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새해의 첫 주말을 어떻게들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이곳 워싱턴은 지난 주말에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추워서 이파리가 하나도 안남은 앙상한 가지 사이로, 햇빛이 내리 쬐어주고, 살랑 살랑 부는 바람은 겨울바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따뜻해 산책하기에는 정말 그만이었습니다.
날씨도 날씨지만, 사람들은 여유만 있다면 고된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잖아요. 주말을 이용해서, 혹은 아껴둔 휴가를 모아서 자신만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이죠. 그럴 경우 주로 여행을 떠나게 되죠. 그런데 ‘산책’은 어떨까요? 왠지 여행보다 가볍고 부담 없어 보이지 않나요?
아닌 게 아니라, 남한 주민들의 경우, 가장 많이 하는 여가활동 가운데 하나가 산책입니다. 얼마 전에 남한의 문화관광부가 10살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조사를 했는데요,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경험한 여가활동을 순서대로 꼽게 한 결과, 상위 10개 항목 중에 ‘산책’이 유일한 야외활동으로 포함됐었습니다. 1위는 텔레비전 시청과 라디오 청취로 나타났습니다.
경기도 구리시에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이윤선씨는 저녁 먹고 느긋하게 산책하는 시간은 긴장으로 치닫기 십상인 일상생활로부터 여유와 거리를 찾는 시간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말합니다. 이씨는 요즘은 겨울이라 그렇지만, 시원한 여름 밤이면, 거의 매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과 공무원인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간답니다.
이윤선: 근처에 조그마한 공원이 있는데요, 밥 먹고 나서 저녁 때 가족끼리 함께 시간도 가지고, 한 40분에서 50분 정도 공원을 돌거든요. 그러면 아이도 좋아하고 또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고, 그래서 항상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공원에 나가서 하루에 한 40분, 50분씩 네 바퀴 정도씩 꼭 돌고 있어요.
서울 근교에 사는 60대 초반의 김소정씨도 같은 생각입니다. 5년 전에 복잡한 서울시내 아파트를 벗어나 교외로 이사 온 김 씨는 주로 혼자서 산책을 즐기는 편입니다. 산책하다가 심신이 느긋해지면, 늘 정신없이 바쁜 자신에게 가질 법한 남편의 마음자리, 자신 때문에 서운해 했을 사람들의 이런 저런 마음을 살피게 된다면서, 산책은 일상속의 ‘화려한 여가’라고까지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합니다.
김소정: 산책을 자주 나가죠. 저희 아파트 옆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변 산책을 좀 많이 나가죠. 운동 삼아서요. 한 30분 정도 오고가고 하면서 평소에 못했던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산책이라는 것은 후회스러운 일, 또 사랑했던 일, 또 여러 가지 내가 지나온 날들에 대한 잊어버린 기억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내는 시간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산책할 때만큼은 내 공간 안에서, 내 생각을 한번 짚어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산책을 통해서 웬만큼 생각나게 해주어서, 저는 산책이 아주 좋습니다.
산책은 이처럼 여러 장점이 있지만, 가장 좋은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전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외국회사에서 일하다가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전업주부로 변신한 이윤선씨는 그래서 자신 같은 중산층의 경우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여가활동은 아무래도 산책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반문합니다.
이윤선: 예를 들어서 얼마 전에도 스키장이나 눈썰매장을 갔다 왔는데, 그럴 경우에는 사실 적어도 진짜 가족당, 저희 같은 경우 세 명의 가족이라고 해도, 30만-40만원은 깨지거든요. 그렇게 보면, 사실 레저생활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데, 산책같은 경우에는 많이 들어봤자 아이들 산책 끝나고 나서, 음료수 하나 사주는 게 아이들한테 큰 기쁨인데 많이 들어봤자 2천원이나 3천원이니까 경제적으로도 덜 들면서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운동에 비해서 아무래도 싸니까 좋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에요.
참고로, 남한 돈 30만원은 미화로 약 320달러구요, 2천원은 대략 2달러 정도 됩니다. 북한의 경우는 어떨까요?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서는 여가를 즐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북한도 사람들이 조직을 이루며 사는 사회이니만큼 그 나름의 여가생활이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지적입니다.
현재 남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평양출신 탈북자 한영진씨는 많은 여가생활 중 유달리 산책을 즐겨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씨는 지난 2002년에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한영진: 대동강 유보도 거닐기는 대체적으로 산책삼아 거니는데, 뭐 북한에는 공원이 특별히 없으니까요. 간단하게 추리닝을 착용하고 거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녀가 다니는 경우가 많죠. 옛적부터 물이 맑아 옥류, 청류로 불리는 대동강 강변을 따라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시며 걷노라면, 잠시나마 온갖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었다고 한씨는 회상합니다.
통일된 어느 휴일에 평양시민들은 한강으로, 서울시민들은 대동강으로 나들이를 가서 유유자적하게 강변을 거니는 산책을 즐기는 남북한 주민들의 여가생활을 그려봅니다.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겠죠?
워싱턴-장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