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1)

저는 며칠 전,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들과 2박 3일로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서 하는 행사에 회사 사람들이 초대를 받았고, 운 좋게 저도 참석자로 뽑혔습니다. 한국에 온 이후 저는 일본을 한 번 다녀오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드디어 그 소원을 풀게 됐습니다.
서울-김춘애 xallsl@rfa.org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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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는 전날엔 비행기를 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 한잠도 못 잤답니다. 김포 공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였습니다. 비행기가 뜨지 않았는데도, 제 마음은 이미 일본으로 붕 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주는 아침밥을 먹고는 한참 눈을 감고 비스듬히 일본을 그려 봤습니다.

고향에서는 일본에 대해 좋게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이 36년 동안 조선반도를 강점하고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했다는 안 좋은 기억만 있습니다.

서울을 떠난 지 정확히 1시간 50분. 많은 기대를 했던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작성해야 할 서류 중 빠진 것이 있다 보니 처음으로 일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내가 일본말을 잘 모르자 손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아니오.’ 또는 ‘예’라고 표시하라고 알려줬고 일본에 머무르는 기간은 며칠인가 물어서 제가 손가락으로 세 개를 펴자 ‘싼고’하며 중국어로 답변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를 중국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본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저는 이것만은 알게 됐습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역시, 눈으로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일본하면 안 좋은 기억들이 직접 일본 사람을 보고 일본 땅을 밟아 보면서 조금은 사라지게 되는 듯했습니다. 공항을 나온 뒤엔 동료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이번 행사는 일본에 있는 납북 피해자 가족들이 마련했습니다. 행사장에선 많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눈으로 대화했고 직접 통역을 통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와 뭔가 통하는 데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만날 수도 없는 납북자 가족들은 가보고 싶은 고향 땅을 또 그곳에 살고 있는 내 가족을 볼 수 없는 우리 탈북자들과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사 도중 뜻하지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거리고 우리가 앉았던 의자와 앞에 놓여 있는 책상도 흔들거렸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 왔습니다. 지진보다 더욱 놀란 것은 이렇게 큰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거리고 있는데, 눈 깜짝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왜 그런가 물었더니 지진으로 흔들거리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행사를 마치고 나와 호텔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일본의 거리는 온화하고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섬나라라서 그런지 습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또 일본은 도로가 이곳 한국보다 좁았고 아파트 사이 집집들의 골목들도 매우 좁았습니다. 2층으로 돼 있는 집들은 이곳 한국 집들보다 매우 작았습니다. 자식들도 있고 식구들이 많은 세대는 저 작은 집들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묶은 호텔 방도 역시 작았습니다. 그렇지만 호텔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은 그야말로 멋있었습니다. 시원하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많은 높은 빌딩과 건물들에서 뿜어 나오는 불빛이 화려했지만, 창밖은 차 소리도 별로 없이 조용했습니다.

저는 창을 열어 조용한 일본의 야경을 내다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태어나 반생을 평양에서 산 사람입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도 가봤고 지금은 일본의 수도, 도쿄에 왔습니다. 그런데 내 고향 평양은 다시 가 볼 수 없습니다. 일본보다 미국보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그렇게 가까운 그곳에 내 생전에 다시 가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드니, 일본의 화려한 밤 풍경도 처량하게 보였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록본기 힐드라는 곳을 갔습니다. 59층이라는 이 건물은 남한의 63빌딩이나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 록본기 힐드에 꼭대기 층에서는 도쿄 시내가 한눈에 안겨 왔습니다. 또 한갓 오물장으로 되었던 곳을 인간이 힘으로 바꿔놓은 섬도 보았고, 텔레비전 방송국과 국회 의사당도 보았고, 도쿄 중심에 있는 남쪽의 남산 타워와 같은 도쿄 타워도 봤습니다.

록본기 힐드 꼭대기에서 아래로 보이는 일본 수도엔 젊은 사람, 늙은 사람,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서울도 사람이 많다지만 정말 일본 시내에는 웬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밝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세계 인민들이 잘 살고 있는데, 왜 내 고향 북한은 나날이 갈수록 굶주림은 더해가고 있을까요? 왜 내 고향 주민들은 잘 사는 나라에 태어나도록 선택을 받지 못했을까요? 언제면 내가 나서 자란 고향 땅에도 밝은 빛이 비쳐 질까요? 일본 땅에 선 제 머릿속엔 이런 질문이 끓임 없이 메아리쳤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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