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아시다시피 한국인에게 있어서 먹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마도 오랜 굶주림의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요, 농민의 경우라 해도, 오늘날과 같은 과학영농이 되지 못했고, 가뭄과 홍수 등에 대한 대처가 없었기 때문에 흉년이 들기 마련이었죠. 잘 되어봤자 겨우 입에 풀칠하기가 고작이었던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20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길거리에서 만나는 이웃사람들의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 "밥 먹었나" 하는 것이었쟎습니까?
그러던 것이, 적어도 남한에서는 이제는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즐기기’ 위해 먹거리를 찾고 있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국민소득이 2만 달러 가깝게 높아지면서 가정 밖에서 음식을 사서 먹는 소위 ‘외식’이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죠. 전문가들에 의하면, 소득 수준 7천 달러에서 외식활동은 급상승한다고 합니다. 국민소득의 증가는 그만큼의 지출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남한주민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 가운데 30대 남한주민들에서 가족 단위의 외식 빈도가 아주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와 관련해, 30대 후반인 이정화씨는 자신은 직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바빠서, 외식하는 일은 드물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말합니다. 경기도 구리시에 거주하는 이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과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을 두고 있습니다.
이정화: 주말에 좀 자주하는 편이죠. 주로 가족들하고 많이 나가요. 특히 토요일 저녁 같은 경우에는 주로 나가서 가족들하고 먹던가, 아니면 친구들하고 먹던가 한 달에 한 두 서너 번 정도 먹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 돈이 많이 들죠. 저희가족은 네 명인데요, 한번 나가서 먹으면 5-6만원은 드는 것 같아요. 고기종류를 먹으면 한 10만 원 정도.
5만원이면 미화로 54달러 정도구요, 10만원은 미화로 대략 108달러정도입니다. 가장 최근에 가 본 외식장소로는 한식당이 압도적으로 많구요, 서양식, 중국식, 일식도 인기인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습니다.
웨이트리스: 뭐 드시겠어요? 손님: 저는 돌솥비빔밥 주세요. 고추장 많이 넣어서요. 저는 김치찌개, 너무 맵지 않게요. 저는 고등어구이를 살짝 구워주세요...
요즘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져서 녹차, 생식, 유기농 등 자연식을 추구하는 편입니다. 이 씨의 말을 들어보시죠.
이정화: 집에서 잘 안 먹는 것들 바깥에서 주로 많이 먹으려고 하구요, 요새는 특히 ‘웰빙’음식 같은 것들을 많이 먹으려고 해요. 순두부 종류가 특히 그렇죠. 두부집 종류가 참 많거든요. 청국장집도 가요. 또 샤부샤부집도 가요. 야채가 많이 들어가잖아요. 아니면 스시부페집에도 가죠. 어린이들도 같이 많이 먹을 수 있거든요. 또는 유천 칡냉면처럼 시원한 것들, 그러니까 집에서 못 만들어 먹는 것들을 먹으러 많이 나가요.
여기서 '웰빙'이란 영어 말 그대로 건강한 인생을 살자는 의미입니다. '샤부샤부'란 얇게 썬 소고기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양념을 찍어먹는 전통적인 일본 요리를 말하구요. 또 스시뷔페란 '초밥'을 뜻하는 '스시'와 '음식을 원하는 만큼 양껏 집어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음식을 차린 것'을 뜻하는 '뷔페'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물론 북한주민들도 외식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식당이 너무 드물고, 있다 해도 예비표를 얻어야 갈 수 있기 때문에 가족끼리 오붓하게 저녁 한 끼 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현식 전 평양사범대 교수는 자신은 동료교수의 딸이 옥류관에서 일하고 있어 가끔씩 가서 냉면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회상합니다. 김 교수는 지난 1992년에 탈북했습니다.
김현식: 배급 600그람 중에서 200그람을 떼서 그 양권을 가지고 가서 사먹는데, 먹는데도 마음대로 사먹지 못하죠. ‘예비표’라는 것을 미리 구해 놔야 돼죠. 옥류관이 이렇게 있으면, 이 길 건너에 콘크리트로 만든 한 집이 있습니다. 거기에 문이 딱 하나 있죠. 여기다 표를 싹 들이밉니다. 그럼 거기서 본 표를 내줘요. 그럼 여기에 상이군인 줄, 군인 줄, 일반 줄, 이렇게 세 줄이 서게 됩니다. 표를 가지면, 이 길을 뛰어가서, 이 줄에 가서 기다려요. 죽 줄을 서게 되죠. 그럼 옥류관에서 한 사람 나왔다 그러면 경찰이 한 사람을 들여보냅니다. 차례차례로요. 같이 갔던 사람끼리도 같이 먹을 수 없게 되죠. 나온 사람의 자리에 가서 먹는 거죠.
평양 출신으로 지난 2002년에 남한에 입국한 정영씨도 암표를 사서 그 유명한 평양의 옥류관에서 먹었던 냉면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정영: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 그릇에 한 5원 60전했어요. 지금은 엄청 올랐죠. 그때는 노동자 월급이 75원 내지 100원 정도 할 때거든요. 암표는 한 그릇에 한 30원씩 했었어요. 비싸죠. 그래서 평양에 한번 나갔던 지방 주민들은 옥류관 가서 국수 못 먹고 돌아오면 평양구경을 했다고 말을 못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여자가 외식을 하면 집안 망한다'는 선입견이 만만치 않다고들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음식문화의 틀이 세계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외식은 더 이상 그저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단순히 먹는 활동이 아닌 거죠. 대화를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여가의 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워싱턴-장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