허전해서 거의 매 끼니마다 김치를 먹습니다.

제가 군에 있던 시절, 김치를 먹고 싶어 병사들의 취침시간이 지난 한밤중에 군인 가족 사택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렸습니다. 휴가 때 집에 와서 어머니가 담근 김치 반포기를 혼자 앉은 자리에서 다 먹은 적도 있습니다.

“유산균의 보고”로 잘 알려져 있는 김치는 노화방지며 항균작용 등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지난 2003년 중국에서 사스가 유행했을 때 중국내 한국인들의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아서 김치가 바이러스성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올해 독감의 일종인 ‘신종플루’가 전세계에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김치를 먹는 한국인들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과학적인 근거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저는 요즘 신종플루를 예방한답시고 원래도 좋아하는 김치를 더 많이 먹고 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김치를 많이 먹게 한답니다.

우리 민족의 김치는 종류만 해도 2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김치로 할 수 있는 음식도 김치찌개, 김치만두, 김치볶음, 김치밥 등 셀 수 없이 많으니 김치를 좋아하는 저는 오늘은 김치찌개 내일은 김치볶음, 이렇게 김치를 이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매일 매 끼니마다 김치를 먹으며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김치의 단 맛은 마치 정이 많은 우리 민족의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고, 김치의 신맛은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김장을 해서 겨울 식량을 다 마련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 있는데, 양천구 자원봉사단에서 김치를 가져왔다는 전화가 또 왔습니다. 탈북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양천구에서는 해마다 김장철이면 김장을 담가 탈북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치 부자’가 됐습니다.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주로 김치만 먹는 북한에서는 한 해 김장을 500kg이나 담고도 적다고 하겠지만,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온갖 야채를 비롯해 먹을 것이 넘쳐나는 남한에서는 겨우 배추 5포기의 김장을 하고도 ‘김치 부자’가 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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