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공 탈북 여성의 유쾌한 통일수다 – ‘이공갑’②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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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공 탈북 여성의 유쾌한 통일수다 – ‘이공갑’②
/RFA Photo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58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북한을 경험하고 북한을 전공하고 있는 북한 출신 여성 장마당세대의 유쾌하고 진지한 통일수다로 전해드립니다.

(진행자) 양강도와 회령, 무산, 연사군 출신인 한국 정착 여성 석사, 박사 학위 과정 학생들이 남한의 생활과 전공인 북한을 이야기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박세영) 저는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박세영입니다. 저는 신라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를 했고 국제지역학과에서 박사 수료를 했습니다. (변선숙) 안녕하십니까. 변선숙입니다.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이구요.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북한학과 석사 과정의 졸업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탈북한 지는 24년 됐고, 한국 생활은 18년 째입니다. (김민세) 저는 김민세라고 하고요. 2007년에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고향은 함경북도 연사군입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카톨릭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석사 과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정영희) 북한에서의 고향이 회령인 정영희입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북한 출신 북한 전공 여성들이 진단하는 북한의 여성 차별 문제>

(진행자) 지난주에 이어서 북한의 여성 차별 무엇이 문제이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말씀해 주시죠. 한국에 정착해서 북한을 공부하고 있는 여 성 학자분들이시니 만큼 북한 당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부산에서 가정폭력상담을 하고 계신 박세영 씨 다음으로 말씀해 주실 분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과정인 정영희 씨가 의견 나누어 주시죠.

(정영희) 북한에 살 때는 인권이 뭔지를 모르고 살았는데 한국에 와서 조금조금 한단계씩 인권에 대해서 배우다 보니까 생명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가 있겠더라고요. 북한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인권탄압의 노출이 아주 심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인권의 의미를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김민세) 인권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봤어요. 한국에서도 여성의 인권이 최근 자신이 당행던 성폭행이나 추행을 공개하며 사회 공론화를 시킨 ‘미투’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죠. 북한에는 3·8절이 있는데, ‘여성의 날’입니다. 주말에 쉬지 못해도 3·8절에는 일을 안해도 돼서 엄마들이 모여서 맛있는것을 해먹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북한도 여성의 인권을 증진하자는 목소리가 커진 때도 있었습니다.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여성 관리자들을 대거 임명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유교사상이 굉장히 뿌리 깊어요. 저희는 자랄 때 ‘여자는 남자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받으며 컸습니다. 저는 여성인권 문제는 단순히 남자들만 바꿔야 되는 것이 아니고, 여자분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여성 인권은 굉장히 낙후되어 있고, 전세계 최하위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세) 예전에는 북한에서 장사를 많이 다녔잖아요, 교통시설이 아주 낙후합니다. 기차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젓가락을 세워 놓은 것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성추행이 일어났겠습니까?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성추행 당했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지를지 못했습니다. 왜 소리를 못질렀나, 일단 부끄러웠습니다.내가 소리를 지르면 오히려 남자들이 더 강하게 모욕을 줄 것 같았고 제 편을 들어줄 사람도 없고 저만 이상한 여자가 되어 버리는 분위기여서 그냥 참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북한 여성들이 인권에 대해서 지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점을 말씀 드리면, 북한의 여성인권은 일단 최악이다. 북한의 인권을 위해서는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지각이 되어야 한다.

(변선숙) 북한에서 장사를 하면서 중국사람들하고 개구리 장사 하마유 장사도 했습니다. 인강에서 북한에서 통나무를 보내면 중국에서 밀가루와 쌀을 교환했어요, 거기에서 북한 여성들이 배낭장사를 많이 다녔어요. 길에 다가 장사 물건을 쭉 내어놓고 팔았죠, 저도 집집마다 다니면서 개구리를 겆어다가 나중에 팔았는데, 그때 들은 얘기로 무역하는 사람들이 타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무역상들에게 몸을 파는 북한 여성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하다보니 저녁 늦게까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얼굴도 모르는 남장에게 강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겁이 나서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집에 뛰어가고 했던 생각이 납니다. 북한의 암시장이 성행하면서 예전에는 여성들이 몸을 판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는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무역하는 사람들에게 몸을 허용하고 나쁜 남자들에게 강간당해도 말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 만큼 북한의 여성 인권이 바닥입니다. 개선 방향은 일단은 북한 여성 차별의 인식개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사회와 협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는 왜 북한을 떠나서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했나>

(진행자) 이번에는 북한을 떠나게 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해 주시고 한국에 정착해서 어떤 계기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는지 말씀해 주시죠. 마지막 답을 하신 변선숙 씨부터 해 주실까요?

(변선숙) 탈북 동기가 여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동생이 먼저 탈북하겠다는 얘기를 먼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 남자가 탈북해서 중국 공안에 붙잡히면 무지하게 매를 맞고 북한으로 강제로 되돌려 보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생에게 일단 누나가 먼저 가서 무사히 가면 너를 부르겠다. 이렇게 해서 탈북하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저같은 경우에는 참 운이 좋았어요, 좋은 분을 만나서 무사히 친척집에 가게 됐고 안전하게 있다가 또 운이 좋아서 한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북한을 떠날 때는 모든 미련을 다 털고 왔기 때문에 미련없이 떠난거죠. 그야말로 목숨걸고 떠났습니다. 한국에 정착하고 처음에는 죽기 살기로 돈벌어서 동생들 먹여 살려야 한다고 해서 공부를 생각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고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잖아요. 그래서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비춰보면 “준비되면 어떻게든 길이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다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진행자) ‘북한 전공 탈북 여성들의 유쾌한 통일 수다’ 다음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진행자)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58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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