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희망을 향해 날개를 펴라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0.12.15
2010.12.15
사진-연합뉴스 제공
얼마 전에 저는 강원도 안보협의회 주최로 진행된 ‘강릉 안보 한마음 다짐대회’의 초청으로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아침 일찍 동서울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 고속터미널까지 약 3시간이 걸려 목적지에 도착한 저는 택시를 타고, 강릉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으로 갔습니다. 강연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한 저는 내빈석에 앉아 제기차기 경기를 관람하게 됐습니다.
단체별로 여자 5명, 남자 5명이 뽑혀 넓은 실내운동장 한 가운데서 줄을 맞춰 앉게 하고는 한 명씩 대열 앞으로 나와 먼저 주석단에 인사를 하고는 제기차기를 하는데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었습니다. 분명 저 사람들은 윗동네가 고향인 탈북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제기차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저도 반가워서 열심히 응원해 주었습니다. 40대, 50대 아줌마들인데도 제기를 15개, 20개씩 찼습니다. 북쪽에 있을 때 어렸을 적부터 추위를 이겨내느라 체육시간에 줄기차게 했던 터라 제기차기에는 익숙한 탈북자들이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진행된 제기차기 경기가 끝나고, 강릉 ‘그린 실버악단’의 연주에 맞추어 애국가 제창을 하고,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한 뒤에 내빈 소개와 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동계올림픽 결의문 낭독이 있었고, 뒤이어 저의 특별강연이 진행됐습니다.
1부 오전 행사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저는 ‘한민족통일’이라고 하는 단체의 여성 회장님을 따라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은 뷔페식이었습니다. 뷔페란, 다양한 음식들을 여러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많이 만들어서 큰 그릇에 담아 한 곳에 진열해 놓고, 먹는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만큼 가져다 먹게 하는 방식입니다.
차려진 음식들을 이것저것 맛보다가 재기차기를 했던 사람들을 가까이서 봤습니다. 제 판단대로 그들은 탈북자였습니다. 저는 그들과 어울려 맛있는 뷔페 음식과 강원도 식으로 만든 찰떡과 송편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비록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서로 하나원 몇 기이며,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 남자 분은 제게 서울에서 오시느라 수고했다면서 따끈한 커피까지 타 주었습니다. 제가 커피를 두 손으로 받으며, 남자 분이 타 주는 커피는 처음 마셔 본다며 특별히 달콤할 것 같다고 농담을 하자, 주위 있던 많은 사람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한 부부는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저와 나이가 한두 살 차이였습니다.
남편은 올해 대학을 졸업했고, 내년 1월부터는 어린이 집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남한에 와서 우리가 희망하고, 또 하고자 하는 일을 누구의 구속 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희망과 목표를 갖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습니다.
제 말에 그는 북한 같으면 자기 나이에 어떻게 대학에 갈 수 있으며, 어린이 집 운영을 꿈이나 꿀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북한에서는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도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서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당당하고 확고한 의지를 마음 그대로 표현하며 자랑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내 일처럼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한마음 대회가 있었습니다. 노래자랑과 장기자랑에 이어 행운권 추첨도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상품으로 탄 사람도 있었고, 쌀을 한 마대씩 타는 사람도 있었는데 40대로 보이는 탈북자 여성이 용기 있게 무대로 올라 노래를 불러 10만원의 상품을 탔습니다. 용기 있게 노래를 부른 여성을 향해 관중석에서는 큰 박수와 함께 앵콜이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탈북자들이 친척이나 아는 동료 한 명 없는 낯선 땅, 남한에 와서 주저함 없이 당당하게 정착해 나가고 있는 밝은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너무 감사해하면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덧 시상식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인 행운권 추첨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저는 손전화기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강릉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자기들 집으로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저는 건강하게 지내고, 하고자 하는 일에 꼭 성공하기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다음에 강릉에 갈 기회가 있으면, 어린이집을 운영하겠다던 탈북자 부부를 방문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단체별로 여자 5명, 남자 5명이 뽑혀 넓은 실내운동장 한 가운데서 줄을 맞춰 앉게 하고는 한 명씩 대열 앞으로 나와 먼저 주석단에 인사를 하고는 제기차기를 하는데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었습니다. 분명 저 사람들은 윗동네가 고향인 탈북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제기차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저도 반가워서 열심히 응원해 주었습니다. 40대, 50대 아줌마들인데도 제기를 15개, 20개씩 찼습니다. 북쪽에 있을 때 어렸을 적부터 추위를 이겨내느라 체육시간에 줄기차게 했던 터라 제기차기에는 익숙한 탈북자들이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진행된 제기차기 경기가 끝나고, 강릉 ‘그린 실버악단’의 연주에 맞추어 애국가 제창을 하고,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한 뒤에 내빈 소개와 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동계올림픽 결의문 낭독이 있었고, 뒤이어 저의 특별강연이 진행됐습니다.
1부 오전 행사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저는 ‘한민족통일’이라고 하는 단체의 여성 회장님을 따라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은 뷔페식이었습니다. 뷔페란, 다양한 음식들을 여러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많이 만들어서 큰 그릇에 담아 한 곳에 진열해 놓고, 먹는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만큼 가져다 먹게 하는 방식입니다.
차려진 음식들을 이것저것 맛보다가 재기차기를 했던 사람들을 가까이서 봤습니다. 제 판단대로 그들은 탈북자였습니다. 저는 그들과 어울려 맛있는 뷔페 음식과 강원도 식으로 만든 찰떡과 송편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비록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서로 하나원 몇 기이며,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 남자 분은 제게 서울에서 오시느라 수고했다면서 따끈한 커피까지 타 주었습니다. 제가 커피를 두 손으로 받으며, 남자 분이 타 주는 커피는 처음 마셔 본다며 특별히 달콤할 것 같다고 농담을 하자, 주위 있던 많은 사람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한 부부는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저와 나이가 한두 살 차이였습니다.
남편은 올해 대학을 졸업했고, 내년 1월부터는 어린이 집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남한에 와서 우리가 희망하고, 또 하고자 하는 일을 누구의 구속 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희망과 목표를 갖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습니다.
제 말에 그는 북한 같으면 자기 나이에 어떻게 대학에 갈 수 있으며, 어린이 집 운영을 꿈이나 꿀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북한에서는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도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서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당당하고 확고한 의지를 마음 그대로 표현하며 자랑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내 일처럼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한마음 대회가 있었습니다. 노래자랑과 장기자랑에 이어 행운권 추첨도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상품으로 탄 사람도 있었고, 쌀을 한 마대씩 타는 사람도 있었는데 40대로 보이는 탈북자 여성이 용기 있게 무대로 올라 노래를 불러 10만원의 상품을 탔습니다. 용기 있게 노래를 부른 여성을 향해 관중석에서는 큰 박수와 함께 앵콜이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탈북자들이 친척이나 아는 동료 한 명 없는 낯선 땅, 남한에 와서 주저함 없이 당당하게 정착해 나가고 있는 밝은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너무 감사해하면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덧 시상식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인 행운권 추첨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저는 손전화기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강릉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자기들 집으로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저는 건강하게 지내고, 하고자 하는 일에 꼭 성공하기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다음에 강릉에 갈 기회가 있으면, 어린이집을 운영하겠다던 탈북자 부부를 방문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