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본다]⑱ 북한 개혁의 모델로 떠올라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0.02.18
MUSIC: 몽골민요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제작 취지, 취재 과정에서 겪은 일화, 몽골의 성공 비결 등을 짚어봅니다.

장명화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앵커: 지난해 10월 초에 시작한 주간 기획프로그램 ‘몽골을 본다’가 조만간 막을 내립니다. 지금까지 17부가 방송됐는데요, 프로그램의 제작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간단히 정리해주시죠.

장명화: 네. 몽골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주변국들과의 관계 등 주제별로 다양한 내용을 취재해 소개함으로써, 미래 북한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모델로 떠오르는 몽골에 대한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자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같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목표로 현대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사회주의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몽골의 성공적인 정치 민주화와 시장경제 전환은 북한에 중국식, 베트남식 개혁 이외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몽골처럼 최대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정치적, 경제적 고립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인적자원 수준 역시 높습니다. 이 때문에 몽골이 겪은 민주적 체제전환과 경제 개혁의 가속화를 북한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봤습니다.

앵커: 몽골은 옛 공산권 국가 가운데 가장 순조롭게 체제 변화를 이뤄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몇 십 년간 사회주의 세상에서 살던 몽골인들이 갑작스러운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장명화: 네, 그렇습니다. 몽골은 지난 70년 동안 정치와 경제 부분에서 구소련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대부분의 소비재와 건설재 등을 구소련이 공급해주었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동맹국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989년 구소련이 시장 경제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결과, 몽골은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동구와 구소련의 지원이 몽골에서 사라졌거든요. 이에 따라 공업과 건설 사업은 예전보다 더 부진한 상태에 빠졌고,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극심한 생필품 부족 현상으로 인한 엄청난 물가 폭등과 국가 재정의 부족이었습니다. 이런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시장경제에 잘 적응한 사람도 있지만, 그 거센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6부 “갑작스런 ‘선택의 자유’로 눈물의 빵을 먹다”편에서 몽골 복지부의 오윤 르카그바스렌 국장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먹일 우유를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1990년과 1991년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시간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르카그바스렌 국장은 생전 처음 신문에 구직광고라는 것을 내 가까스로 생계를 꾸려갔고, 의사인 산그도르지 오돈구아 박사는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가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서 살아남은 경우입니다.

앵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몽골인들은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처에서 포기하지 않고 힘차게 달리고 있는데요, 이렇게 험로를 헤치고 나가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장명화: 첫째는 몽골인들의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는 유목민 정신입니다. 8부에 방송된 "세계은행 몽골 대표 단독회견"편에서 아르샤드 사이예드 대표는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는 어려움에 빠지자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몽골에서는 그런 조짐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몽골인들은 일찌감치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엄중한 사실을 깨달은 셈입니다. 두 번째는 몽골 지도부의 수용적 자세입니다. 1990년에 스탈린식 정치제도와 집권 인민혁명당의 독재 체제를 비난하는 시위가 거세졌을 때, 몽골 지도부는 오랫동안 권력을 누렸던 공산주의 국가답지 않게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헌법을 수정해 1921년 이후 지속된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민주 다당제 정당 정치의 기초를 마련해, 민주화를 향한 용기있는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몽골은 이렇게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개혁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제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제네바,' 즉 평화와 번영의 지역으로 몽골 비전의 윤곽을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앵커: ‘몽골을 본다’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삼 개월 간 방송됐습니다. 이 기간에 취재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장명화: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우선 자유아시아방송의 본부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만큼, 워싱턴에 주재한 몽골대사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대사관 관계자를 만나려고 정말이지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는데요, 언론매체와의 접촉을 상당히 꺼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화해도 안 받고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도 없고요. 참 난감했는데요. 많은 몽골 전문가들이 몽골의 사회주의가 잔재한 모습이라고 말해주더군요. 다행히 울란바토르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인 미국몽골학센터(ACMS)측과 연결이 돼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자유아시아방송의 경영진이 10월 울란바토르를 방문해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과 오윤 산자아수렌 전 몽골외무장관과 단독 면담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 두 지도자는 몽골의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사람들이어서 인민혁명당 출신이 많은 워싱턴의 몽골 외교관들보다 보다 더욱 열린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북한 난민과 관련한 물음에는 에둘러 대답하면서 신중하게 행동해, 몽골이 오랫동안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는 ‘형제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앵커: 기획 프로그램에 대한 청취자나 웹사이트 방문자들의 호응은 많았습니까?

장명화: 네. 예를 들면 몽골교민신문에서는 엘베그도르지 대통령과의 단독회견 기사를 아예 통째로 실었고, 그달에 가장 많이 읽힌 기사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1990년에 시작된 몽골 민주화 운동을 통해 75년 역사의 공산당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의 향후 과제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풀이됩니다. 또 울란바토르에 거주하는 어느 몽골인은 9부 “중국, 러시아 견제하며 미국에 접근”편과 10부 “미국의 든든한 동반자 급부상”편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반면, 다수의 몽골 전문가는 그동안 미국의 주요 언론이 몽골과 관련한 사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출현은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해줘서 제작자에게 더없이 소중한 격려가 됐습니다.

앵커: 네. 앞으로 북한이 '형제국'인 몽골의 사례를 본받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지 주목됩니다. 장명화 기자, 수고했습니다.

장명화: 네. 그동안 관심을 가져주신 청취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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