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남한에 적응하려면 아직 멀었네유”

저녁에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습관적으로 현관에 있는 우편함을 열어봅니다. 반가운 편지보다 돈 내라는 청구서가 더 많아서, 별로 반갑진 않은데도 이젠 버릇처럼 돼 버렸습니다.
김춘애
2009.01.30
오늘 도착한 우편물은 자동차 1년 세금을 미리 내면 10% 깎아 준다는 안내장, 또 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 보험료를 내라는 독촉장, 그리고 ‘과오납 환부금 수령 안내장’ 이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독촉장은 제가 건강 보험료를 미납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아니 내가 언제 건강 보험을 가입했었나? 병원도 한번 안 갔는데? 이해가 안 돼서 당장 편지지 뚜껑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돌렸습니다.

저는 화난 목소리로 보험에 든 적도 없는데 어째서 보험료가 미납됐으며 이 돈은 왜 제가 내야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상대방 아가씨는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났을 텐데도, 차분하고 친절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습니다. 건강 보험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내야 하고 건강 보험료는 소득이나 자동차나 주택 소유 등 재산에 따라 정해진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래도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전화로 안 되겠다 싶어, 날이 밝으면 직접 건강보험공단이라는 곳을 찾아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데, 그냥 돈을 낼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저는 웬만하게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데 왜 이런 돈을 내야 하는지, 마치 사기를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회사에 출근해서 남한에 먼저 온 선배들에게 이 봉투를 꺼내 들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웃으면서 이곳 남쪽에 사는 모든 국민이 모두 건강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아프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개개인이 가진 재산과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야 한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일종의 세금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국민이 낸 돈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관리해, 아파서 병원에 갈 때 병원비의 많은 부분을 국가에서 대신 내준다는 겁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남쪽에 처음 도착하면 보험료가 조금 싸고, 의료 보장이 더 많은 1종 의료 보험을 주고 5년이 지나면 이곳 남한에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일반 국민과 같은 건강보험증을 발급하기 때문에 보험료는 응당 제가 납부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과오납 수령증’은 제가 지난 1년간 번 돈에 비해 세금을 많이 내서, 이것을 다시 받아가라는 안내장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곳 남한에 온 지 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그저 아파트 관리비나 사용료나 내면 이것이 세금이고 이것만 제날짜에 꼭꼭 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래 놓고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이곳 남한에 빨리 적응했다고 큰소리를 치며 자신만만했는데,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살았다니 슬쩍 얼굴이 빨갛게 달아 왔습니다. 아직도 제가 이곳 남한 사람이 되려면 멀었나 봅니다.

북한은 무료 교육, 무상 치료와 세금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사실, 11년제 의무교육 무료교육이라고 하지만 학교에서 요구하는 하는 것이 너무 많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장마당이나 길거리에서 헤매는 어린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또 무상 치료제라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도 맞을 수 없습니다.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만 받고 장마당에서 중국제 주사나 약을 자체로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쪽에서도 수도료 집세 전기료 등의 사용료를 냅니다. 남쪽 사람들은 북쪽에서는 나라에서 집세, 전기료, 수도료를 다 내주는 줄 아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북쪽도 남쪽과 같이 매달 사용료를 냅니다.

퇴근길에 오른 저는 전화로 시집간 큰딸에게 오늘 있었던 얘기를 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이곳 남한에 적응하려면 아직 멀었네유’ 하는 놀림이 싫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는 사실도 이렇게 한 개 두 개씩 배우면서 사는 재미도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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