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본다]③ 인민혁명당의 민주화 요구 수용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09.10.22
2009.10.22
MUSIC: 몽골민요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수용한 몽골 공산당과 이에 관한 평가를 살펴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몽골정부가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즉 ‘개혁’ 정책에 보조를 맞추어 채택한 신칠렐(Shinechlelt) 정책. 그러나 ‘신칠렐’은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오히려 반발을 일으킵니다.
(몽골 시위대 현장음)
급기야 1989년 12월 몽골민주연맹의 주도하에 민주화 거리 시위가 발생하고, 다음해인 1990년 1월. 이들은 울란바토르에서 몽골을 지배했던 공산 이념을 전면 부정합니다. 스탈린식 정치제도와 집권 인민혁명당의 독재 체제를 비난하는 시위도 거세졌습니다.
두 달 뒤인 3월 몽골 정치국원 전원이 사퇴하고, 곧이어 바트문흐 서기장도 사임하기에 이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때를 같이 해 활발히 전개된 민주화 시위가 승리로 끝나게 된 겁니다. 미국의 몽골 전문가인 스티븐 뇌퍼 박사는 오늘의 민주화된 몽골이 있기까지는 몽골의 민주화 세력의 용기뿐만 아니라, 몽골 집권당의 수용적 태도 역시 한몫 톡톡히 했다고 평가합니다.
스티븐 뇌퍼: Mongolia had a very interesting transition because it was peaceful...(더빙) 몽골은 매우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오랜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국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했을 때 집권당이 피를 흘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체제 전환을 이룩하는데 일조했거든요.
특히 몽골 정부가 인민혁명당을 유일한 정당으로 규정한 ‘헌법 제 82조의 수정’을 결의해,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민주다당제 정당 정치의 기초를 마련해, 민주화를 향한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이에 따라 1990년 실시된 최초의 민주 총선이 열렸는데요, 몽골인민혁명당 외에, 몽골민주당, 사회민주당 등 5개의 신설 야당이 참여했고, 집권당인 몽골인민혁명당이 압승을 거둡니다. 한국에 있는 단국대학교 몽골학과의 강신 교수의 말입니다.
강신: 몽골 정부는 1921년 이후 일당독재였던 공산당 체재도 포기하고, 자유선거를 도입해서 정권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게 하고, 언론을 자유화하는 등 여러 민주화 조치를 취하는데 굉장히 적극적이었습니다.
1996년 6월 실시된 두 번째 총선에서는 민족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의 연합체인 ‘민주연합’이 총 76석 중 50석을 획득해, 집권당인 인민혁명당의 75년간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쾌거를 이룹니다.
물론 몽골의 민주화로 가는 길목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의욕은 앞섰지만 국가 경륜이 약한 소장파로 구성된 민주연합 정권, 경험 미숙으로 인한 잦은 정책의 실패, 설상가상으로 정권 내부의 부패로 인해 국민은 크게 실망합니다. 그 결과 4년 뒤 열린 총선에서 인민혁명당은 76석 중 72석을 획득해, 압도적인 의석으로 집권당으로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는 내일의 성공을 일구기 위해 필수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런 과정을 슬기롭게 넘어설 때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성숙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겁니다. 1990년 당시 당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레그덴 체렌춘트 씨의 말입니다.
레그덴 체렌춘트: After the democratic revolution...(더빙) 민주화 혁명이후, 몽골은 그야말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때론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지도력(리더십)이 없기도 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현대화로 가는 길목에 생기는 문제들인 거죠. 몽골 민주화 세력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난 5월. 몽골 선거관리위원회는 야당인 민주당의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후보가 약 51%의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몽골 전문가인 뇌퍼 박사의 말입니다.
스티픈 뇌퍼: With someone who served in the democratic vanguard and who was a leader of democratic movement...(더빙) 엘베그도르지 현 대통령은 1990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공산당 1당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보장한 몽골 새 헌법을 공동으로 작성한 개혁파 인물입니다. 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도 폭력 사태 없이 집권당이 선거 결과를 승복했습니다. 몽골의 민주주의는 지난 20여 년간 전환기를 거쳐 이제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수차례의 선거에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각 정당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원내로 진출함으로써 견제세력으로서 야당의 기능도 강화돼 민주주의 제도의 뿌리를 내리는 몽골.
다음 시간에는 자유아시아방송과 엘베그도르지 대통령과 단독 회견을 전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수용한 몽골 공산당과 이에 관한 평가를 살펴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몽골정부가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즉 ‘개혁’ 정책에 보조를 맞추어 채택한 신칠렐(Shinechlelt) 정책. 그러나 ‘신칠렐’은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오히려 반발을 일으킵니다.
(몽골 시위대 현장음)
급기야 1989년 12월 몽골민주연맹의 주도하에 민주화 거리 시위가 발생하고, 다음해인 1990년 1월. 이들은 울란바토르에서 몽골을 지배했던 공산 이념을 전면 부정합니다. 스탈린식 정치제도와 집권 인민혁명당의 독재 체제를 비난하는 시위도 거세졌습니다.
두 달 뒤인 3월 몽골 정치국원 전원이 사퇴하고, 곧이어 바트문흐 서기장도 사임하기에 이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때를 같이 해 활발히 전개된 민주화 시위가 승리로 끝나게 된 겁니다. 미국의 몽골 전문가인 스티븐 뇌퍼 박사는 오늘의 민주화된 몽골이 있기까지는 몽골의 민주화 세력의 용기뿐만 아니라, 몽골 집권당의 수용적 태도 역시 한몫 톡톡히 했다고 평가합니다.
스티븐 뇌퍼: Mongolia had a very interesting transition because it was peaceful...(더빙) 몽골은 매우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오랜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국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했을 때 집권당이 피를 흘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체제 전환을 이룩하는데 일조했거든요.
특히 몽골 정부가 인민혁명당을 유일한 정당으로 규정한 ‘헌법 제 82조의 수정’을 결의해,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민주다당제 정당 정치의 기초를 마련해, 민주화를 향한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이에 따라 1990년 실시된 최초의 민주 총선이 열렸는데요, 몽골인민혁명당 외에, 몽골민주당, 사회민주당 등 5개의 신설 야당이 참여했고, 집권당인 몽골인민혁명당이 압승을 거둡니다. 한국에 있는 단국대학교 몽골학과의 강신 교수의 말입니다.
강신: 몽골 정부는 1921년 이후 일당독재였던 공산당 체재도 포기하고, 자유선거를 도입해서 정권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게 하고, 언론을 자유화하는 등 여러 민주화 조치를 취하는데 굉장히 적극적이었습니다.
1996년 6월 실시된 두 번째 총선에서는 민족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의 연합체인 ‘민주연합’이 총 76석 중 50석을 획득해, 집권당인 인민혁명당의 75년간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쾌거를 이룹니다.
물론 몽골의 민주화로 가는 길목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의욕은 앞섰지만 국가 경륜이 약한 소장파로 구성된 민주연합 정권, 경험 미숙으로 인한 잦은 정책의 실패, 설상가상으로 정권 내부의 부패로 인해 국민은 크게 실망합니다. 그 결과 4년 뒤 열린 총선에서 인민혁명당은 76석 중 72석을 획득해, 압도적인 의석으로 집권당으로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는 내일의 성공을 일구기 위해 필수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런 과정을 슬기롭게 넘어설 때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성숙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겁니다. 1990년 당시 당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레그덴 체렌춘트 씨의 말입니다.
레그덴 체렌춘트: After the democratic revolution...(더빙) 민주화 혁명이후, 몽골은 그야말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때론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지도력(리더십)이 없기도 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현대화로 가는 길목에 생기는 문제들인 거죠. 몽골 민주화 세력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난 5월. 몽골 선거관리위원회는 야당인 민주당의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후보가 약 51%의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몽골 전문가인 뇌퍼 박사의 말입니다.
스티픈 뇌퍼: With someone who served in the democratic vanguard and who was a leader of democratic movement...(더빙) 엘베그도르지 현 대통령은 1990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공산당 1당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보장한 몽골 새 헌법을 공동으로 작성한 개혁파 인물입니다. 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도 폭력 사태 없이 집권당이 선거 결과를 승복했습니다. 몽골의 민주주의는 지난 20여 년간 전환기를 거쳐 이제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수차례의 선거에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각 정당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원내로 진출함으로써 견제세력으로서 야당의 기능도 강화돼 민주주의 제도의 뿌리를 내리는 몽골.
다음 시간에는 자유아시아방송과 엘베그도르지 대통령과 단독 회견을 전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