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한국인] 미주 한인재단 정세권 전국 총회장 ① '워싱턴 DC의 억척스런 봉사자'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0.02.26
jung_sekwon-305.jpg 워싱턴 DC 한인들과 함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정세권 미주한인재단 전국 총회장.
RFA PHOTO/이현기
미주 한인들은 올해 이민 107주년을 맞는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 이민선구자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노동자로 첫발을 디딘 이후, 갖은 고난과 역경을 피와 땀과 눈물로 극복하고 이제는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서 새로운 발돋움을 하고 있다. 미국의 한인 이민사 속에 가장 큰 기쁨은 미국 연방의회가 2005년 12월 한인 이민선이 하와이에 도착한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 공포해 준 일일 것이다.

이민 역사 1세기를 맞으며 미주 한인의 날이 제정되기까지는 미국 사회에서 한인의 굳은 의지와 미래를 바라보는 개척정신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바로 이런 미국 속의 한인의 위상이 성숙하기까지는 미 전역에서 숨은 한인들의 봉사자가 큰 원동력이었음을 확인해본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워싱턴 일원에서 지난 27년여 동안 한인들과 피와 땀이 있는 현장에서 발로 뛰며 봉사해온 한인 ‘정세권의 워싱턴 삶의 현장 1부’를 함께한다.

미국 워싱턴 DC 일원 한인사회에서 정세권 씨는 일명 발로 뛰는 ‘억척스런 봉사자’로 불리며 현재는 2세들의 정치력 신장에 힘쓰는 미주 한인재단 전국 총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런 정 씨는 어린 시절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까? 그는 경북 포항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오지만, 아버지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돌아가시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정세권: 5남매인데 저 위에 누님이 계시고 남자로서 장남이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모든 살림살이를 책임지곤 하시니까. 가정이 굉장히 어려웠지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 다닐 때도 어머님이 조그마한 잡화상을 경영하셨는데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서 학교 갔다 오면서 도와 드리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정세권 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하려는 굳은 의지로 서울로 올라와 낮엔 직장인으로 밤에 대학생으로 주경야독하며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세권: 아는 사람을 통해서 숙식만 받는데도 알아서 고아들이 지내는 육아원에서도 조금 지내다가, 학비조달을 위해서 미 8군 계통에 취업을 하게 되고 야간대학을 다녔어요. 그 당시는 정치대학이라고 했는데요. 그 대학이 지금은 건국대학교로 명칭이 바꿨는데 그때 낙원동에 학교가 있어서 제가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 공부하고 해서 다른 사람은 4년에 마쳤는데 저는 6년에 마쳤어요.

정 씨는 우연한 일치였을까? 그가 미국에 이민 올 계획이 없었던 대학시절, 미 8군 계통의 직장에서 영어를 배우게 되고 미국에 온 후 한인들을 돕는 귀한 사역을 맡게 되는 계기가 된다.

정세권: 미8군에서 후생 계통인데요. 사병들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일했어요. 그래서 미국사람과 많이 접촉해서 나중에는 지배인으로 일하고.


1970년대 정 씨는 대학을 졸업하자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서인지 처음 직업은 검정고시 학원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운영했다고 한다.

정세권: 정규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그런 학생들을 위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검정고시 학원을 만들어서 친구 몇이 공동 투자해서 학원을 했었어요.

정 씨는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됐을까? 그는 미국 직장에 있었던 것을 계기로 기회의 나라 미국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정세권: 8군 계통의 일 하면서 미국 사람들과 접촉을 많이 하다 보니까 미국에는 노력하면 하는 만큼 얻어지는 것으로 자유의 나라고 기회에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 한번 가서 저나, 우리 아이들도 노력해서 사회에 진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가 용기를 내서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그는 드디어 1978년에 미국 땅을 밟게 되고 이어 미국에 살 수 있는 영주권을 받아 그 후 일할 직장도 갖게 된다. 정 씨는 그때부터 서툰 영어로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세권: 제일 먼저 가졌던 직장은 사업체를 중계하는 그런 회사가 있었어요. 거기서 한 1년 반 2년 지나고 있다 보니까 한국인들을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 사업체 하는 분들이 이민 와서 영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정 씨는 미국에 와서 두 번째의 직장을 갖게 된다. 정 씨의 회고이다.

정세권: 코카콜라 회사에서 매니저를 뽑는 연락을 받았어요. 한인으로서 영어와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특채하겠다 해서 인터뷰하다 보니까 거기서 금방 그 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이 떨어져서 코카콜라 회사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때가 1983년도에요.

정 씨는 코카콜라에서 아시안 마켓을 담당하는 매니저로 일을 시작하면서 한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하며 한인사회에 깊숙이 간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한인들의 통역관으로 한몫을 하게 된다. 1983년 한인들과 함께한 그의 이야기이다.

정세권: 아시안 마켓담당이지만 주로 한국분이 많았어요. 그때 그로서리 스토어라는지 캐리아웃을 대상으로 일을 하는데 그때 음료수를 취급하는 업소들이기 때문에 회사의 좋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것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한국사람 매니저가 필요했는데, 제가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했지요.


미국에 1970대 말부터 1980대 초에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들자 언어소통이 쉬운 직종의 사업을 하게 된다고 정 씨는 설명해 준다.

정세권: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경영하던 식품점을 제일 많이 인수해 운영했어요. 왜냐하면, 그 사업은 영어를 잘해야 하는 사업이 아니어서 많이 하셨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로서리, 간이식당이라든지 단순 노동이 필요한 그런 업소를 많이 하게 되는데 계속해서 이민자가 오면서 이런 업소도 늘어나게 됐지요.

정 씨는 어떤 계기로 한인사회에서 봉사를 시작했을까? 그의 이야기다.

정세권: 주말 시간과 저녁 시간에 한인회 활동을 하다 보니까 한인사회에 깊숙하게 지역사회봉사활동에 몸을 담게 됐습니다.

정 씨는 지난 1980년도 이민 열풍이 불면서 워싱턴 일원의 한인사회가 본격적인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발돋움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정세권: 처음 이민 와서 정말 열심히 사는데 모든 정열을 받쳤지만 이제 자녀가 크다 보니까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고 생활수준도 나아지고 이렇게 해서 모든 분야의 수준이 이민사회에서 여유가 생기다 보니까 주류사회에도 참여하게 되고 오늘의 한인사회를 만드는 그런 주축이 됐습니다.

1980년 하반기부터 한인들이 제법 큰 규모의 송년 잔치를 갖는다. 이렇듯 미국사회에 한인들의 단합된 힘을 보이기 시작하자 미국의 정치인들이 송년 잔치에 초청되기를 기대했다고 전해준다. 정 씨의 당시의 이야기다.

정세권: 미국 정치인들도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기회를 못 갖기 때문에 한인 송년 잔치에 초청되는 것을 굉장히 기대하고 자기 이름만 이라도 소개가 됐으면 해 가지고 오히려 그 당시는 그분들이 우리를 찾아올 정도로 한인의 힘을 보여줄 기회가 되었고, 그동안에 자주 못 만나던 고향 친구라든지 친지들도 한인 송년 잔치에 와 만나고 흥겹게 놀고 한국의 유명 가수들도 초청해서 향수도 달래고, 정말 흥겨운 한마당의 잔치로.

정세권 씨는 지난 1992년에 워싱턴지구한인회장을 시작으로 미주 한인이민100주년사업회 수석부회장, 한미국가조찬기도회회장, 미주 한인재단 전국 총회장 등 한인 동포들과 함께하고 있다. 정 씨가 세계 한인 2세들에게 주는 충언이다.

정세권: 우리 2세들에게 ‘1세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가운데서 오늘에 왔는가?’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고 우리 2세들이 우리 선배들 못지않게 사회에 공언할 수 있는 그런 2세들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워싱턴 일원에서 지난 27년여 동안 한인들의 피와 땀이 어린 고난의 삶의 현장에서 발로 뛰며 봉사해온 한인 ‘정세권의 워싱턴 삶의 현장 1부’를 함께했다. 다음 시간에는 워싱턴 한인들의 역사를 기록한 워싱턴한인사와 영문판 책 발간 등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정세권의 워싱턴 삶의 현장 2부가 방송된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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