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삼복더위의 주말이었습니다. 삼복더위엔 바다를 찾아가 따가운 햇빛과 바닷바람에 살도 태우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개벌에서 조개도 주으며 하루를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려고 우리는 인천 앞바다로 갔습니다.
도로 양옆에는 아름다운 빨간 장미꽃들이 활짝 피어 서로의 아름다움을 자랑 하듯이 머리를 내밀고 한들한들 까불고 있는 모습 또한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인천 바다는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다 가다보니 월미도 맞은 켠 으로 갔습니다. 우리 앞에 바라보이는 큰 섬이 월미도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월미도라는 조선 예술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저는 아이들과 월미도 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배표는 그리 비싸지 않았습니다. 배가 어찌나 큰지 버스 승용차20대는 실히 태울 수 있는 큰 배였습니다. 1층에다 차를 놓고 우리는 2층 객실로 올라갔습니다. 갈매기 먹 거리도 팔고 아이스크림도 파는 매대도 있었습니다. 저는 갈매기 먹 거리 2봉지를 샀습니다. 차와 사람들을 태운 배는 시간이 되자 붕 소리를 내며 출발하였습니다.
배가 출발하자 갈매기 떼들이 까맣게 줄을 서서 날아 달려드는 것이 정말 희한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던지면 마치도 비행기들이 급상승 급강하 하듯이 달려들어 잡아먹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먹을 것을 손에 들고 갈매기를 유인 하였습니다. 처녀시절 군인 생활의 날랬던 동작을 한번 애들처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의 충돌이 생겼던 것입니다.
몇 번 만에 드디어 커다란 갈매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와 우와' 하면서 저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갈매기를 안고 사진을 찍고 어떤 사람들은 신기하여 만져 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우쭐 하였습니다. 둘째딸은 갈매기를 잡으려다가 꼭 물렸는데 얼마나 주둥이가 센지 손가락이 피멍이 들었습니다.
갈매기를 날려 보내기가 아쉬워 집에 가져오려고 하였습니다. 마치도 이런 저의 모습이 어린애 같아 보였던지 사위는 갈매기는 보호동물이라 잡으면 안 되고 또 집에 가져가면 살지 못하고 인차 죽을 수가 있다는 것 이였습니다. 은근히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려 하였는데 그만 아쉬운 마음으로 배가 육지에 도착해서야 나주었습니다.
저는 갈매기를 보며 또 비행기처럼 급강하. 급상승 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도 비행기 같은 모습을 보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군인 생활을 할 때 공군 사령부 직속이었던 우리 부대에서 미사일 한발이 오발 된 적이 있습니다. 무전파가 그때 새의 주둥이와 맞부딪쳤는데 비행기인줄로 유도 군관과 조정수가 판단을 잘못하여 단추를 눌러 전투근무로 장탄 되었던 미사일한발이 오발되어 큰 사고를 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매기 주둥이를 만져 보면서 이래서 그때 그럴 수가 있었다는 것도 조금은 이해 할 수가 있었고 어찌나 세고 단단 한지. 우리는 월미도에 내려 한참을 차를 타고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바다가로 와 조개구이를 먹었는데 아이들은 바다가 에서 먹는 조개 맛이 별맛이라 좋아 했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 올 때는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육지로 승용차를 타고 오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인천 공항 쪽으로 오는 도로를 탔습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영종 대교에 올랐습니다. 영종 대교의 밤 전경은 볼만했습니다. 바다를 가로 질러 섬과 육지를 이어지는 다리인데 량 옆에는 아름다운 불빛으로 장식되어있어 차를 타고 오면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빨간 불빛에 비쳐지는 바닷물 또한 볼만하였습니다. 마치도 용 궁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고향인 평양에서 대동강 다리가 제일이라 하였는데 어찌 대동강 옥류교나 대동교에 비할 수 가있겠습니까? 저 뿐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너무너무 좋아 야단들이었습니다. 이런 속에서 애들은 은근히 아빠 생각들을 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움 속에서는 항상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저의 마음 또한 아플 때 가 많아집니다. 애들은 아빠가 그리 울 때이면 생떼 같은 죽음을 당한 아빠를 생각하면서 김정일 독재 정권을 저주하군 합니다. 북한주민들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