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는 바빠서 새해 1월1일에 먹을 음식 준비를 하나도 못했습니다. 31일 밤 12시가 되어 퇴근길에 오른 저는 아들에게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습니다. 하여 아들에게 엄마가 미안하다고 전화를 했더니 마침 아들은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다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새해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있는 것을 다 꺼내어 아침 밥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오전 10시가 되어 저는 남편과 함께 노량진 시장으로 갔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감은 있으나 그래도 설 명절이라 좋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 설 명절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보내는 것이 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딸이 갓 출산을 해서 올 수 없었고, 음식점에서 일하는 큰딸 역시 출근을 해야 해서 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노량진시장에서 큰 게 두 마리를 골랐습니다. 올해는 게 값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1kg에 2만5000원이었는데 올해는 3만 5000원이었습니다. 큰 게 두 마리에 11만원을 주고 사고, 도미도 사서 회를 쳐서 가져왔습니다.
게는 우리 식구가 먹을 것이고, 도미 회는 오후에 부부 동반모임에 가지고 갈 참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저는 게를 가마에 쪘습니다. 게 한마리가 얼마나 큰 지 저와 남편,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실컷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집에서 간단하게 미리 준비한 음식과 도미 회를 가지고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사는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새해 첫날 부부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미리 약속이 돼 있었고 각자 자기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2가지씩 해 가지고 모이자고 했던 것입니다.
친구는 며칠 전에 중국에 있는 한족 남편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남편은 중국에서 몸이 많이 불편해 혼자서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친구가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는 충고를 했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몇 년 전 중국에 있을 때 산동성의 어느 시골에서 양몰이를 하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팔려 갔었다고 합니다. 엄마와 어린 두 딸이 어쩔 도리 없이 각자 다른 데로 팔려가면서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데 그 한족은 자신과 어린 두 딸을 함께 샀다고 합니다. 한 평생을 양몰이로 살아온 그 한족은 양을 팔아 한 번에 많은 돈을 주고 자신과 두 딸을 사서 가족으로 맞았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늑막염에 걸려 다 죽게 됐을 때도 그 한족 남편은 얼마 남지 않은 양을 팔아서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합니다.
친구가 남한으로 온 것도 북한으로 북송되는 것을 두려워한 남편이 먼저 친구를 남한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저는 그 고마운 사람을 배반하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의 한족 남편이 한국에 온 것을 축하해 주고, 1월1일 명절도 함께 기념하기 위해서 부부동반으로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던 것입니다.
한창 먹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 영숙이 남편의 회사 동료가 찾아와서 합석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남한 사람이었습니다. 새해 첫날 부부끼리 모인 자리는 어느 새 남한 사람, 북한 사람, 중국 사람, 조선족 등 나고 자란 곳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작은 행사가 됐습니다. 각기 다른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난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영숙이는 아이들이 중국에서 바나나를 보고 늙은 오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을 웃겼고, 새로 온 친구 귀순이의 아이들도 귤을 껍질째로 먹어 한족 남편이 웃었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지금은 그냥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배고프고 힘겨웠던 그 시절엔 정말 마음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명절 때면 공급되는 술 한 병과 두부를 가지고 친척집을 찾아 빙 둘러 앉아 만두국과 송편을 빚어 먹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했습니다.
이곳 남한 사람들은 음력설을 크게 보내지만, 그래도 우리 탈북자들은 양력설이 되면 무척이나 고향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아픈 기억이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좋은 일이 생길 때도,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고향이 더욱 그립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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