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송환활동 하는 NGO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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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송환활동 하는 NGO 도희윤 대표의 사회로 진행 중인 토론 모습.
/도희윤 대표 제공

MC: 6.25 전쟁 71주년 RFA 기획특집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한반도에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이 있은 지 71 년이 됩니다. 같은 민족이 서로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고 치유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요. RFA에서는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 시간에는 한국군으로 참전했다 북한의 포로 된 이들의 송환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전화 회견에는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 진행에는 이진서 기자입니다.

기자: 1950년 한국 전쟁으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의 송환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본인 소개와 단체 활동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도희윤 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입니다. 이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북한에 피랍됐다거나 또는 전쟁으로 인해 억류된 국군포로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권 단체입니다. 2000년대에 저희가 많은 국군포로와 가족들을 직접 한국으로 모셔오기도 했고요. 또 이분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해서 여러모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인권활동들을 계속 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자: 지금 젊은 세대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가 있다는 자체를 잘 모를 것 같은데요.

도희윤 대표: 그렇습니다. 국군포로 문제는 이분들이 1950년도에서 1953 전쟁 시기 동안에 가장 많이 억류됐던 것이 1951-1953년 사이죠. 이때 대부분 20대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억류가 되면서 북한에서 가족을 가지게 됐습니다. 북한에 이들을 억류를 했을 때 대부분 함경북도 지역의 탄광에 다 억류를 했고 강제노역에 동원을 했는데 일단 이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만 지속적인 강제노역도 가능해 지고 또 북한 사회에 선전도구로도 활용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 차원에서 국군포로 당사자와 그리고 안타깝게도 북한에 남겨놓은 가족 이 두 부류로 인권문제로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기자: 탈북해서 귀환한 국군포로들의 증언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요. 현재 북한의 입장은 어떤 겁니까?

도희윤 대표: 북한은 지금까지도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거의 8만명이 넘는 숫자 중 1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송환하면서 나머지 포로들은 자신들이 원해 인민군에 소속이 돼서 해방전사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남은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줄기차게 갖는 것이고요. 그렇지만 북한에 억류돼서 생활하다가 다시 탈출해서 한국의 품에 안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이 전부 엉터리 선전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특히 1997년에 중국에 나왔다가 2000년도에 한국에 귀환하신 허재석 국군포로의 내용을 들어보면 이분이 직접 수기를 썼습니다. “ 내 이름은 똥간나 새끼였다”. 이 수기를 읽어보면 자신들이 억류됐던 과정, 탄광에서 억압받았던 인권문제 또 북한에 남아있던 자식들과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알려졌던 북한의 선전들은 다 거짓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고요.

또 한가지 이것이 거의 70년이 넘었던 일들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잊혀져 가는 것이 아니냐, 이산가족의 개념으로 그 존재를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런 시각이 우리 내부에도 있는데요. 실제로 이산가족의 문제는 전쟁으로 인해 불가피 하게 가족과 헤어지거나 고향을 등진 사람이라고 표현을 한다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범죄에 의해서 저질러진 행위거든요. 이 문제는 공소시효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범죄 행위기 때문에 반드시 원상복귀가 되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전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기자: 국군포로 이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이는데요.

도희윤 대표: 바로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고요. 우선적으로 정부가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협상을 해야 되죠. 만약 상대방의 특수 상황 때문에 협상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비공식적인 방법으로라도 대한민국 국민의 가족의 품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하는 행동을 하고 정부가 나서야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대부분 노력을 하지 않았고요. 다만 저희가 정권 차원에서는 보수와 진보 좌,우 이렇게 나눌 수 있겠는데 기본적으로 우파 정권일 당시에는 일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94년 조창호 소위가 극적으로 한국의 품으로 귀환하면서 국군포로의 존재 그리고 북한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어떤 인권유린을 받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났고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죠. 그런데 그 이후 있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또 현재 문재인 정권에서는 전혀 이런 부분들은 북한이 싫어하고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일절 거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현재 남한에 귀환한 국군포로의 현황은 어떻게 됩니까?

도희윤 대표: 지금 현재 국군포로 당사자가 한국에 귀환한 것은 100여명이 못 되는데 가족들을 합치면 200명 정도가 넘어가는 상황입니다. 국군포로 분들이 맨 처음 조창호 소위를 필두로 해서 양순용 씨가 넘어오게 되고요. 그러면서 이런 분들이 자신들이 함께 탄광에서 생활했던 국군포로 명단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명단을 가지고 민간에서 움직여서 본격적으로 모시고 오는 일이 진행됐는데 사실 국군포로 귀환에 관한 법들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1998년 처음으로 국군포로 귀환에 관한 예우법이 만들어지고 그 이후 손질을 봐서 국군포로 당사자와 그 가족이 귀환할 때는 국군으로 예우금이 책정이 되면서 사실 본격적인 귀환 활동이 시작이 되는 것이죠.

국군포로 당사자가 귀환 했을 때는 거의 연금 기준으로 5억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그런 것이 북한 내부에 소문이 퍼지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브로커들이 나타나게 되고 이런 이유로 해서 거의 100명에 가까운 국군포로 분들이 한국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이고요. 지금은 대부분 나이가 80살을 다 넘긴 나이입니다. 자연적으로 생존해 계시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래서 이런 이유로 더 이상 국군포로 분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셔오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남아있는 가족들이라도 모셔와야 한다는 차원에서 인권단체들의 활동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기자: 오랜 시간이 흘러서 전쟁의 기억도 희미해 지지만 후세를 위해서도 역사적 사실은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에 대한 활동도 있습니까?

도희윤 대표: 당연히 옳은 말씀이고요. 바로 그런 활동들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어쨌든 이 부분들에 대한 북한의 범죄적 사실들을 적시하고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 우리 NGO 단체 중에는 귀환하신 국군포로들과 함께 북한을 상대로 소송도 진행을 했고 승소를 해서 실질적으로 그런 기록들이 남아있게 됐습니다. 또 환경적 차원에서 많은 변화가 만들어지게 된다면 북한의 범죄적 사실들을 위한 여러 가지 기념비적 사업들도 추진을 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아있는 가족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국민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귀환하신 국군포로 가족들의 역량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분들이 정착에도 바쁜 상황인데 저희와 같은 NGO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좋은 여건이 만들어지면 가족들에 힘을 보태서 부모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부분들을 확실하게 역사적 사실과 함께 남길 수 있도록 좀더 지원을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 국군포로 송환에 관한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를 하면서 마무리를 해주시죠.

도희윤 대표: 아마 이 기자님도 기억나실 텐데 저희와 같이 주한미군 사령부에 갔을 때가 잊혀지지 않는데요. 저희가 미군 장병 인식표를 전달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 당국이 분명한 입장을 가진 것은 NGO단체나 민간인들이 이런 인식표나 뼈 조각을 가져다 주는 것은 너무 감사하다. 다만 이것에 대해 보상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는 북한 당국과 직접 협상을 통해서 미군의 유해를 단 한 명이라도 한 조각이라도 찾아오기 위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크게 머리를 망치로 맞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 정부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은 지구 끝까지 가서 찾아오겠다. 그런 노력은 절대 멈추지 않겠다. 이 말은 지금도 저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모쪼록 대한민국 정부적 차원에서 북한의 범죄 행위가 밝혀지고 그 범죄로 인해 희생당한 국군포로 가족들이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노력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또 하나는 제가 장 선생이라는 국군포로 장교 한 분을 모셔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분이 걸을 수가 없어서 업고 두만강을 건너 한국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때 이분이 한국에 오셔서 자신이 살았던 남한의 고향에서는 갈치나 생선들은 매끼마다 1950년 그 어려운 시기에도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북한에서는 생선 한 조각 보기도 힘들어서 자기가 지금 다시 한국에 와서 갈치를 보는데 북한에 남겨둔 가족 생각이 나서 먹지를 못하시고 눈물을 흘리던 그 부분이 기억 납니다. 그것이 이 활동을 하면서 가장 제 가슴에 남아있는 일들입니다.

6.25 전쟁 71주년 RFA 기획특집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군으로 참전했다 북한에 포로 된 이들의 송환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전화 회견에는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 진행에는 이진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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