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본다]⑭ 한국과 수교 20년 “오랜 동반자 느낌”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0.01.14
2010.01.14
사진-연합뉴스 제공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올해로 수교 20주년을 맞는 몽골과 한국의 협력관계를 짚어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몽골은 한국과 인종적, 역사적, 문화적 유사성이 많음에도 이념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갈 수 없는 동토의 땅이었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양국이 공식적으로 국교를 맺은 것은 1990년 3월 26일. 몽골이 체제전환과 대외개방 직후 최초로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 역시 옛 공산권이었던 국가들 가운데 제일 먼저 국교를 맺은 나라가 바로 몽골입니다. 단순히 우연만은 아닌 듯 보입니다.
실제로 몽골과 한국의 수교 일주년을 기념해 1991년 서울을 방문한 몽골의 오치르바트 대통령은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솔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인 한국에 무한한 기대를 하고 있음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 역시 몽골이 지구상에서 인종, 문화, 언어가 가장 가깝고 외세의 위협과 침략에 시달린 역사도 비슷하다며 애정 어린 말을 쏟아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치르바트: (in Mongolian) Mongolia and South Korea share ...
노태우: 인종, 언어, 그리고 문화면에서 많은...
하지만 1998년까지만 해도 몽골은 한국인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에게 몽골에 대해서 물으면 기껏해야 몽고반점, 원나라의 침입, 칭기즈칸의 후예 정도의 얄팍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몽골은 한국에 친숙한 나라가 아니었고 접촉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 내 손꼽히는 몽골전문가인 순천향대학교의 김홍진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김홍진: 한국이 처음 1990년 수교했을 때는 몽골하고만 수교한 것이 아니라, 이어 러시아와 당시 개방된 CIS 국가들과 수교했습니다. 한국 북방정책의 초점은 사실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몽골이 약간 소외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몽골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가 활발한 교류협력이 시작된 것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찾으면서부터입니다. 김 대통령은 당시 몽골을 국빈 방문한 외국 인사로는 처음으로 몽골국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한국과 몽골이 양국 관계를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구축하는데 합의했음을 밝혀 국제적으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김대중: 나는 이런 한국과 몽골의 역사적, 정서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실질 협력관계를 보다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0년.
‘상호 보완 협력관계’였던 양국 관계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우호와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해 나가는 ‘선린우호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습니다. 양국 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두루 발전해왔지만, 특히 경제 분야는 가장 두드러집니다. 순천향대학교 금융경영학과에 몸담은 김홍진 교수의 말입니다.
김홍진: 초기에는 교역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겨우 100만 불, 200만 불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현재, 약 2억 7천만 달러 정도를 교역하면서, 한국이 몽골의 주요 수입/수출 대상국 순위에서 각각 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양국의 교역 증가율이 몽골의 수출/수입 증가율보다 훨씬 높아서 앞으로 훨씬 깊은 관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국인의 몽골 방문도 해마다 증가해, 2008년 말 현재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제3위의 방문객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도 2008년 말 기준으로 1,700여개가 단독 혹은 합자 투자법인 형태로 몽골투자청에 등록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올해로 4년째 건설, 레미콘, 창호회사를 운영하는 (주) 정원스카이의 신성복 대표는 몽골은 석탄, 동, 우라늄, 몰리브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세계 10대 자원 부국이자 경제개발을 통한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나라라면서 한국기업의 진출을 크게 환영합니다.
신성복: 한국인들이 조금씩 진출해서 사업 분야에서는 꽤 성숙된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달러가 강세여서 사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부터 몽골 경제가 호전돼서 지금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몽골통계청과 한국무역협회의 통계를 보면, 몽골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가 연도별로 1천만 달러를 넘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그 이후 매년 큰 폭의 직접 투자 증가가 이루어졌고, 2006년에는 2005년과 비교해 약 3배인 4천4백만 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에도 2007년에 비해 3배에 가까운 금액이 투자되면서 단일연도로는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올해로 20주년 맞은 몽골과 한국 관계.
20년이라는 세월을 인간의 삶에 비유하면 성인이 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사람도 스무 살 성인 되면 모든 것이 갖춰지는 시점인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켜 온 양국관계도 바야흐로 더욱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양국이 한류열풍을 포함한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를 더 확대하고, 경제 분야의 교역 증진을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고, 정치, 외교 분야에선 장기적으로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추가 격상해야 할 시점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오늘은 1990년 몽골과 한국의 수교 이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나라의 관계발전을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칭기즈칸의 후예가 한국에 유학해 성공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기로 하고,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장명화였습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몽골은 한국과 인종적, 역사적, 문화적 유사성이 많음에도 이념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갈 수 없는 동토의 땅이었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양국이 공식적으로 국교를 맺은 것은 1990년 3월 26일. 몽골이 체제전환과 대외개방 직후 최초로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 역시 옛 공산권이었던 국가들 가운데 제일 먼저 국교를 맺은 나라가 바로 몽골입니다. 단순히 우연만은 아닌 듯 보입니다.
실제로 몽골과 한국의 수교 일주년을 기념해 1991년 서울을 방문한 몽골의 오치르바트 대통령은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솔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인 한국에 무한한 기대를 하고 있음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 역시 몽골이 지구상에서 인종, 문화, 언어가 가장 가깝고 외세의 위협과 침략에 시달린 역사도 비슷하다며 애정 어린 말을 쏟아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치르바트: (in Mongolian) Mongolia and South Korea share ...
노태우: 인종, 언어, 그리고 문화면에서 많은...
하지만 1998년까지만 해도 몽골은 한국인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에게 몽골에 대해서 물으면 기껏해야 몽고반점, 원나라의 침입, 칭기즈칸의 후예 정도의 얄팍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몽골은 한국에 친숙한 나라가 아니었고 접촉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 내 손꼽히는 몽골전문가인 순천향대학교의 김홍진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김홍진: 한국이 처음 1990년 수교했을 때는 몽골하고만 수교한 것이 아니라, 이어 러시아와 당시 개방된 CIS 국가들과 수교했습니다. 한국 북방정책의 초점은 사실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몽골이 약간 소외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몽골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가 활발한 교류협력이 시작된 것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찾으면서부터입니다. 김 대통령은 당시 몽골을 국빈 방문한 외국 인사로는 처음으로 몽골국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한국과 몽골이 양국 관계를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구축하는데 합의했음을 밝혀 국제적으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김대중: 나는 이런 한국과 몽골의 역사적, 정서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실질 협력관계를 보다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0년.
‘상호 보완 협력관계’였던 양국 관계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우호와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해 나가는 ‘선린우호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습니다. 양국 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두루 발전해왔지만, 특히 경제 분야는 가장 두드러집니다. 순천향대학교 금융경영학과에 몸담은 김홍진 교수의 말입니다.
김홍진: 초기에는 교역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겨우 100만 불, 200만 불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현재, 약 2억 7천만 달러 정도를 교역하면서, 한국이 몽골의 주요 수입/수출 대상국 순위에서 각각 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양국의 교역 증가율이 몽골의 수출/수입 증가율보다 훨씬 높아서 앞으로 훨씬 깊은 관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국인의 몽골 방문도 해마다 증가해, 2008년 말 현재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제3위의 방문객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도 2008년 말 기준으로 1,700여개가 단독 혹은 합자 투자법인 형태로 몽골투자청에 등록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올해로 4년째 건설, 레미콘, 창호회사를 운영하는 (주) 정원스카이의 신성복 대표는 몽골은 석탄, 동, 우라늄, 몰리브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세계 10대 자원 부국이자 경제개발을 통한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나라라면서 한국기업의 진출을 크게 환영합니다.
신성복: 한국인들이 조금씩 진출해서 사업 분야에서는 꽤 성숙된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달러가 강세여서 사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부터 몽골 경제가 호전돼서 지금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몽골통계청과 한국무역협회의 통계를 보면, 몽골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가 연도별로 1천만 달러를 넘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그 이후 매년 큰 폭의 직접 투자 증가가 이루어졌고, 2006년에는 2005년과 비교해 약 3배인 4천4백만 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에도 2007년에 비해 3배에 가까운 금액이 투자되면서 단일연도로는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올해로 20주년 맞은 몽골과 한국 관계.
20년이라는 세월을 인간의 삶에 비유하면 성인이 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사람도 스무 살 성인 되면 모든 것이 갖춰지는 시점인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켜 온 양국관계도 바야흐로 더욱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양국이 한류열풍을 포함한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를 더 확대하고, 경제 분야의 교역 증진을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고, 정치, 외교 분야에선 장기적으로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추가 격상해야 할 시점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오늘은 1990년 몽골과 한국의 수교 이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나라의 관계발전을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칭기즈칸의 후예가 한국에 유학해 성공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기로 하고,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장명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