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남한의 국민들은 수돗물을 함부로 마시지 않으며 보다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약수터를 찾곤 합니다. 저도 남한에 온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 북한에서처럼 수도 물을 먹어보지 못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 겸 맑고 깨끗한 물을 길러 산을 넘어 약수터를 찾는 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물병을 담은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도로를 따라 갈수도 있으나 우정 산으로 오릅니다. 파란 옷을 입은 산길을 싱그럽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혹시 산나물이 있지 않나 두루두루 살피기도 하며 걷노라면 자연히 마음이 상쾌해 지는 것이 어쩔 수가 없으며 또 약수터주변에 활짝 핀 진분홍 철쭉꽃들을 바라보며 한 병 두병 물을 뜨느 라면 한바가지 들이키고 싶은 마음의 충돌이 생겨 한바가지 쭉 숨도 쉬지 않고 쭉 들이키곤 한답니다.
그러고 나면 아침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 하루 종일 저절로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이렇게 저의 하루 일과는 아침 약수터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 됩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아침을 조금 늦게 먹고 10시쯤 약수터를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보란 듯이 맨 뒤에 배낭을 벗어놓고 운동을 위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운동 겸 산책을 하고 내려 왔으나 순서가 되지 않았기에 사람들 속에 끼워 저도 의자에 앉아 말참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맛을 놓고 서로 서로 자랑을 하는 바람에 저도 그만 나 자신도 모르게 말참견에 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말을 듣던 여러 사람들이 의아한 눈길을 주며 중국 조선족이 아니냐고 묻는 바람에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었으나 인차 <아니요 한국 사람인데요.>그래도 고개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사람들이 많이 모인데 가서는 조만해 말참견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북한 말이 액센트가 세다 보니 때로는 중국 조선족이 아니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 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과 약수터에 가면 자주 부딪치는 친구 같은 분 형제 같은 분으로 생각을 했기에 솔직히 북한에서 온 탈북자라고 자랑하듯이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결같이 그 험한 길을 어떻게 왔는가. 가족은 다 왔는가. 식구는 몇이며 정말 북한은 살기가 힘들며 자유가 없는 가등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 사람들이 있으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잘살라고 고무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또 새로운 것을 발견 하였습니다. 내가 매일 약수터를 다녀오면서도 나는 항상 이 사람들이 우리 탈북자들을 어떻게 볼가 하는 식으로 말도 하지 않고 의구심만을 말도 하지 않고 휩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음을 열고 보니 너무도 좋은 분들이었으며 모두가 친절한 분들이며 앞으로는 넓은 마음을 가직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다 친절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약수 물은 물맛도 좋았지만. 또 이 물맛처럼 사람들도 좋았습니다. 저는 물병을 담은 배낭을 지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남한은 음료수도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것을 골라가며 마시는 데 내 고향 사람들은 소독약도 풍부 하지 못해 소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수돗물도 모자라 마음껏 마시지 못하고 있는지 않는가.
때로는 물이 잘 안 나와 식사 후 설거지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으며 아파트에는 4층부터는 하루에 몇 분밖에 보내 주지 않는 수도 물마저도 받을 수가 없어 단층집으로 물을 길러 싸움을 바케스를 들고 지게를 메고 다니며 아파트생활이 슬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물은 없어서 안 되며 물을 떠나서 는 사람이 살수 없는 것이 물인데.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내 고향과 지금 저의 남한 생활을 보면 저는 너무도 행복합니다. 왜 내 고향은 이렇게 흔한 물마저도 부족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