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⑧세종대왕에 대한 남북의 평가

워싱턴-이규상 leek@rfa.org
2010.03.16
sejong_statue-305.jpg 공식 표기 문자로 한글을 채택한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 방문단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구경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서 국민들에게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상당수가 세종대왕을 꼽을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어린이들로부터 노인까지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오늘은 세종대왕에 대한 남과 북의 평가를 살펴봅니다.

남한의 만 원 권에는 세종대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남한에서 세종대왕이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방증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에서는 세종대왕이 남한에서 만큼 존경받는 인물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 연구원의 김석향 교수가 지난 2002년에 탈북자 3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5명 중 33명이 세종대왕이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그 중 11명은 세종대왕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알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북한에서는 세종대왕에 대한 역사 교육이 남한 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남한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박종국 회장은 세종대왕이 남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박종국: 세종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업적도 중요하지만 그분의 인품이 백성을 사랑하는 민본 정신이 투철하다. 같은 지도자라 하더라도 세종은 창조와 연구 정신이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세종 같은 인물은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종대왕은 1397년 조선의 태종과 원경왕후 민 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세종은 처음부터 왕세자로 책봉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태종은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했으나 세종에게서 가능성을 엿보고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22살에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한 세종대왕은 정치, 사회, 문화와 국방 등 모든 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먼저 정치면에서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등용해 깨끗하고 참신한 정치를 펴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불교를 억재하고 유교를 장려하는 정책을 폈지만 만년에는 궁궐 내에 절을 지어 불교를 독신하는 한편 승과를 설치하는 등 불교에 대한 억압을 완화하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국방 면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1433년에는 압록강을 넘어 여진족을 무찔렀으며, 1443년에는 여진족에 대한 강경책과 영토 확장을 위해 최윤덕 장군과 김종서 장군으로 하여금 여진족을 토벌하게 하고, 평안도에 4군과 함경도에 6진을 설치했습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박종국 회장의 말입니다.

박종국: 그 당시 강변을 중심으로 여진족의 침입이 많았다. 그것을 정돈했다. 말이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했다고 하지만 조선의 정치적인 영향은 만주와 간도 까지 뻗었다.

이를 통해 세종대왕은 삼국통일 이후 점점 줄어가던 조선의 영토를 지금 중국과 북한의 국경인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까지 넓히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에 앞서 1419년 세종대왕은 남해안을 수시로 노략질 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이종무 장군을 삼도 도 절제사로 삼아 왜구들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게 했습니다. 조선군은 대마도의 왜구에게 항복을 받고 1420년 대마도를 경상도에 편입시켰습니다. 세종대왕은 왜구의 노략질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대마도와 조선의 무역을 허락해 삼포를 개항했으며 그 결과 왜구들의 조선 침입은 오랫동안 중단됐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과학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했습니다.

박종국: 15세기는 세종의 과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측우기는 21세기가 되도록 강우량을 측우하는 기기로 사용되고 있고, 인쇄 활자 관계도 그 당시 정리가 됐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 창제입니다. 훈민정음은 남한에서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난 1997년 10월에는 유엔 산하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외국인들도 인정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이 책에서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사용에 대한 설명에 대한 이론과 정연함은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남한 일각에서는 숭례문 대신 훈민정음을 국보 제1호를 지정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을 정도로 남한 사람들은 훈민정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의 역사학계는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의 위대함을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과학원이 발행한 조선통사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봉건 통치 배들은 인민들을 통치하고 봉건 륜리 도덕으로 얽어매기 위하여 인민들이 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표음문자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였다"

북한 역사학계의 이러한 해석은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박종국 회장은 지적합니다.

박종국: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서문에도 명시돼 있듯이 내실을 튼튼히 하고 모든 국민들이 문자의 혜택을 주기위해 백성을 위해 만든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새롭게 세웠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한반도의 우수한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자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북한도 매년 1월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정하고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훈민정음을 우리에게 물려준 세종대왕의 업적을 무시하고 세종대왕을 봉건통치배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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