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빨리 고향 가는 꿈이 이뤄지길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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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화상상봉실에 이산상봉 성사와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화상상봉실에 이산상봉 성사와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제공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진행 된지 며칠이 지났지만 자유로에는 아직도 한반도 깃발이 나부끼고 정상회담을 환영한다고 씌어 있는 플래카드가 수 없이 붙어 있습니다. 봄바람에 펄럭이는 한반도 깃발과 플래카드를 보면서 지나간 남북정상회담 실황 중계를 통해 본 기억들이 새록새록 해지네요.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을 보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과 북한의 교류는 물론 어쩌면 남과 북한이 개방되어 죽기 전에 고향에 가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 보기도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 남한으로 오신 실향민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많은 관심과 설렘, 환호 속에서 기쁨을 금치 못해 하는 모습도 함께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오랜 세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다면서 죽기 전에 고향에 한 번 가보는 것을 꿈꾸며 한 평생을 살아 왔다며, 남북정상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고향 땅을 밟을 그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어쩌면 실향민들과 우리 탈북자들의 희망은 오로지 자나 깨나 고향에 한번 가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북한의 김 위원장이 판문점을 직접 도보로 넘어와 문 대통령을 만나고 이어 악수를 한 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판문점 경계선을 넘어 북한 쪽으로 다시 갔다가 오는 장면과 방명록에 직접 쓴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 라는 글을 보는 순간 금방이라도 통일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 마음이 뭉클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평양냉면을 편하게 드시라”고 “멀리서 가져 왔다”고, “아니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하는 내 고향 평양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는 순간 더더욱 눈물이 났습니다. 이곳 남한의 문 대통령이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는 말에 북한의 교통상황이 열악하다는 거짓 없는 솔직, 담백한 얘기가 마음에 와 닿기도 했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을 나 자신도 모르게 잠깐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은 할아버지의 유훈을 이어 가기 위해 조금은 노력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았습니다. 제가 고향에 있을 때 김일성은 이곳 남한의 서울에 와서 30분간 연설을 한다고 했거든요. 당시 평양 시민들뿐만 아니라 북한 모든 주민들은 한사람같이 서울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면 통일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 시대에 이미 진정한 통일이 되었다면 2천 300만 주민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남과 북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선언한 약속이 지켜지는 그날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손꼽아 기다리면서 “누가 북측 성원인지, 누가 남측 성원인지, 분간 할 수 없다”고 한 김 위원장의 말이 현실화 된다면 탈북자라는 용어도 아마 저절로 사라지겠죠.

이번 남과 북 두 정상 회담을 처음부터 마감까지 지켜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한층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자식이 무엇이기에 저희 부모님은 불효 자식이 그리워 마지막 눈도 감지 못하셨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문을 잠그지 못하셨을 뿐 아니라 잠결에도 문밖에서 낯선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둘째가 아닌가 하고 맨발로 뛰어 나오셨다고 합니다.

한 평생 군인으로 당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님 역시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열악해진 험악한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남모르게 법을 위반해서라도 애들을 굶기지 말고 잘살아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저뿐만이 아니라 내 고향의 많은 주민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옛날에는 “밤새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다면 당시에는 “아침밥은 먹었나요?” 하는 것이 아침 첫 만남의 인사이기도 했었습니다.

북한 당국이 일찍이 핵 실험이나 로켓으로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의 경제생활을 향상 시켰더라면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고 고향을 등지고 부모 형제들과 헤어져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의 슬픔과 상처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남과 북이 갈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다시는 이산가족의 슬픔과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 없이 하루빨리 한 반도의 평화가 이루어져 고향으로 가는 꿈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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