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한국인] ‘생각하며 사는 삶’의 저자 신상균 씨의 미국 의사로서 사는 삶
2012.10.26
1958년 서울 의대를 졸업한 재미동포 의사인 신상균 씨가 미국 생활 중 생각날 적마다 하나씩 적은 글을 모아 ‘생각하며 사는 삶’ 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의 책 차례에는 영혼 소고, 한인 이민 2세와 부모, 마음의 안경 등 철학적 의미가 담긴 글이 있는가 하면 세포막의 슬기, 한국 역사 문화와 예절 등 한국인의 긍지를 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전염병과 인류 제목도 붙여 의사로서 각종 질병에 관한 기사와 예방 등도 적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생각하며 사는 삶’의 저자 신상균 씨 미국 의사로의 삶 이야기로 함께한다.
신상균 박사는 1958년에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해군 군의관으로 일했다. 그러다 1966년에 미국에 와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메릴랜드 대학 의과 대학생을 가르쳤다고 한다.
신상균 박사: 1958년에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대한민국 해군 군의관으로 8년간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1958년에서 1966년까지 근무하는 동안에 1959년에서 1960년 1년 사이 미국 뉴욕 롱 아일랜드에 있는 ST. ALBANS 해군 병원에 1년간 내과와 결핵을 공부하기 위해서 머문 적이 있어요. 이제 1966년에 도미해서 1969년까지 인턴, 레지던트를 다시 하고서 1969년 1972년까지 3년간 메릴랜드 대학 의과 대학에서 외래 강사로 의과대학 3학년 학생에게 임상 훈련을 시켰지요.
신상균 박사의 미국 생활을 들어보자! 신 박사가 1966년에 미국에 왔을 때는 미국이 전성기를 맞고 있을 때라고 설명해준다.
신상균 박사: 제가 1959년 졸업한 지 1년 후에 1년간 미국에 와 있었는데 그때 미국은 전성기였어요. 모든 게 웬만한 수준급 제품은 전부 미국 제품이고, 일본 것은 아주 질이 나쁜 그래서 일본에는 우사라는 동래가 있는데 그걸 영어로 표기하면 USA가 되는데 USA에 점을 안 찍는 MADE IN USA라고 해서 미국 제품이라는 그런 인상을 주면서 판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질이 나빴어요. 그런데 미국 사람은 그때 모든 게 MADE IN USA이고 모든 게 질이 좋고 그리고 미국의 전성이었으면서도 굉장히 자중심이 강하고 겸손하고 왜냐면 자신감이 있으니까? 그래 아주 친절하고 요즈음 한국에서 기성복을 살 때 안 맞으면 그 자리에서 고쳐 주듯이 미국 백화점에서도 기성복을 살 때 그 자리에서 고쳐주는 그런 봉사도 해 줬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죠. 그래 많은 것을 제가 보고 갔습니다.
신상균 박사가 말하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자!
신상균 박사: 그 당시 영어를 조금 한다고는 했지만, 읽고 쓰는 데에 치중했지, 대화 영어는 서툴렀는데 그래 차차 조금씩 나아지니까?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면 아침 컨퍼런스,회의가 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도 영어는 외국어이기 때문에 머리에서 생각을 구상해 질문하거나 코멘트 하려고 준비하다 막상 말을 하려고 했을 때는 주제가 서너 개 지나간 후라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발표를 못 했어요. 그 이후 차차 좋아져서 일 년 가까이 됐을 때, 돌아오기 직전에는 컨퍼런스에서도 의견을 발표할 수 있어서 흐뭇했는데 그래 언어 장벽이라는 게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이나 아시안 아메리칸에게 장애가 된다는 것을 절실히 알았습니다.
신상균 박사는 메릴랜드 대학 의과대생들의 임상 지도도 했다고 들려준다.
신상균 박사: 외래 강사를 할 때 그때는 두 번째 미국에 왔으니까? 조금 영어가 낳았는데 그래도 한국어처럼 할 수 없어, 각별한 노력을 해서 영어를 잘하려고 애를 쓰면서 메릴랜드 의과대학생, 3학년 막 기초를 배우고 임상을 하기 시작하는 학생들을 지도했는데 저는 소아과 CHIEF 레지던트였는데 그때 학생들을 정식으로 가르쳤는데 당시 강의 준비한 내용이 4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열심히 연구했어요. 그래서 영어는 조금 서툴렀는지 몰라도 그 내용이 훌륭하다고 많은 칭찬을 받고 그 뒤에 레지던트 마치고 개업을 시작할 때 그때 강의를 받은 학생들이 나를 따르고 그때 강의가 사실은 의과대학에서 받은 강의보다도 내용이 더 좋았다고 했는데 물론 외교적인 언사도 있겠지마는 그런 말을 들어서 아주 보람을 느낀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대학에 남아서 교수까지도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환자하고 직접 임상을 하는 임상의가 매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개업을 했지요.
신상균 박사에게 미국에서 몇 년간이나 개업의를 했는지 물어봤다.
신상균 박사: 31년간, 1972년에서 2003년 말까지 했는데 주로 볼티모어 카운티 그리고 하포드 카운티에 있는 폴스톤에서 개업의로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말하자면 24시간 7일간 휴가를 잠깐 가는 것 외에는 전화를 받아 진료를 해주는 24시간 근무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여러 가지 보람을 많이 느꼈고요. 처음에는 개업할 때 동양 사람이고 영어도 서툰데 저한테 과연 미국 환자들이 올까! 했었는데 우리는 미국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의사들이 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구전으로 통해서 미국 환자들이 올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좋은 나라구나! 이렇게 환자가 찾아준다는 데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고 미국에서는 그래도 기회의 나라로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보람을 느끼고 즐기기도 했어요.
신상균 박사의 책 ‘생각하며 사는 삶’의 줄거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신상균 박사: 여러 가지 종교에서 영혼은 어떻다는 것을 읽어 많이 배웠고 그래 책을 써서 서로 나누어 보자 하는 생각으로 쓴 겁니다. 그리고 저는 또 자연과학에 대해서 흥미를 가졌기 때문에 빅뱅이라든지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다든지 이런 거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목을 통해서 우주가 어떻게 생겨 났으며, 우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 우리 지구에 대해서는 물이라든지 지각변동이라든지 공기는 어떤 식으로 순화하는지도 적었고, 그리고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이 깊어서 몇 년간 걸려서 책도 읽고 해서 줄기세포에 대해서도 정리했고, 그리고 돈에 대해서도 돈은 어떻게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이며 역사는 어떤가! 하는 것도 기술한 게 있고요. 그리고 세포막은 아주 슬기로 와서 필요한 것은 밖에서 받아들이고 노폐물은 밖으로 내 보내면서 세포 안에 있는 생명체를 보호하는 그러니까 금성철벽이라서 아무것도 통과 안 되는 게 아니고 충분히 보호는 할 만큼 하되 필요한 것은 받아 들이고 노 패물은 밖으로 내 보내는 그런 슬기를 가졌으니까 그런 것도 적고 책 후면에 는 주로 영어로 적었는데 은퇴하기 전에도 봉사활동을 했지만 은퇴하고 난 뒤는 본격적으로 봉사를 해봐야겠다. 그래 봉사활동을 한 것도 조금 조금씩 적어 놨습니다.
신상균 박사에게 의사로서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도 했다.
신상균 박사: 최근까지도 서양의학이라는 게 병이 나면은 그걸 고쳐준다. 그러니까 감기의 경우는 걸려 봤자 저절로 낫는 수밖에 없으니까? 이다음에 폐렴에 걸려오면은 항생제를 처방해 낫게 해주겠다. 건강을 위해 자기가 관리한다든지 예방을 하든지 하는 것은 동양의학에 비해서 뒤떨어졌는데 요즘은 장수 시대고 영양부족으로 죽는 사람은 아프리카 몇 개 나라를 빼놓고는 없고 대부분이 영양 과다로 비만증으로 오는 병들이 많으니까? 자기가 관리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누구에게 물어봐도 운동하고 식이요법하고 체중 조절하라! 그 세 가지를 말하지 않는 전문가는 없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정형외과에 가더라도 심장 전문의에게 가더라도 그 기관을 쓰든지 잃든지 하라! 영어로 말하면 USE IT OR LOSE IT 쓸모 있게 만들든지 버리든지 잃어버리든지 하라! 그러니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라! 의사가 병만 고쳐 줄지 않았지 건강관리를 해 주는 것은 신경을 안 썼는데 요즈음은 건강예방,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질환의 예방에 치중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그런 경향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도 없고 절대로 좋으니까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 이런 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음식이 굉장한 건강식인데 다만 너무 짜게 먹는 게 문제로 소금이 필요량의 몇 배 어떤 경우는 몇 십 배가 되는 수가 있으니까? 될 수 있는 한 싱겁게 먹어서 고혈압도 줄이고, 싱겁게만 먹으면 한국의 전통음식 특히 채식을 위주로 하는 한국 음식 자체가 옛날에 못살 때 먹던 그런 음식들이 건강식으로 되고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노예들이 주인들보다도 더 건강했다고 해요. 왜냐면 주인들은 아주 알짜만 먹고 살쪄서 만성질환으로 죽지만, 노예들은 남은 찌꺼기 국물을 마시고 그 속에 있는 비타민이나 여러 가지 영양소를 더 많이 섭취한다는 일화가 있듯이 옛날에 못살 때 먹던 농부들이 먹는 음식들이 건강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충 틀림이 없을 거예요.
남북통일 되면 북한에 가서 진료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신상균 박사: 저는 뭐 나이가 좀 들었습니다만, 기력이 지탱하는 대로 저도 통일된다면 낙후된 북한 지역에 가서 치료를 해 주고 싶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북한의 사정이 여러 가지로 남한보다는 너무 낙후되었기 때문에 옛날의 전염병도 많을 거고, 영양실조도 많은 것 같은데 그리고 전염병이 많기 때문에 항생제를 많이 가지고 가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옛날에 우리의 60년대 70년대로 생각하고 진료를 하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생각하며 사는 삶’의 저자 신상균 씨 미국 의사로의 삶 이야기로 함께했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