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설 명절에 모인 가족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0.02.17
며칠 전에 지낸 음력설은 저에게 가장 행복한 설 명절이었습니다. 저의 가족에게 새로운 생명이 한 명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 명절 전에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작은 딸이 전화를 하면서 시부모가 명절 때 친정집에 가서 일주일을 푹 쉬고 오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저는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사돈이 한없이 감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명절에 모인 우리 가족이 큰 밥상에 빙 둘러 앉아 아침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해마다 명절 때면 빼놓지 않는 음식으로 대게와 소라를 준비했고, 소갈비에 고사리, 오이무침과 중국식 만두도 했고, 열콩에 돼지고기를 섞어서 만든 볶음채 등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렸습니다.

작은 딸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이제 한달 반 된 손자를 안고 있었더니 큰 손녀딸이 질투를 해 한바탕 웃었습니다. 평소에 거의 비어 있는 저희 집에 온가족이 모이니 사람 사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설을 앞두고 아들은 제게 ‘엄마 이번 명절준비는 다 했어? 이번 명절에는 떡도 조금 해 먹자,’ 하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떡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잊지 않고, 특별히 떡 집에 찹쌀떡과 시루떡을 주문했습니다. 설날 아침 밥상에 올린 떡을 밥상 앞에 앉자마자 한 개 집어 먹던 아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고향에서 쇠던 명절을 떠올렸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는 해마다 찾아오는 설날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일 수가 없었던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고기는 커녕 사탕 과자도 못 먹을 때가 많았고, 떡도 부족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저는 이번 설날에만은 꼭 떡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여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겨우 찹쌀 2kg을 사서 아침 일찍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저는 가마에 보자기를 깔고, 깨끗이 씻은 찹쌀을 올려놓았습니다.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찹쌀밥을 절구에 담아 찧고 또 찧었습니다. 절구 찧는 소리에 깬 아이들은 제 주위에 빙 둘러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구경하는 찹쌀떡이라 군침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철이 없던 막내는 어서 먹겠다고 조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한 움큼씩 뜯어 콩가루를 묻혀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려고 밥상을 놓고 보니 떡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떡을 많이 만들지 못해서 저는 거의 먹지 못했지만, 맛있게 먹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배가 불렀습니다.

설날 저녁엔 친구 영숙이가 두 딸과 함께 저희 집에 놀러 왔습니다. 새로 태어난 제 손자를 보러 온 것입니다. 저는 저녁식사는 외식을 하자고 하면서 영숙이 가족과 우리 가족을 데리고 신토불이 오리 구이 집으로 갔습니다.

영숙이 가족과 우리 가족은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비롯한 제 3국에서 고생을 함께 하며 이곳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정이 들어 마치 한 가족과 같습니다. 명절인데도 오리구이 집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곳 남한 사람들은 명절날 가정 주부들이 음식을 장만하느라 고생을 많이 한다면서 저녁엔 식당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남한에선 해가 갈수록 가정 주부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데 내 고향에서는 하루하루 식구들 생계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명절에 즐거워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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