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이면 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긴 세월인데요. 보릿고개를 넘기고 새마을운동, 경제 개발, 수출 증대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이른 요즘까지 국민의 가슴에 남아있는 그야말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북한 여러분도 이미자 씨를 아시는 분이 많으실겁니다. 2002년 9월에 이미자 씨 특별 단독공연이 동평양대극장에서 있었는데요. 그때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였는데도 동백 아가씨, 흑산도아가씨, 목포의 눈물 등을 열창해서 동평양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류 타기 오늘은 이미자 씨의 가수 생활 50주년 맞아 그녀의 인생과 노래에 관해 집중적으로 조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미자 씨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195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열아홉 순정'으로 가요계에 나왔습니다. '열아홉 순정'을 불렀던 순수했던 소녀가 그동안 5백여 장의 음반과 2천 곡이 넘는 노래를 발표하면서 이제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글쎄요. 평생 노래만 부르고 사셔서인가요? 제가 보기엔 5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더군요.
이미자 씨는 네 살 때부터 노래를 잘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 분들이 집에 오셔서 모임을 하고 돌아가시면 그분들이 부르던 노래를 꼬마가 가사까지 척척 외워서 천연덕스럽게 부르니까 어른들이 놀랐다고 해요. 동네에서 이미자 씨 집을 가리켜 '딸이 노래 잘하는 집'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시절 어느 텔레비젼 방송국에서 연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한 뒤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한국방송 MBC '일요인터뷰 20'에 출연해 '열아홉 순정'으로 가요계에 나온 배경을 설명했는데요.
보신각 있는 데예요. 거기에 유일한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거기 예능프로그램이 있는데 제가 가요부문에서 1등을 해서 그 텔레비전을 작곡가 나화랑 선생님이 보셨어요. 그래서 그분 댁으로 오라고 전달을 받아서 거기 가서 몇 곡 테스트 받아보고요. 그리고 그냥 그 자리에서 5곡을 주시더라고요.
저도 그 노래 생각이 납니다. '보기만 하여도 울렁, 생각만 하여도 울렁울렁' 참 가사도 때 묻지 않은 듯 순수하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요. 이미자 씨가 가수로 처음 시작한 노래 '열아홉 순정' 노래 듣겠습니다.
이미자 / 열아홉 순정
한류 타기 가수 50주년을 맞은 이미자 씨의 인생과 노래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엘레지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미자 씨. 50년 동안 노래를 했으니 유명한 노래들이 많이 있겠죠?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는 이미자 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당시 금지를 당해 가장 가슴 아프게 해준 노래이면서 애착이 많이 가는 노래라고 합니다. 그 외에 ‘여자의 마음’ ‘여자의 일생’ ‘잊을 수 없는 연인’ 등 수많은 곡이 있습니다.
이 곡들이야 말로 정말 제가 잊을 수 없다는 거. 그것은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입니다. 그 3곡이 가장 히트가 됐으면서도 가장 부를 수도 없고 음반 제작까지 금지됐던 그런 곡이기 때문에 그 곡이 이미자란 이름이 낳게도 해준 곡임에도 불구하고 그 곡을 제대로 못 부르고 금지가 돼서 한 20년 동안 못 불렀죠.
불후의 명곡으로 불리는 ‘동백 아가씨’는 왜색을 지녔다고 해서 금지곡으로 묶이는 수난을 당했었는데요. 금지곡이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권력층에서 이 노래를 좋아했다 그래요. 이런 일도 있었데요. 외국 국빈이 방문한 자리에 이미자 씨가 초청을 받았는데 ‘동백 아가씨’를 신청곡으로 불러달라고 했데요.
그건 외국에서도 ‘동백 아가씨’를 안다는 얘기였겠죠? 하지만 그때 당시 금지곡이었는데 외국 국빈들이 요청했으니 어쩌겠어요. 그래서 불렀는데 그것이 텔레비전 생중계가 됐었데요. 이미자 씨의 가슴을 많이 아프게 하고 가장 사랑한 노래 ‘동백 아가씨’ 들어보겠습니다.
이미자 / 동백 아가씨
1970년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가요계는 전통가요는 점점 사라지고 미국의 ‘팝’이란 종류의 음악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트롯트’라는 새로운 종류의 음악이 생겨나면서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예전에 활동했던 가수들도 복귀하면서 요즘은 ‘트롯트’도 가요계에서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특히 7-80년대 ‘팝’음악에 물들었던 사람들이 4-50대가 되면서 ‘트롯트’를 찾게 되더랍니다. 옛 향수가 그리운 거겠죠?
또 요즘 한국의 시대에 빗대 만들어진 말 중에 ‘기러기 아빠’란 말이 있습니다. ‘기러기 아빠’란 자녀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한 곳에서 살지 않고 엄마가 아이만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고 아빠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는 가정의 모습인데요.
‘기러기 아빠’란 말이 여기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외국에서 ‘기러기 아빠’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 진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미자 씨가 부른 기러기 아빠 잠시 들어볼까요?
이미자 / 기러기 아빠
이렇듯 이미자 씨 노래는 인생을 그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불리고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아직도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진 이미자 씨. 올해 가수 시작50주년을 맞아 그간 불렀던 101곡을 담은 음반 ‘세상과 함께 부르는 나의 노래’를 제작함과 동시에 오는 4월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16개 도시를 순회 합니다.
70이 가까운 나이, 사실 은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듯한 나이인데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공연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은퇴는 언제 하실 거예요?’ 라는 질문에 이미자 씨는’ 팬들이 찾지 않으면 그때가 은퇴입니다’ 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아직 소녀 같은 모습이 보이더군요.
네, 50주년 공연하시려면 힘드실텐데요.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좋아하시는 노래 하시니까 행복하실 거란 생각이 드네요. 건강하시고요. 성공을 기원합니다. 북한 여러분도 그런 바람이실 거라 믿어요. 한류 타기 함께 하셨어요.
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몇 번 왔다 가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 곁에 봄은 오지요. 이렇듯 기다림 속에 얻는 기쁨은 값진 것일 겁니다. 지금 혹시 힘든 일 겪고 계신 분들 계세요?
혹시 알아요? 오늘이 지나면 내일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희망을 품는 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일 겁니다. 한류 타기. 오늘 여기까지이고요. 다음주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