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본다]② 독립, 공산화, 그리고 민주화로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0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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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1921년 독립과 동시에 출범한 몽골의 공산체제가 지금의 민주체제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살펴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다큐멘터리 음향: 구소련 공산당 군사 행진)

1917년 11월 7일 오전 10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군사혁명위원회는 천여 명의 적위대를 이끌고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급습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임시정부를 타도하는 데 성공하고,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음을 선언합니다. 이른바 '볼셰비키 혁명'이라고 부르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었습니다.

이 볼셰비키 혁명 이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화된 나라는 어디일까? 폴란드나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 아니면 중국? 북한? 모두 아닙니다. 바로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호령했던 징기츠칸의 나라, 몽골입니다.

(팝송 '징기츠칸')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몽골 독립의 아버지인 수흐바타르 장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수흐바타르 장군은 1921년 구소련의 적군과 연합군을 결성해 중국과 러시아의 백군에 점령돼 있던 울란바토르를 탈환하고 인민혁명 정부의 수립을 선언했습니다.

구소련 적군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독립하는 데 성공하게 된 몽골이 공산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미국의 인디애나대학교의 몽골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애트우드 교수는 말합니다.

크리스토퍼 애트우드: Unlike many of the East European countries, Mongolia had not had....(더빙)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몽골은 근세사에서 공산국가가 아닌 독립국으로 지낸 경험이 없습니다. 근세사 기간에 계속해서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독립의 기회를 엿보던 몽골은 1911년 청나라가 망하고 중국이 세워지자 그 틈을 노려 독립선언을 했는데요, 이 독립선언은 그 생명이 길지 못했습니다. 몽골이 중국 일부라고 주장하는 중국이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군대를 파견해 몽골을 다시 그 지배하에 두었기 때문이죠. 그 결과, 1919년 몽골은 다시 중국에 통합되고 말았거든요.

오랫동안 염원해온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고 ‘몽골인민공화국’이라는 독립국으로 우뚝 선 몽골. 그러나 이제 몽골은 자국의 독립을 도와준 구소련과 자신의 장래를 같이하게 됩니다.

몽골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측에서 러시아와 함께 싸웠습니다. 위구르 문자를 바탕으로 한 몽골문자를 쓰던 몽골. 1941년부터는 아예 러시아 문자를 받아들였습니다. 구소련 역시 몽골에 연료를 공급하고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몽골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렇게 구소련과 몽골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이념적으로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게 된 겁니다.

이런 몽골에도 1980년대 말부터 개방과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구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이란 말까지 들었던 몽골이 1980년대 후반 구소련을 강타한 개혁, 즉 '페레스트로이카'와 개방, 즉 '글라스노스트'라는 시대적 추세이자 흐름을 비켜나갈 수 없었던 겁니다.

(몽골 시위대 현장음)

1989년 12월. 마침내 몽골에서 아시아의 공산국가 가운데 최초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리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지식인, 학생, 예술가 등이 '몽골민주연합'을 결성해 다당제, 시장 경제 도입 등을 요구한 겁니다.

다음 해 1월에는 시위대가 스탈린 동상도 철거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중부 대학에서 몽골어를 가르치는 레그덴 체렌춘트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레그덴 체렌춘트: Of course, there was fear that if the movement will be cracked down...(더빙) 몽골 당국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우리 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하지나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때 32살이었는데요, 몽골의 당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원이었습니다. 민주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은 대부분 제 세대였습니다. 당시 여러 언론기관에서 취재했는데요, 제 목소리가 라디오에 방송되기도 했어요. 흥분되고 두렵기도 했지만, 우리가 승리하리라고 확신했어요. 그런 제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고, 아주 기뻤습니다.

사실 집권 몽골 인민혁명당은 이미 3년 전부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자극을 받아 독자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1986년 전당대회에서 구소련의 개방, 개혁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당의 체질을 개선하는 문제를 논의했고, 1988년에는 몽골판 페레스트로이카인 신칠렐(Shinechlelt) 정책을 채택하기에 이른겁니다.

격변의 20세기를 거쳐 세계의 흐름에 합류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몽골.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몽골 민주화의 현주소를 다음 시간에 짚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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