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남쪽에서 듣는 희망의 종소리

벌써 2009년의 아침 햇살을 맞은 지도 한 주일이 흘렀습니다. 2008년의 마지막 밤, 저는 타종 행사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김춘애
2009.01.02
자정이 넘어 타종되는 보신각 종소리에 두 손을 꼭 잡은 채 올해는 나라의 경제가 확 풀려서 온 국민들이 잘살게 해 달라고 또 우리 아이들과 우리 부부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습니다.

사실 양력설인데도 집 안엔 덜렁 저 혼자였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이 날은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해서 좀 서운했는데,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 가족들 모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또 하나 혼자 있는 저를 전혀 외롭지 않게 해준 것은 친구들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신각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제 손 전화기도 연신 울렸습니다. 전화기에는 문자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복 많이 받아라, 건강을 바란다, 친구들의 새해 축하 문자였습니다. 저는 하나하나 정성들여 답신을 보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엔 새해의 첫 시간을 알리는 보신각 종 주변에 모여든 시민들의 환한 얼굴을 비춰졌습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희망찬 2009년을 맞는 시민들의 모습은 밝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제 고향인 평양에서도 묵은해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12월 31일 자정엔 대동강 기슭, 대동문에 있는 종을 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널리 울려 줍니다. 하지만 그 땐 그 종소리가 별 의미가 없이 들렸습니다.

다음날 저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출근길에 오른 저는 서울시내 중심을 가로 질러 출렁 출렁이며 흘러가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새해 첫 날 특별히 할 일감이 없어도 첫 출근을 누구보다 일찍 해야 충성심이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출근을 하기위해 하루 전날 직장 현장에서 밥을 지어 먹으며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또 인민반에서는 조직별로 반별로 주민들을 동원시켜 농촌에 보낼 분토를 마련하느라 위생실의 인분을 퍼내어 양철 판에 불을 지펴 구어 인분 가루를 만들고 주민들과 한 줄로 서서 너무 추워 불을 지펴 가며 꽁꽁 얼어붙은 보통강 하천 바닥을 퍼 올려 쌓던 주 민들의 시퍼렇게 언 모습이 눈앞에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저의 온 몸엔 저 눈 앞에 한강물이 몸에 닿는 것처럼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새해 첫날, 직장에서 하루 종일 저는 신났습니다. 일도 척척 잘 풀렸고, 일을 끝내고 퇴근길에 오른 저는 남편에게 응석 절반 투정질 절반 섞인 목소리로 이번 설은 정말 쓸쓸했다고 말했습니다.

제 투정에 남편은 크게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주말엔 큰 사랑을 듬뿍 안겨 주겠다며 능청스러운 말을 하는 통에 저는 길가에서 남이 쳐다보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크게 웃었답니다. 올해도 저는 행복하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행복을 꼭 여러분께도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올해도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